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폴리 Jan 18. 2021

해리 포터 시리즈

만남 20주년 기념 총망라 감상(이라고 쓰고 애증섞인 비판이라고 읽는다)

밀레니얼과 젠Z를 나누는 하나의 방법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매년 출간되면서 해리와 함께 자란 세대와, 해리 포터 시리즈가 다 끝난 후에 자란 세대로 나눌수 있다. 나는 그중 해리와 같이 자란 밀레니얼이다. 지금 대충 30대인 밀레니얼은 또 해리 포터를 읽은 애들과 안 읽은 애들로 나눌수 있다. 난 해리 포터를 오조오억번 읽은 애..어른이다. 최근에도 전자책을 클라우드에 넣어놓고 가끔씩 땡길 때 마다 읽는다. 


정확히 말하면 1권부터 4권까지는 수도 없이 읽었지만 5~7권은 한 두 번 밖에 읽지 않았다. 씁쓸하게도 뒤로 갈수록 한 두 번 밖에 읽히지 않았다. 심하게 애정한 만큼 애증도 심해서 지적질 할 곳도 많다. 영화는 안티클라이맥스가 더 심각하다. 영화 1편이 나올때 까지 1년 내내 맘졸이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개봉 당일 캐나다의 영화관에 1층부터 2층까지 줄을 서서 들어가서 미어터지는 극장속에서 모두 함께 함성을 지르며 영화를 봤던 그 아이는, 7의 하편(최종편)이 나왔을때 관람객이 얼마 없는 썰렁한 (같은 캐나다의) 영화관에서 1편을 같이 봤던 (같은 캐나다인) 어릴적 친구와 함께 쓰리디 안경을 쓰고 해리의 마법 공격에 볼드모트가 터져 죽고 재가 날릴때 ‘오와~ 볼드모트의 쪼가리들이다~’하면서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영혼 없는 리액션을 했다.  


그리고 어제, 남푠과 손 붙잡고 <더 보이즈>를 최근 연이어 보다가 너무 폭력적인 장면을 많이 봐서 이제 좀 마음 정화를 해야겠다 싶어서, 습관처럼 다시 아이패드에 저장된 해리 포터 3권 전자책 원서를 펼쳤다. 챕터 1, 발암 캐릭터 마지 이모에게 마법반사신경으로 복수를 한 해리는 “ㅆ#*$ㅂ& 이제 여기서 안 살아!” 하면서 한 밤중에 씩씩대며 짐을 싸들고 뛰쳐나온다. 질질 끌고나온 트렁크엔 각종 마법책들과 물건들, 빗자루가 들어있다. 여기서 해리가 가장 아끼는 건 ‘님부스 2000’이라는 레이싱 빗자루다. 어 잠깐만, 2000? 읽었을 당시에는 넘나 현대적으로 느껴졌던 이 빗자루 모델명이, 2000? 맨 앞장으로 돌아가보았다. 저작권 조앤 롤링 2000년. 세상에. 해리 포터가 나온지 20년이 넘었다. 해리는 이제 아저씨다! 


개인적으로 나와 해리포터도 대략 20주년이다. 내가 해리를 2000년도에 만났으니까. 그해 3월 우리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중학교 1학년을 뒤로 하고 이민 온지 3개월 밖에 안된 한국인 여자애는 그렇게 영어공부를 평생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고 답답해하며 학교의 도서관 구석에서 쭈구리가 되어 혼자 있었다. 그때 반 친구 중 하나가 “이거 정말 재미있는 책이야!” 하면서 나에게 내민게 해리 포터였다. 그 아이는 베트남계 친구였는데 얼굴이 하얗고 키가 작지만 뭔가 정의롭게 나설줄 아는? 친구여서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한번은 어떤 일본 남자애가 갓 전학와서 혼자 겉돌고 있었는데, 기존의 반 애들이 “쟤 머리 넘 크지 않냐?” 하면서 수근덕거리자 “너네 그러지마!” 하고 나서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혼자 있는 내게 와서 책을 추천해준게 너무 기뻤다. 그렇게 건내받은 해리포터 1권을 펼치고 열심히 읽으려고 했지만, 한국에서 13년 평생 배운 영어는 1도 쓸모가 없었다. 한국의 껍데기만 핥는 영어교육시스템이 원망스러워 속이 쓰렸다. 게다가 이 책은 제목이 해리 포터인데 힘겹게 힘겹게 10장을 읽었는데도 해리 포터가 도무지 등장하질 않았다. (1권 1화는 해리의 머글 이모, 이모부 시점이다.) 나는 포기했다. 세상이 끝나버린 얼굴을 하고 친구에게 가서 말했다. “난 아직 이 책을 읽을수가 없어. 미안해...”


