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사일기를 쓰면서
글을 내렸다. 처음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약속했다. 절대로 과시하는 삶을 살지 말자고. 단 한 번도 풍족해본 적이 없던 내게 저 결심은 꽤나 단단한 것이었다. 내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올린 사진 하나, 글 한 줄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남편의 직업에 대해서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쓴 글이 그렇게 읽힌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결코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기에 구구절절 댓글도 달아보았지만 글을 새로 쓰지 않는 이상 글에 남은 부족함은 또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렸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읽힌다면 내가 글을 잘못 쓴 것이니까. 그저 내가 부족한 탓이었다.
<공무원 퇴사일기>는 사실 퇴사 후에 내놓으려 했다. 아무래도 조직 내에 있으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조직 안에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이런 글을 써도 되는가 고민도 돼서. 공무원의 비밀유지의무나 품위유지의무에 비추어 봤을 때 조직의 뾰족한 부분을 어디까지 오픈할 수 있는지도 도통 알 수 없어서 퇴사한 후라면 솔직하게 다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비밀일기를 쓰듯 글을 하나 둘 지어 모았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 알았다. 글에는 시간의 맛이라는 것도 있구나. 때를 놓치면 이맛도 저맛도 아니게 되는구나. 퇴사한 후에 돌이켜 보며 글을 쓴다면 생생함과 솔직함이 빛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조직 안에 있으면서 글을 썼다. 어쩌다보니 국세청이 내 글의 주요 글감이 되어 공무원 > 퇴사일기가 되어버린 듯하지만, 사실 이 글들은 공무원 < 퇴사일기였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만난 나에 대해서 쓰는 글들이 모인 일기이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찰 보고서랄까.
작가의 서랍에는 아직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많다. 왜 나는 퇴사를 고민하는가ㅡ부터 퇴사를 고민하며 읽었던 일과 노동에 대한 책, 여성 공무원으로서 느낀 불편함, 월급을 받으면서 느꼈던 생각, 승진과 비전에 대해 고민했던 날들, 어떤 커리어를 쌓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직장인(특히 국세청 공무원)으로서 받은 스트레스, 민원인과의 관계, 국세 업무 자체에 대한 소회, 퇴사를 생각하며 겪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날들,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등등. 많은 것들에 대한 글들이 나의 서랍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럼에도 더 이상 <공무원 퇴사일기>는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도 사실 나는 내 다음 걸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길로 얼마만큼 걸을 것인가.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쥘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로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며칠 전 긴 고민을 끝내고 내 다음 걸음을 선택했다. 애초에 브런치에 퇴사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일기를 쓰고 싶었으나, 나의 성장일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몇 안 되는 글이었지만 이 글들을 읽어주는 화면 너머의 누군가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슬프게도 했고 때로는 내게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다. 비록 스타 작가들에 비하면 소소한 수였지만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쓰게 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넋두리처럼 쓴 글들이 읽히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께 힘 내시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퇴사를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부디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몸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