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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Oct 14. 2019

국세청 직원이 하는 일

신고 욕받이





고백한다. 나는 국세청 직원이다.

고용노동부, 사회복지직과 더불어 국가직 기피 3 대장 중 하나다.


'국세청'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권력기관을 떠올린다. 뉴스에서 본 국세청은 위풍당당하니까. 게다가 일반행정직보다는 그래도 내 전공을 써먹을 수 있는 나름 전문분야에서 일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이 미워했던 세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선 세무서로 출근하는 대부분의 국세청 직원들은 민원의 최전선에서 매일매일 버티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은 국세청 직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달이다. 개인납세과 직원들은 영혼을 갈아 넣으며 4월부터 준비태세에 들어간다. 바로 종합소득세 신고기간.


우리나라는 신고제도가 원칙이다. 내가 얼마 벌었고 경비로 얼마나 썼소ㅡ라는 신고를 직접 하거나 세무대리인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세청이 고지하는 건 신고기간이 지난 후에도 신고하지 않은 걸 발견했거나 과소 신고했을 때, 혹은 신고 후 납부하지 않았을 때다.


이걸 모르는 납세자들이 참 많다. 설사 자진신고가 원칙이라는 걸 안 다하더라도 세금이라는 게 원체 복잡해서 수입금액, 필요경비, 소득금액, 소득공제, 과세표준, 산출세액, 세액공제, 세액감면, 결정세액, 가산세, 기납부세액, 환급 또는 납부하여야 할 세액ㅡ글을 쓰면서도 숨이 차다ㅡ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직접 신고할 수 있는 납세자는 흔하지 않다. 물론 홈택스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 되어 있어서 클릭 몇 번으로 17페이지짜리 신고서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구원 홈택스. 대부분의 업무는 이곳에서 납세자들이 직접 할 수 있다.



자진신고는 받아야겠는데, 신고는 어렵다. 그래서 국세청에서는 신고창구를 운영한다. '신고 도우미'들이 납세자분들의 전자신고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다.


일단 신고 도우미들은 주로 관련 전공의 근처 대학생들로 구성된다. 즉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들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신고창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납세자는 정말 클릭 몇 번으로 신고서가 완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 도우미들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는 데다가 컴퓨터에 익숙한 학생들이라 일손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들은 말 그대로 '도우미'일뿐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진신고가 원칙이므로 세무 공무원들(신고 도우미 포함)은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줄 수 없다. 어느 세무서를 가도 크게 붙어있다. 설사 우리가 도와준다고 한들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신고자에게 있다고. 하지만 납세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 거기서 해줬다, 너네가 책임져라 등등.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다. 세무사법에도 세무대리인이 아닌 사람은 신고대리를 할 수 없다고 버젓이 나와 있는데 왜 우리가 업무 시간을 쪼개서 신고를 해줘야 하냐고!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 우리 탓이라는데,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제 일도 아닌 걸 해주고 욕먹는데 누가 좋아할까.


그래, 국세청도 나름 입장이 있다. 연 수입이 1,000만 원도 안 되는 납세자들에게 기장료를 부담하면서 세무대리인을 쓰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고 국세청에서 신고대상자 모두를 일일이 찾아내서 환급하고 고지할 수도 없다. 그러려면 직원을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뽑아야 할 텐데 국회는 우리 편이 아니니까.


장기적으로는 신고창구를 없애는 것이 맞겠지만 어쨌든 지금도 세무서에서는 신고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서 같은 경우엔 직원이 적어서 이틀에 하루 꼴로 신고창구에서 하루 종일 신고를 '도와준다'.


정말 힘든 일이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교대로 갖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는 일. 무한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설명하는 일. 세액이 없을 줄 알고 왔다가 납부를 하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내는 납세자들을 달래는 일까지.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건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한 '서비스'로 여기는 납세자들의 태도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신분증을 휙 던지는 납세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말든지 대꾸도 안 하는 납세자, 다 되었습니다ㅡ하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얼마 줘요?" 하는 납세자 등등.


그날도 우리에게는 어쩌면, 흔한 일이었다.


신고창구에 할아버지가 한 분 오셨다. 빨간, 정말 빨간 폴로셔츠에 백바지를 입고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 온 백발의 할아버지. 키도 크고 전체적으로 '큰' 할아버지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도 컸다. 번호표를 받아 들고 내 옆자리 직원에게 오더니 대뜸 욕부터 시작한다.


"씨X, 국세청은 뭔데 이런 걸 보내고 지X이야?"


반사적으로 고개가 홱 돌아갔다. 빨간 폴로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으면서 계속 욕을 이어나갔다. 나이 팔십 먹은 노인이 무슨 수입이 있다고 이딴 걸 보내냐부터 시작해서 돈 받아쳐먹고 이딴 식으로 일하냐며 말 끝마다 18을 붙여댔다. 나이가 팔십이든 구십이든 수입이 있으면 국세청에 신고가 되기 마련이건만, 폴로 할아버지는 신고안내문을 책상에 내려치면서 욕에 욕을 더했다.


다행히 옆 직원분은 베테랑이라 크게 동요하지 않고 친절히 응대했다. 나한테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다시 컴퓨터로 두었다. 옆 직원이 선생님 앞으로 신고된 수입이 있어서 안내문이 나간 것이다, 실제로 여기서 수입이 발생했다면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ㅡ고 설명을 해도 할아버지 귀에는 다 개소리라 욕은 끊이지 않았다.


"아니, 씨X 뭐 내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이딴 걸 보내냐고! X나 거지 같은 새끼들이. 너 같은 새끼들이 이딴 거 보냈지? 어?"


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진짜 "와, 선생님 정말 교양 없으시네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꾹 참고 참았다. 왜 말을 저렇게 하는 거지? 저 사람 눈에는 우리가 욕받이로 보이는 건가?


직원분은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홈택스에 숫자를 입력해나갔고 그동안에도 험한 소리들이 날아들었다. 거지 같은 새끼들, 죽여버릴까, 세금 받아먹는 새끼들,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하는 거야, 씨X 씨X.


그 동안 나는 계속 그 할아버지를 (째려)보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빛에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만 그 할아버지는 한 번도 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결국 직원분이 그 할아버지의 신고를 '도와드렸'고 그 할아버지는 환급액 60만 원이라는 접수증을 받게 되었다. 직원분은 끝까지 친절하게 6월 말에서 7월 초에 이 금액이 환급될 거라고 안내했고, 할아버지도 끝까지 욕을 하며 신고창구를 나갔다. 그리고 직원분은 한숨 한 번, 물 한 모금 후 바로 콜 버튼을 눌렀다.


퇴근하는 길에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돈 없이는 살아도 교양 없이 살지는 말자고. 적어도 상식을 갖고 살자고. 이렇게 또 마음에 돌이 하나씩 얹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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