그리고 다가온 여름 방학. 우리집은 아빠와 여름을 보내기 위해 한국으로 갔다. 난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서 해리 포터 번역판을 찾았다. 인기 작품인지 가판대에 그득그득 쌓여있었다. (해리 포터가 인기 작품인지도 몰랐다) 이미 2권까지 나와있었던가? 그 다음은 무슨 마약을 한 것 마냥 기억이 안난다. 밤을 세서 읽다가 엄마에게 혼나서 이불속에서 몰래 읽던 순간이 어렴풋이 난다. 점점 읽을 수록 남아있는 페이짓수가 점점 얇아져가는게 그렇게 서운하고 슬플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자기가 냠냠 먹어놓고 아이스크림이 줄었다고 징징 우는 난다님의 애기 쌀이의 심정을 난 이해할수 있다. 다 읽고나면 이 신비롭고 신나고 즐거운 세상속 친구들을 다시 만날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어릴땐 또 한 해가 지나가는게 왜 이렇게 길었던지. 그렇게 힘겹게 1년을 기다려서 책이 나오면 2~3일만에 다 읽어버리는 짙디 짙은 농도의 시간들. 매년 다음 해리 포터 책을 기다리는게 너무너무 즐겁고 힘들고 신나고 목이 빠지고 눈알이 빠졌다.


내가 영어를 한글 만큼 쉽게 읽게 되기까지는 대략 1년이 걸렸다. 그래서 4권이 나왔을때, 난 드디어 한글판과 영문판을 동시에 사서 읽을 수 있었고, 1권부터 3권까지도 영문판으로 다시 읽었다. 그리고 세상이 감춰둔 공공연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좋은 번역이란 없다는 것. 그냥 보통 번역과 후진 번역만 있다는 것. 잘해야 평타를 치는게 번역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소설처럼 문화를 찐하게 담고있는걸 온전하게 100% 다른 문화로 번역하는 건 불가능하다. 애시당초 문화가 다르니까. 그런데 해리 포터의 경우 아쉽게도 좀 후진 번역이었다. 처음에 이렇게까지 대작이 될줄 몰라서 대충 번역했던 걸까. 그냥 애들 동화니까 쉽게 생각해서 경험이 별로 없는 초보에게 띡 맡겼던 걸까. 왜 그렇게 번역을 했는진 알수 없지만 해리 포터 한글 번역은 정말 오류가 많았다. ‘헤르미온느’가 사실 ‘헐마이니’라는 쇼크는 둘째치고 (내가 해리 포터 팬 캐나다 친구에게 헤르미온느라고 말했다가 그 친구가 도대체 누굴 말하는거냐고 해서 너무나 당황했었다.) 가장 심각한 번역 실수는 4권에 있었다. 내용 흐름상 큰 문제는 없지만 번역가가 아예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 오류가 있었다. 해그리드가 해리에게 자기 어렸을적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원서(사투리): “Sorta had ter make me own way after that.”

표준어: “I sort of had to make my own way after that”

뜻: “걍 대충 나 혼자 알아서 살아야했어.”


