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아빠 진료는 보통 1시 반~2시 사이에 잡혔다. 그러면 최소 2시간 전까지 채혈과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완료해야 하고, 채혈은 최소 4시간 이상 금식을 해야 한다. 그래서 1시 반 진료를 기준으로 7시쯤 아침을 먹고, 경복궁역에서 11시 10분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11시 반쯤 채혈을 했다. 그게 반년 간의 루틴이었다.
항암을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피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항상 엄마가 점심 도시락을 싸주셨다. 김밥이나 유부초밥 같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엑스레이 촬영과 채혈이 끝나면 도시락을 들고 7층 야외 정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궂을 때는 본관 1층에 있는 실내 정원이나 카페 옆 취식공간에서 먹기도 했다.
야외 정원에서 도시락을 먹을 땐, 꼭 소풍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릴 땐 오히려 가족 소풍을 간 기억이 거의 없다. 아빠가 워낙 바쁘셨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는 차를 타고 근처로 나들이를 가곤 했지만, 그것도 역시 아빠 일과 관련된 외출에 함께했던 적이 많다.
내 기억 속 우리 가족의 첫 소풍은 내가 23살 때였다. 가족 모두가 미국에서 1년 동안 살게 되면서 주말마다 나들이를 나갔다. 플리마켓을 찾아가기도 하고, 관광지를 가기도 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기도 했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근처의 벚꽃 명소를 소개하는 신문을 보고 이번 주엔 여기에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차로 한 시간 정도 갔던 것 같다.
첫 소풍이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엄마가 싼 김밥을 먹고 동생과 스펀지밥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좋았다. 4월이었지만 날이 쌀쌀해서 얇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걸로 머리를 둘러 덮고 선글라스를 껴서 바람난 남편 미행하는 아줌마st로 나무 뒤에 숨었다. 엄마, 아빠, 동생은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광대를 자처했다. 즐거웠다.
7층 야외정원은 나와 아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풍' 장소였다. 어떤 날, 먼 타지에서 오신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배낭에서 과일과 먹을거리를 잔뜩 꺼내서 나눠먹는 모습도 보았다. 대형 병원이라는 중압감을, 긴 대기시간의 지루함을, 다들 조금은 내려놨던 것 같다.
한동안 도시락을 싸서 다니다가 언제부턴가는 식당에 가서 먹었다. 항상 똑같은 김밥과 유부초밥에 질리신 모양이셨다. 우리가 병원에 다닐 땐 본관 식당가가 리모델링 중이었다. 그래서 암병원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에 갔다. 병원 곳곳에 식당이 있는데, 2023년 10월 기준으로 본관 로비층인 3층에 대형 식당가, 암병원 위에는 한식당, 지하에 푸드코트, 그리고 암병원에서 신촌 쪽으로 나가는 지하에 카페와 식당이 있다.
아빠는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드신다. 첫 글에도 썼었다시피 김치도 씻어드신다 하면 말 다한 셈이다. 그래서 외식 메뉴가 한정적이다. 게다가 항암을 시작하며 회 같은 날것도 제외되었다. 또 약을 먹는 동안에는 유제품이 약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해서 약 복용 전후 2시간은 유제품도 피해야 했다. 아빠에겐 주로 미역국, 떡만둣국, 뚝배기불고기 정도 선택권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빨간 무말랭이 같은 반찬은 내 몫이었다.
아빠와 나란히 셔틀버스를 타는 것도 소풍 기분을 더해줬다. 우리는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병원까지는 한 10분 정도 걸린다. 병원 셔틀버스는 정말 편리했다. 경복궁역 외에도 용산/서울역, 신촌역에서도 병원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두 노선은 버스도 더 크고 사람도 훨씬 많다.
병원에 다니는 것은 소풍이랑은 전혀 다르다. 소풍 가기 전날엔 설렘과 기대감으로 잠을 못 이루지만, 병원에 가는 길엔 걱정과 불안이 함께한다. 그럼에도 아빠와 보내는 점심시간은, 소풍 같았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