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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폴리 Feb 17. 2021

A 프레임 주택

좀 더 쉽게 (싸게) 집을 지을수 있는 홈 키트!!

단순하게 판자 두개를 기대어놓은 텐트같은 모양의 삼각형 집, A-Frame 하우스. 바로 이전 글 <돈!>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정도로 낮은 가격이라면 당장 집을 지을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잠깐 줬던 것도 이태리의 A 프레임 모듈러 하우스였다. 근데 그 이태리 업체가 뭔가 수상쩍고 망삘이어서, 지금 내가 살고있는 미쿡의 다른 프리페브 prefab 시공업체들을 찾아보았더니 다들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계단이 없는 집으로 하고 싶어서, 높은 층고를 효율적으로 쓰려면 2층을 꼭 만들어야하는 A 프레임은 관심사에서 일단 멀어졌었는데...


그리고 거의 반 년 후, 아파트 말고 전원주택 붐이 슬슬 일고 있는 것 같은 한국에서도 방송에서 A 프레임 하우스가 몇 번 등장했다. 처음은 역시 집 방송의 시조새 <건축탐구 집>.


순천의 작은 A 프레임 집. 14평 (498 sqf). 숫자로만 보면 엄청 작다!! 근데 층고가 높아서 답답하지 않음.


왜 A 프레임 형태로 집을 지었는가? 인터뷰에서 건축주가 대답한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돈을 많이 버는 직장도 아니어서 (부부가 둘 다 공무원이고 이게 두번째 집)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했다는 것.


가능하면 작고 돈이 덜 드는 삼각형 주택으로 선택한거죠.


엉? 삼각형 집이 다른 평범한 집의 시공가보다 그렇게 싼가??? 지붕이 벽 보다 훨씬 단열제도 많이 들어가고 이래저래 비싸다고 들었는데.. 아, 이건 아예 벽 자체가 없지. 벽과 지붕을 만드는 것보다 지붕만 만드는게 당연히 더 쉬운 것이었다. 원래 벽체를 올리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서 잇는 부분이 많은 기술이 필요한데, 이건 땅 위에 지붕만 세우니까 쉬워서 금방 끝난다는 것. 그리고 원래부터 지붕엔 단열제를 많이 넣기 때문에 거의 준 패시브하우스로 지어진다고 한다!! 내가 원했던 것! 싸게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가 이야기하는 A 프레임 구조. 단순해서 공사기간이 단축되고 비용이 절감됨.


이제 약간 실마리가 풀렸다. 왜 그 이태리의 모듈러 A 프레임 하우스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며 기사가 났었는지. (3~7만 달러. 약 3천~7천만 원) 모듈러로 공장에서 정해진대로 대량생산 하니까 비용이 적게 들고, A 프레임 구조라서 더더욱 만들기 쉬운 거였다! 아직 회사가 자리잡지 못한게 안타깝긴 하지만, 사실 집이라는 크고 비싼 물건을 만드는 업체가 몇 년만에 수십개를 팔고 승승장구 하긴 어려운 것이다. 집 보다 훨씬 작고 만들기 쉬운 옷 만들어 파는 회사들도 자리잡는데 최소 3 년 걸리는데. 실제로 미국의 프리페브 집 업체들을 알아볼 때도 사이트에 3D 이미지만 있고 실제 시공한 사진이 없고 업데이트 한지 몇 년이 훌쩍 지나서, 얘네는 이미 망한게 아닌가 싶은 업체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만큼 실현하기 힘든 것이지. 집이란.


사실 이 A 프레임 집은 옛날에 미국에서 60~70년대에 엄청 인기였다고 한다. 한적한 호숫가나 산속에 지어놓는 여름용 별장이나, 집의 풀장 옆에 만들어놓는 풀 사이드 하우스 같은 걸로, DIY로 직접 만드는 킷트가 전국적으로 곳곳에서 팔렸단다. 찾아보니 정말 쇼킹한 가격이 적힌 옛 카달로그 사진들이 많았다. 주택에 살면서 가라지에 이런저런 왠만한 공구를 다 갖고있는 집이라면, 이런 자그마한 A 프레임 하우스 킷트를 사다가 주말에 뚝딱 뚝딱 만들거나, 적당한 가격의 사이즈로 주문하면 업체가 뾰로롱 하고 지어주는 것이다.