이 부분을


한글 번역판: “소르타가 나를 키워줬어”


라고 해놓은 것이다. 하하하하. 해그리드의 사투리 같은 눌린 발음을 그대로 써놔서 번역하는데 어려움을 겪은건 이해가 가지만 저건 좀 심했었다. 소르타 당신은 도대체 누구세요. 내가 당시 그 출판사 게시판에 들어가서 지적을 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개정되서 나와있을런지 모르겠다.


그 후로 안타깝게도 해리 포터 시리즈는 책으로나 영화로나 나에게 실망의 연속이었다. 전반적으로 시리즈가 5편부터 갈수록 발암 스토리에 여러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아니 쓸데없이 헤드위그는 왜 죽이냐고. (인물들보다 부엉이가 죽은게 더 화남) 영화속 미술이나 의상도 1편만 엄청 힘을 쏟고, 그 후에는 점점 돈이 빠져나가는게 보였다. 처음에는 마법세계 사람들이 로브를 열심히 입다가 나중에는 그냥 애들은 머글 추리닝을 입고 나오고. 말포이는 엉뚱하게 계속 혼자서만 머글 양복을 입고 나온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는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세계관붕괴. 덤블도어는 원래 장면마다 상황에 어울리는 휘황찬란한 로브로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영화속에서는 뒤로 갈수록 호그와트에 돈이 없는지 맨날 잠옷 같은 희멀건 거적대기만 입고 나오시고. 7편에서는 이제 애들이 학교도 안다녀서 교복도 안 입고 영화 런타임 2시간 반 내내 청바지에 추리닝 집업만 입고. 색깔 표현도 책 속에서는 총천연색인데 영화 미술은 갈수록 어두침침해져가서 나중엔 누가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장면이 어두워야 CG값이 덜 든다는걸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해리 포터 팬 시점에선 그저 슬플 뿐이다.


감독도 여러번 바뀌면서 어쩔땐 나홀로집풍의 코메디가 되었다가 (왜 말포이가 갑자기 뒤로 나자빠지냐고. 나홀로집의 도둑이냐고) 어쩔땐 스릴러가 되었다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신이 사나웠고. 심지어 덤블도어역 할아버지는 도중에 돌아가시고. 영화 캐스팅도 갈수록 맘에 안들었다. 내 상상속에서 제일 잘생기고 제일 좋아한건 시리우스였는데 게리 올드만은 나에게 너무나 <제5원소> 악당이었고. 심지어 5권에서 제일 허무하게 시체도 없이 죽어버렸고. 두번째로 잘생기고 좋아한 캐릭터가 해리 아빠 제임스였는데 역시나 책속 묘사와 한 개도 안 닮은 흐리브리한 존재감 없는 캐스팅이었고. 그나마 말포이와 말포이 아빠 캐스팅이 캐릭터붕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말포이역 배우는 다른 의미로 나에게 쇼크를 준게, 시리즈가 끝나고 몇 년 후, 한 컨벤션에서 덥수룩하게 갈색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팬 사인회에 나와있는 실제 모습을 봐버렸다. 말포이가 은발이 아니라니 아니라니. 결정적으로 꼬꼬맹이 애기들을 데려다가 약 10년간 얘네가 정변할지 역변할지 모르면서도 계속 찍어야하는 영화의 정해진 운명이 문제였다. 론은 키가 멀대처럼 커져야하는데 애가 어릴적부터 촬영에 시달려서 그런지 키가 안 컷고. 해리는 버논가족의 학대로 인한 영양부족으로 커서도 약간 빈약해야하는데 데니얼 레드클리프는 너무 엉덩이턱에 튼튼한(?) 몸집으로 자라버렸고, 엠마 왓슨은 헐마이니 캐릭터와 안 어울리게 너무 예뻐져버렸고. 네빌은 쓸데없이 너무 키크고 잘생기게 커버렸고(?).


