기억요리사 ep.19-육개장

가족.....

by 춘식

5월 초, 어버이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억해씨."

서영이 가게에 들어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

"어버이날에... 부모님들 모시고 식사 한번 할까요?"

"부모님들이요?"

"네. 억해씨 부모님, 그리고 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싶어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시어머니요?"

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게는 친정 부모님이 안 계세요."

"...네?"

"어렸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사고로. 그래서 친척 손에서 자랐어요."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민호랑 결혼하고 나서... 시어머니가 제 유일한 어머니가 되셨어요."


그래서 그날 시어머니께서 그렇게 아쉬워하시고 힘들어 하셨구나.

"..."

"남편이 떠나고 나서도 시어머니가 저를 많이 위로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시어머니가 친정 어머니나 다름없어요."

서영의 눈속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외로움이 담겨있었다.

"서영씨... 미안해요. 제가 서영씨에 대해서 아는게 없네요."

"말 안 했으니까요. 그냥... 이제는 억해씨한테 다 말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괜찮아요. 이제는 억해씨가 있잖아요."

서영이 내 손을 잡았다.

"그래서 어버이날에 부모님들 모시고 싶어요. 억해씨 부모님도 뵙고 싶고, 시어머니도... 억해씨 가족분들과 인사 나누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정말요?"

"네. 우리 부모님도 서영씨 뵙고 싶어 하실 거예요."

서영이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억해씨."

그날 저녁, 나는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어, 억해야. 무슨 일이고?"

"어버이날에 서울 올라오실 수 있어요?"

"어버이날에? 왜?"

"서영씨네 어머니랑... 같이 식사 한번 하려고요."

"오, 그래? 서영씨네 어머니?"

"네. 그런데 엄마..."

"응?"

"서영씨는... 친정 부모님이 안 계세요. 어렸을 때 돌아가셨대요."

전화 너머로 어머니가 한숨 쉬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노."

"그래서 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모신대요."

"그랬구나... 알았다. 아버지랑 꼭 갈게. 특해한테도 연락해볼게."

"고마워요, 엄마."


다음 날, 특해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억해야."

"응, 누나."

"엄마한테 들었다. 서영씨 사연."

"..."

"동생아, 서영씨 우리 가족이다. 알겠나?"

"...그래 누나가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

"내가 누나로서 잘 챙겨줄게. 그러니까 니도 서영씨한테 잘해줘라."

"응, 알았다."


어버이날 당일.

나는 아침 일찍부터 가게를 정리했다.

"억해야, 나도 도와줄까?"

해한이가 나타났다.

"너는 민지랑 데이트 안 하나?"

"오늘은 부모님들 모시는 날이잖아. 내가 도와줘야지."

"니뿌이네."


오전 11시쯤, 부모님과 특해누나가 먼저 도착하셨다.

"억해야!"

"오셨어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오랜만이다, 아들."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억해야, 서영씨는 언제 와?"

누나가 물었다.

"12시쯤 오기로 했어요."

"그래? 나 떨린다. 처음 제대로 보는 거잖아."

"누나가 왜 떨려?"

"동생 여자 친구인데 떨리지."

11시 30분쯤, 서영이 시어머니와 함께 도착했다.

서영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서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머님, 이쪽이 제 부모님이시고, 이분이 제 누나예요."

"안녕하세요. 억해씨 어머니시죠?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서영의 시어머니가 먼저 인사하셨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저도 뵙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시어머니의 손을 잡으셨다.

"앉으세요, 편하게 앉으세요."

우리는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서영씨,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누나가 서영에게 말했다.

"저도 뵙고 싶었어요." 꾸벅

"우리 동생이 서영씨 이야기 많이 하더라. 참 이쁘고 착하다고"

"누나야..."

모두 웃었다. 조금씩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서영씨 어머님."

우리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서영이가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다고 들었어요."

"...네. 그래서 제가 친정 어머니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죠."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서영이가 워낙 착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시어머니가 서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셨다.

"근데 이제 서영이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니 저도 마음이 놓여요."

"우리 아들 억해가 좀 무뚝뚝하긴 한데, 마음은 따뜻해요."

"알아요. 서영이가 억해씨 이야기 하면서 참 행복해해요."

두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나누셨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눈빛이었다.

"자, 그럼 우리는 식사 준비를 마저 할까요?"

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서영씨, 같이 가요."

"네!"

우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억해씨..."

"왜?"

"저... 너무 긴장돼요."

"괜찮아요. 다들 서영씨 좋아하세요."

"정말요?"

"네. 엄마도, 누나도, 다들 서영씨 얘기만 나오면 좋아하세요."

"...다행이다."

"그리고 서영씨."

"네?"

"서영씨는 이미 우리 가족이에요."

서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억해씨."

나는 오전부터 육개장을 만들기 시작했었다.


육개장 만들기

"육개장은 정성이 중요해요. 오래 끓여야 하거든요."

"네."

쇠고기(양지) 600g을 준비했다. 찬물에 30분간 담가 핏물을 뺐고.

큰 냄비에 물 3리터를 넉넉히 붓고 고기를 넣어서 끓이고 있었다..

"센 불에서 끓이다가 거품이 나오면 걷어내야 해요."

"네, 제가 할게요."

서영이 부지런히 거품을 걷어냈다.