6~70년대 미국의 해변이나 호숫가에 지었던 A 프레임 별장들. 시작가가 995 달러라고. 헐. 100만 원.


와, 시공비 포함해서 5500 달러 (6백만 원) 에 735 sqf (20 평). 저때는 심지어 바비인형도 A 프레임 별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80년대부터 갑자기 A 프레임의 인기가 뚝 끊기고, 미국의 이런 홈 킷트 제작 업체들은 스르륵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무슨 일이... 아, 미국의 중산층이 몰락했지. (두두둥-_-)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와 주택가격은 올라가면서 갭이 벌어지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더이상 '여름용 별장'을 따로 지어놓고 여유를 부릴수 없게 된 것이다. 일은 전보다 더 열심히 하는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음. 그리고 지금은 그냥 쪼매난 집 한 채도 빚(모기지)을 지지 않으면 사기 버거운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바이러스까지 창궐했어. 아아아 살기 힘든 2020년대 세상이여.


그러는 한편, 눈이 많이 와서 뾰족한 지붕집을 필연적으로 지을 수 밖에 없는 북유럽에는 지금도 A 프레임 하우스 킷트 업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에스토니아에 있는 아브레임 Avrame이라는 업체. 내가 프리페브 업체들을 쭈우우욱 훑어볼때 이곳도 물론 봤었지만, 이태리에서 모듈러를 가져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무려 에스토니아에서 집을 배송받다니 그건 좀 아니다 했었다. 아니 당췌 에스토니아가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야?? 러시아쪽 아닌가??? (세계 지리 빵점) 그래서 아브레임은 완전히 제쳐두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 업체에서 홈킷트를 무려 한국으로 배송받아서 집을 지은 사람이 나타났다.


에스토니아에서 아브레임 홈킷트를 배송받아 지은 울산의 A 프레임 집. 트리오75 모델. 20 평 (769 sqf)


저 건축주는 처음에 본체(트리오75)는 전문가들과 함께 지었고, 옆에 쪼끄만 회색 집(듀오57)은 나중에 추가 구매해서 아버지와 둘이서 짓는 과정을 유튭에 공유했다. 오프닝/배경음악 선정이 최악인데 보다보면 엔딩은 뭔가 정감(?)이 있다. 뭐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총 짓는데 7천만 원이 들었다고 공개했지만 실제 아브레임 사이트에 저 모델(트리오75)의 명시된 가격을 보면 (골조, 외부, 내부 풀옵션으로 샀다는 가정하에) 6천만 원 정도다. 근데 여기서 풀옵션이라고 해도 저건 어디까지나 집 껍대기고, 제대로 사람 사는 집으로 완성하려면 직접 구매해야하는게 꽤 많다. 단열제 (나라마다 단열기준이 달라서 단열제는 원래 안 넣어줌), 주방가구가전, 화장실 도기, 타일, 전기, 수도, 배관, 조명, 냉난방시스템, 등등등! 나머지 천만 원은 이거에다가 배송비, 세금, 기초공사비, 집 시공비로 추측이 된다. 미국에서는 기초공사가 전체 시공의 40~60%를 차지할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굉장히 저렴하게 잘 지으셨다. 한국이 콘크리트를 미국보다 월등하게 자주 쓰기 때문에 미국보다 기초공사비가 적게 들수도 있다. (반대로 미국에선 벽지보다 페인트칠(도장)을 훨씬 자주 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벽지 도배보다 도장이 더 싸다.)


그래서 방송을 본 후 아브레임 사이트에 거의 8개월 만에 다시 들어가보았더니 그때는 몰랐던 여러가지 장점이 눈에 띄었다. 내가 못본건지 그사이 새로 생긴건지 모르겠음.


1) 미국의 가정집 건축 기준에 맞춰 제작하는 미국 지사가 따로 있다.

2) 프리컷 제품이라 배송이 콤팩트해서 저렴한 편이다. 지사가 유타에 있고 난 뉴욕이라 젤 멀긴 하지만 그래도 만들어진 모듈러 덩어리들을 배송받는것 보다는 훨씬 싸다.