영화는 이렇게 3편부터 캐스팅, 미술, 의상, 각색, 등등 음악 빼고 모든게 다 대부분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그저 어렸을적 추억이 만들어낸 충성심으로 한편 한편 꾸역 꾸역 보았다. 어차피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시리즈니까 대충 만들어도 모두들 보러 올거라는 워너브라더스놈들에게 난 기꺼이 호구가 되어주었다. 4편에서는 스토리가 글로벌해져서 등장인물들이 다양하게 많아지는데, 하나같이 의상이 너무너무너무너무 허접해서 울고 싶었다. 프랑스 마법 아카데미 보바통 애들이 요정의 날개 같은 하늘거리고 반짝이는 실크로 만든 교복을 입고 나와야하는데 무슨 칙칙한 미국 대공황 시절 은행 직원 유니폼같은걸 입고 나와서 말도안되는 춤을 추는걸 보고 너무나 빡쳐서 영화관에서 뛰쳐나갈뻔 했다. 5편 6편은 기억도 안난다. 아, 두꺼비처럼 겁나 못생기고 못되쳐먹은 발암 끝판왕 캐릭터인 마법부 관료 아줌마가 교장 대신으로 호그와트를 장악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속에서는 그냥 작고 예쁘장한 아줌마가 캐스팅되어 나오셔서 이젠 뭐 뛰쳐나갈 기운도 없고, 헛웃음이 나왔다. 7권은 책도 딱 한 번만 읽고, 영화도 딱 한 번만 본 것 같다.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아마도 조앤 롤링은 끝으로 갈수록 소설 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애들이 막 고난을 겪고 이래야하는데 마법의 세계니, 마법으로 아무거나 다 뿅 하고 해결할수 있는데 어떻게 고난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상대방 나쁜놈들도 마법을 쓰니까 힘들지” 라고 중간에 실제 대사로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납득이 안되는 설정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1권 부터 음식이 마법으로 뿅 하고 나오는 것 처럼 줄곧 묘사되다가, 7권에서 해리 삼인방이 볼드모트 일당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다니며 텐트생활을 하는데, 갑자기 먹을게 없어서 고생을 한다. 그러면서 당황해하는 독자들에게 설명하듯 헐마이니가 음식은 뿅하고 생길수 없는 무슨무슨 3대 요소야! 라는 처음 듣는 설정을 말한다. 어디에 있는지 알면 마법으로 불러올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론네 집에서 식량을 마법으로 소환하면 될 일 아닌가?? 그 외에도 영화에 보면 마법으로 하면 편할 일을 굳이 힘들게 몸으로 떼우는 장면이 넘쳐난다. 특수효과 넣는게 비쌌겠지....


원래 소설을 영화화/실사화 하는건 힘들다. 팬층이 두꺼울수록 더욱 더. 그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맘대로 상상해서 좋아하고 있을텐데, 그걸 다 충족시키는건 어렵다. 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미 훌륭한 시각적 레퍼런스가 있었다. 바로 메리 그렌드프레가 그린 미국/한국판의 책 커버 & 챕터 일러스트들이다. 캐나다/영국판은 매번 표지가 다른 작가가 그렸는데 내 취향엔 정말 별로였다. 특히 2권 표지는 왠 미국 헐리우드 B급영화에 나올 것 같은 느끼한 아저씨 둘이 자동차에 앉아있는 그림이어서 내 상상력을 해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난 메리 그렌드프레의 그림으로 책을 소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미국판을 찾아서 샀었다. 영화에서는 미술이 중구난방이었지만, 그녀의 그림은 책 내용에 충실하고 역동적이고 온도가 느껴지고 디테일이 살아있다. 이 글의 커버도 그녀의 일러스트다. 책으로 보면 표지만 칼러고 챕터 마다 삽입된 일러스트는 흑백이지만, 온라인으로 찾아보면 다 하나같이 총천연색이다. 오일 파스텔(크레파스의 고급버전)으로 이렇게 따뜻하고 꽉꽉찬 그림을 그릴수 있구나 하고 그때 처음 깨달았었다. 



