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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이 Jul 25. 2023

1. 수면 내시경 보호자였을 뿐인데

암환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3월 20일,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23일 목요일 진료인데 그날 위내시경 검사 한대.

수면으로 한대니까 무조건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날 형편이 어떤가?"




53년 3월생이신 아빠는 70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으셨다. 위가 약해 항상 소화제, 지사제를 달고 사시던 분이셨다. 게다가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은 전혀 드시질 않는다. 김치도 씻어먹는다 하면 말 다한 거겠지.


대장암은 늦게 발견된다는데 혹시나 위가 아니라 대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도 염려했었다. 한 10여 년 전, 건강검진을 하며 대장내시경을 받으려 했었지만 '약수터 통'처럼 커-다란 물통이 배송 온 것을 보시고선 돌려보내셨다. 지금에야 마시는 물 양도 적어지고 심지어 알약 몇 알로 간단히 장을 비워낼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마셔야 했다. 나였어도 그건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후로도 엄두도 못 내다가, 곧 70이시니 한 번 받아봅시다 하는 가족들의 권유와, 나중에야 말씀하신 거지만 연말부터 부쩍 안 좋아진 몸상태에 대한 염려와, 몇 년 전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이 대장내시경 전문의라는 우연이 더해져서, 거리는 좀 멀었지만 겸사겸사 그 친구분이 계시는 병원에서 하룻밤 머물며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안내한 대로 김치, 김 같은 음식들 조심하며 하루이틀을 보내고 아빠는 내일 보자~ 하며 집을 나서셨다. 다음날 돌아오신 아빠는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들려주셨다. 복부 CT를 한 번 더 찍어보라는 친구분 말에 그리 했다는 말도 하셨다.




아빠는 한 달 정도가 지나고 검진 결과를 들으러 다시 친구분이 계신 병원을 찾았다. 친구분은 아빠에게 비장이 커져있고 복부에 몇 군데가 부어있으니 다른 큰 병원에 한 번 가 보라고 권유하셨다. 신촌이 가깝지? 라며 연세대를 나온 친구분은 전원의뢰서를 써 주셨다.


그렇게 소개받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소화기내과 교수님은 또 마침 아빠의 지인이었다. 신기하고 반갑네, 라며 아빠는 은근히 설렌 것 같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불안함을 애써 누르시고 계시는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워낙 속 얘기를 안하시는 분이라. 그렇게 예약날이 다가왔고 3월 말, 아빠와 함께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다.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고 싶어 했지만 오전 시간에 길이 많이 막힐 것 같아 단념했다. 3호선을 타고 독립문역에 내려 대학생들과 함께 세브란스행 버스를 탔다. 회차지점이라 텅 빈 버스가 왔고, 아빠와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아빠와 버스를 타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특히 아빠는 65세가 되시며 '어르신 교통 카드'를 받은 후부터 기필코 무료인 지하철만 이용하셨다.

짠돌이...




아빠나 나나 큰 병원은 처음이었다.


큰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이라면 꽤 많이 다녔지만, 진료를 받기 위해 큰 병원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큰 규모에 압도되어 두리번 대다가 안내판을 보며 소화기내과를 찾아갔다. 진료실 앞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초진인 분은 초진 등록을 하고 다른 병원에서 찍은 CD를 제출하고 진료비 및 외부 영상 판독료 등 수납을 하고 오라고 안내해 주셨다. 진료받기도 전에 돈부터 내고 와야 한다. 아빠는 4층 진료실 앞에 두고 나는 로비층인 3층에 내려가 알려준 대로 수속을 했다.


다시 올라가서 진료실 앞에 대기하니 금방 아빠 이름을 불렀다. 여기 있을게요, 하고 아빠만 들여보내려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보호자도 같이 들어오라고 하셨다. 안그래도 같이 들어가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마침 다행이었다.


아빠는 오랜만에 본 소화기내과 교수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셨다. 교수님은 CT 사진을 보며, 이전 CT 사진은 없냐고 물으셨지만 아빠는 복부 CT도 처음이었다. 예전에 찍은 게 있다면 비교해서 갑자기 부은 것인지 원래 부어있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교수님은 부어있는 곳이 '임파선'이라는 것과 한 곳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단순 염증 때문에 부을 수도 있지만, 임파선 혹은 다른 곳에 생긴 암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부터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검사를 해서 차라리 임파선암이라는 게 바로 명확해진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임파선들이 왜 부었는지 찾아가는 지루한 과정이 될 거라고 하셨다. 어쨌든 임파선에 문제가 있으니 혈액내과 진료를 바로 당일로 잡아주셨고, 먼저 위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위내시경이 오후에 잡혀있으니 그 후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소화기내과는 본관이었는데 안내받은 혈액내과는 암병원이었다.


'암병원'

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은 예사롭지 않았다. 혈액내과 교수님은 CT 상으로는 애매하다고 하셨다. 임파선암인지 제대로 확인하려면 전신마취를 하고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아빠가 연세도 있으시고 수술이라는 부담이 있으니 먼저 암의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들을 일단 해 보고 조직검사 수술을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다. 6통(?)이나 뽑아갔다고 아빠가 투덜댔다.




아빠는 오후에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금방 회복하셔서 나오셨고 대기실 소파에 앉아 조금 더 주무셨다. 낮게 코를 고시는 아빠를 보고, 그렇구나 암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나이 70. 남들이 보기에는 할아버지일 터였다. 지금껏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오셨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아빠 나이 70'을 되뇌고 나니, 내 나이 36이다. 아빠는 외국에서 공부하시느라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나를 낳았다. 게다가 나까지 결혼에 늦어져 다른 친구분들과 달리 여전히 '할아버지'는 되지 못했다. 가끔 모임에 다녀오시면 손주 봐주러 가야 한다고 점심만 급히 먹고 들어가는 친구분들 흉을 보시곤 했다. 아직 할아버지 타이틀을 못 드린 건 오히려 다행인 걸까.




병원을 나서니 셔틀버스 승차장이 보였다. 셔틀버스 노선을 확인하고, 경복궁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바로 다음 월요일에 혈액내과 PET-CT 검사가 잡혔다.



안녕하세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을 남겨둘 겸 일기처럼 쓰는 글이다보니... 지루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차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대략적인 비용을 정리해 두겠습니다만 "참고용"으로만 생각해 주세요.

나중에 한 번에 모아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화기내과 진료(초진), 수면내시경 등 = 약 230,000원

혈액내과 진료, 혈액검사, PET-CT = 약 6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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