"중불로 줄여서 1시간 30분 정도 끓여야 해요."

"그렇게 오래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미 끓여 두고 있었어요. 이제 대파 2대, 마늘 10쪽, 생강 1쪽을 넣어요."

재료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네. 부모님들을 위한 음식이니까 정성껏 만들어야죠."

"맞아요."

고기가 끓는 동안 양념을 준비했다.


고사리와 숙주 준비

고사리 100g을 물에 불렸다. 5-6cm 길이로 썰었다.

팬에 참기름 1큰술을 두르고 고사리를 넣어 볶았다.

국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을 넣고 5분간 볶았다.

"고사리는 미리 볶아두면 맛이 더 좋아요."

"그렇구나."

숙주 200g은 깨끗이 씻어서 준비했다.


고기 찢기

식혀둔 미리 삶아둔 고기를 결대로 찢었다.

"서영씨, 같이 찢어요."

"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고기를 찢었다.

"이렇게 하는 거죠?"

"네, 잘하고 있어요."

고기를 찢으면서 서영이 말했다.

"억해씨."

"응?"

"오늘... 정말 행복해요."

"나도요."

"양쪽 어머니들이 다 계시잖아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

"친정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명절이나 기념일이 항상 외로웠거든요. 근데 오늘은..."

"오늘부터는 안 외로울 거예요."

"...네."

우리는 계속 고기를 찢었다.


육개장 완성

육수에 고춧가루 3큰술을 넣어 빨간 색을 냈다.

국간장 3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고추장 1큰술을 넣었다.

찢은 고기를 다시 넣고, 볶아둔 고사리도 넣었다.

대파 2대를 어슷 썰어 넣었다.

"이제 10분만 더 끓이면 돼요."

"다 됐네요."

마지막에 숙주를 넣고 5분 더 끓였다.

"완성!"


우리는 육개장을 큰 뚝배기에 담아 테이블로 가져갔다.

"육개장 나왔습니다."

부모님들이 육개장을 보셨다.

"와, 진짜 맛있어 보인다."

아버지가 감탄하셨다.

"억해야, 서영씨랑 같이 만들었나?"

어머니가 물으셨다.

"네."

"둘이 참 잘 어울리네."

시어머니가 미소 지으셨다.

우리는 모두 육개장을 떠서 먹기 시작했다.

"와, 뜨끈하고 시원하다."

"맛있네, 정말."

"서영아, 니도 만들었다며? 잘했다."

누나가 서영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언니."

"그래 편하게 특해 언니라고 불러라"

"...네, 누특해언니."

서영이 수줍게 웃었다.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들이 이야기를 나누셨다.

"서영씨 어머님."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서영이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들이 좀 부족하지만... 서영이 잘 챙길 거예요."

"아니에요. 억해씨가 워낙 착하시잖아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죠."

"아이고, 우리 이제 가족 아닙니까. 서로 잘 챙기면 되죠."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서영이가 남편을 잃고 나서... 제가 많이 걱정했거든요. 혼자 어떻게 살까 싶어서."

"..."

"근데 억해씨를 만나고 나서 많이 밝아졌어요. 다시 웃는 걸 보니까... 저도 마음이 놓여요."

"우리가 함께 잘 보살피면 되죠. 이제 우리 딸 아닙니까."

어머니의 말에 시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서영이 두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머니... 두 분 다 고마워요."

"뭐가 고마워. 당연한 거지."

누나가 서영의 손을 잡았다.

"서영아, 이제 니는 우리 가족이다. 알았제?"

"...네, 누나."

우리는 계속 육개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와 시어머니도 이야기를 나누셨다.

"이제 서영이가 좋은 집안 만났으니... 저도 안심이에요."

"우리 집이 좋은 집안은 아닌데요."

"아니에요. 이렇게 따뜻한 가족이 어디 있어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차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억해야."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네, 엄마."

"서영씨 잘해줘야 한다. 알았제?"

"...네."

"그리고 서영아."

"네, 어머니."

"우리 아들이 말은 없어도 마음은 따뜻하다. 잘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시어머니도 말씀하셨다.

"억해씨."

"네, 어머니."

"우리 서영이...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해가 지고,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시간이 되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갈게."

"조심히 가세요."

문 앞에서 어머니가 서영을 꼭 안아주셨다.

"서영아, 외롭지 말고 우리한테 언제든 연락해라. 알았제?"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도 나를 안아주셨다.

"억해씨, 우리 서영이 잘 부탁드려요."

"네, 어머니. 걱정 마세요."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서영과 나만 남았다.

서영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서영씨, 왜 울어요?"

"행복해서요..."

"...행복해서요?"

"네. 어머니가 두 분이나 생기신 것 같아요. 그리고... 언니도, 아버지도."

"..."

"억해씨, 저... 가족이 생긴 것 같아요."

나는 서영을 꼭 안아주었다.

"서영씨는 이미 우리 가족이에요."

"고마워요, 억해씨.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억해야, 서영씨 정말 좋은 아이다. 우리 며느리 삼아야겠다. 잘해줘라.'

누나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억해야, 서영이 우리 동생이다. 잘 챙겨라. 알았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응, 알았어. 잘할게.'

서영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오늘 고마웠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곧 답장이 왔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억해씨. 오늘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요.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나는 문자를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서영은 이제 정말 우리 가족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영을 평생 지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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