한 20년이 지나면 누군가, 어릴적 실제로 해리 포터를 읽고 자란 나 같은 밀레니얼 세대의 영화감독이 순수한 마음으로 “해리 포터는 원래 이런 거야!!” 하면서 다시 찍으려고 하지 않을까. 클래식은 원래 여러번 재생산 되니까. 기존 영화 시리즈에서 무 자르듯 숭텅숭텅 잘라내버린 것들을 다~~ 주워 담을수 있게 드라마 시리즈로 길게 가거나 기왕 CG가 팍팍 들어갈거,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애니는 아역 배우들이 극 속 묘사와 다르게 성장해버리는걸 손놓고 볼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 생길테니까. 에니로 간다면 메리 그렌드프레의 화풍을 살짝 녹여넣어서 3D로 만든다해도 2D느낌이 나게 했음 좋겠다.


영국 여왕 보다도 부자가 된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 아줌마는, 부자들이 더 한다고 돈독이 올랐는지 이걸로 대대손손 뽑아먹고 살려고 작정했는지 어쨌는지, 해리 포터 세계관의 부산물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세계 곳곳의 유니버설스튜디오 안에 해리 포터 랜드를 짓고,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라는 연극물을 내놓는가 하면, 현재 진행중인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시리즈도 있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해리포터랜드에서 탈 것은 딱 하나다. 호그와트성 속을 바실리스크(2권에 나오는 거대한 뱀)처럼 구불구불 달리면서 3D입체영상 해리와 친구들을 여기저기서 만나는 롤러코스터. 나는 원래 롤러코스터 타는걸 좋아해서, 한 3시간을 기다려서 이것을 탔는데, 중간부터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토할뻔 했다. 쓰리디 안경을 쓰고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하면 달팽이관이 뒤집힌다는걸 깨달았다. 나와서 한참을 벤치에 누워있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각종 선물 가게들을 들어가보는데, 진열된 마법 지팡이니 목도리니 하는 상품은 하나같이 다 너무나 허접해서 그냥 보는거 자체가 착잡했다. 버터비어도 그냥 안 먹었으면 내 상상속의 그 맛이 와장창 깨지지 않고 남아있었을텐데. 입체영상 롤러코스터의 여운으로 세상이 빙빙 도는데 달착지근한걸 마시니 더 토할것 같았다. 책속에서는 어디에도 이게 달다고 묘사된 적이 없는데 그냥 미성년자들이 마시는거니까 진짜 맥주로 내놓을수는 없고, 걍 달달한 탄산음료로 내놓은 것이다.


쓰리브룸스틱에서 따뜻한(!?) 버터비어를 마시는 해리 3인방 (메리 그랜드프레 작)


도대체 난 어릴적에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버터비어의 맛을 어떻게 상상을 했던걸까. 버터향이 나는데 따뜻하고, 맥주니까 탄산?? 어릴땐 맥주맛을 모르니 따뜻하다고 묘사되어도 그런가보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따뜻한 맥주라니 말이 안된다. 아니 영국놈들은 비어/맥주라는 말에 다른 의미가 있나? 칩스가 과자가 아니고 감자 튀김인 것 처럼? (찾아보니 다른 뜻은 없다...) 해리 포터 식료품으로 시중에 나온 것들 중 덤블도어가 즐겨먹는다는 세상의 온갖 맛 젤리빈이 그나마 좀 참신했는데, 지렁이맛이든 코딱지맛이든 죄다 단 맛을 베이스로 해놔서 그것도 좀 그거대로 울렁거렸다. 설탕+흙. 설탕+코딱지... 영국에는 진정 맛있는 음식이 없는 건가. 어릴적 해리가 호그와트 대강당에서 만찬을 먹을때 나오는 음식 묘사는 너무너무 맛있고 풍성해보였는데 말이다. 