3) 빌더를 고용해서 조립/시공을 맡긴다해도 일반적인 집짓는 것 보다 더 적게 든다. 180~230 달러/sqf

4) 오너/CEO가 직접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라 깨알 정보가 많다. (영어 채널. 한글 자막은 없음)

5) 이렇다보니 현재 미국 여기저기에 고객이 많고, 다들 인스타그램으로 짓는 과정을 공유 중이라 구경하기 좋다! <-이게 젤 좋음


아브레임에서 판매하는 모델 시리즈는 삼각형 크기에 따라 솔로, 듀오, 트리오가 있는데 각자 길이도 여러가지다. 제일 작은 솔로57 (141 sqf = 4평)부터 제일 큰 트리오150 (1495 sqf = 42 평)까지 있다! 솔로는 정말 아기아기하게 뒷마당에 지어놓는 놀이용 집 같은 느낌이고, 듀오는 다락에 아늑하게 낑기는 침대를 둘 수 있어서 한국으로 치면 농막이나 별장, 손님용 별체로 잠시 쉬는 곳으로 적합하다. 제일 큰 트리오 시리즈는 각 변이 9미터인 정삼각형이라 2층을 오픈형으로 만들면 1층에서 층고가 7미터나 된다! 사이트에서는 트리오100 (1047 sqf = 29.4평) 부터 본격적인 집으로 추천하고 있다. 유럽 기준으로 집이 30평은 되어야 좀 집 같다고 생각하나보다. 방 갯수는 이미 정해진 구조를 선택해도 되지만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 할수 있어서 자기 취향대로 해달라고 하면 된다.


아브레임의 솔로, 듀오, 트리오 모델의 미니어처. 141 sqf (4평) 부터 1495 sqf (42 평)까지 다양하다.


아브레임 솔로75. 182 sqf (5 평). 화장실이 없고 미니키친과 쉴 공간이 있다.



아브레임 듀오 57. 322 sqf (9 평). 미니 키친과 욕실이 있고 로프트(다락)에 침대 낑겨넣음.



아브레임 트리오120. 1234 sqf (35 평). 침실 3개, 욕실 2개, 오픈형 키친 다이닝 거실.


위의 트리오120은 캘리포니아에 실제로 지어진 케이스(모드와일드)인데, 기존 평면도에서 계단도 원형으로 바꾸고 2층도 오픈형으로 바꿔서 공간감을 살렸다. 렌탈용으로 만든거라 실용성보다는 예쁜거에 포커스를 맞춘 듯. 위의 방송에 나온 울산의 트리오75 건축주도 제일 후회하는게 원형 계단이라고 한다. 보기엔 예쁘지만 물건 들고 오르내리기 힘듬. 그래서 내가 원하는 구조도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집 사이즈로 따지면 나한테 제일 적당해보여서 렌탈 예약하고 싶은데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너무 멀고 여기는 지금 코로나환장국이지.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8만명...)


캘리포니아의 A 프레임 하우스 (아브레임 트리오120)


이 밖에도 인스타그램에 #avrame 혹은 #aframe 을 검색하면 전세계에서 지금 한창 짓고 있거나 이미 완성한 A 프레임 주택들을 구경할 수 있다. 같은 킷트지만 다들 개인의 취향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했기 때문에 구조를 얼마나 어떻게 바꿨는지, 어떤 풍으로 인테리어를 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집을 짓는 목적도 다양하다. 친척이나 손님이 놀러오면 머물게할 게스트하우스나, 위처럼 에어비엔비에 올려놓고 수익창출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자기들이 살려고 짓는 사람들도 꽤 많다. RV카에 살면서 혼자서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가며 짓는 사람도 있고, 아브레임의 킷트 말고도 그냥 직접 구상해서 A 프레임 집을 짓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전에 글에서는 미국에서 30평자리 (1000~1100 sqf) 집 지으려면 4~5억은 들어간다는 계산이었는데, 아브레임 킷트로 짓는다고 가정하니 예상 비용이 대략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이제 좀 말이 되네!!!


이제 좀 집을 장만한다는 그림에 살짝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다음 글은 A프레임집을 알아보면 자연스레 연결되는 오프그리드, 스몰리빙, 미니멀리즘 이런 것들에 대해 끄적여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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