재작년인가 쯤에 나온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접하려면 얼마든지 접할수 있었다. 출근길 서점에 책도 진열되어 있고, 뉴욕에 살고있는 덕분에 전철로 30분거리 브로드웨이에서 연극도 했지만 왠지 또 허무하게 실망할까봐 돈을 쓰기가 싫었다. 늙은 해리 포터가 나온다니. 소름. 40살이 된 케빈(멕컬리 컬킨)은 왠지 보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라고 해야하나. 


지금 2편까지 나와있는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시리즈는 그냥 집에서 봤다. 원작 소설이 없으니 비교 할 것도 없고 (실제로 신비한 동물사전 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이라는 얄팍하고 조그마한 장난감 같은 책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곁다리식으로 옛날부터 나와있어서 소장하고 있긴 한데, 정말 사전이라서 그냥 ABC순서대로 니플러나 유니콘 같은 마법세계 동물들이 묘사되어있다.) 그냥 보면 되니 어찌 보면 마음이 편한데, 내가 다 자란 무심하게 시들은 어른이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막 여러번 볼 만큼 재미가 없다. 같이 보던 남푱은 두 편 다 중간부터 잤던 것 같다. 어릴때 해리 같은 어린이들이 나오는 해리포터를 보고 자란 팬들이 지금 어른이 되었으니까 주인공을 어른들로 등장시킨 것 같은 뻔한 속셈도 보인다. 초호황기였던 20년대 뉴욕이니까 의상도 정말 볼만해야하는데, 그닥 볼만한게 없다. 다들 그냥 19세기 양복을 단벌신사 처럼 입고나온다. 마법세계 로브는 이젠 그냥 처음부터 포기한 것 같다. 4개 기숙사중 아무도 기억 안해주고 항상 왕따 취급 당하던 후플퍼프 출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건 좋은 츄라이try였다고 생각하지만, 호그와트를 떠난지 한참 지난 뉴트가 노란 줄무늬의 후플퍼프색 목도리를 하고 나오는건 해리 포터 상품중에 후플퍼프것이 젤 안팔려서 어떻게든 광고하려는 걸로 보여서 짠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안타깝게 돌아가신 덤블도어가 젊은 시절 얼굴로 다시 등장하는건 반갑지만, 어떻게 엉덩이턱의 쥬드 로(젊은 덤블도어)가 늙어서 해리 포터 1편의 얇쌍한 할배 덤블도어 얼굴이 되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덤블도어!! 그래도 그린델 왈드 역으로 내가 헐리웃에서 키아누 리브스 다음으로 사랑했던 (과거형) 죠니 댑이 나오는걸 보고 오왕! 했는데, 스토리상 죠니의 매력을 그-닥 못 느끼겠어서 다음편에는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이혼소송에 휘말려서 3편부터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하하하. 죠니 말고 그린델왈드역으로 누가 나오는 거야 젠장. 뭔가 시리즈 전체적으로 그다지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는게 문제인 것 같다. 주드 로나 죠니 댑이나 정말 미친 캐스팅인데도, 그냥 배우로서 존재감을 뿜었을 뿐, 분량도 별로 없고 캐릭터상으로는 별 매력이 없었다. 주인공 뉴트는 걍 착하고 밍숭맹숭하고, 여자 주연 캐릭터(아이고 이름도 기억 안난다)는 너무 뻣뻣하고. 그나마 빵집을 하는 뚱뚱한 머글 아저씨가 뒤뚱거리며 쫒아다니는게 귀엽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유쾌한 캐릭터가 거의 없고 다들 심각한게 문제 랄까. 주인공들은 심각해도 중간중간 긴장을 풀어주는 엉뚱하거나 유머감각이 뛰어난 조연이 있어야 밸런스가 맞는데 그런게 부족하다. 해리 포터에서는 론과 론의 쌍둥이 형 조지와 프레드가 딱 그 담당이었다. 그래서 7권에서 프레드가 죽었을때 다들 너무 싫어했지. (아니 조지였나. 일란성이라 헷갈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냥 해리 포터 1권 부터 4권 사이의 원작 소설을 습관처럼 정주행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상문 모음> 책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