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분주하게 보낸 하루였다.
늦은 시간에도 여전히 기분 좋은 컨디션이 유지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루 종일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청소와 정리수납을 하느라 지쳤을 만도 한데 말이다.
혹시 이것이 청소의 힘일까?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다 미쓰히로의 ‘청소력’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청소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닌, 마음과 환경을 정화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소개되었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주장이 핵심이었다.
다양한 문제를 청소의 힘만으로도 해결하고 좋은 에너지를 끌어들인다는 말에 격한 공감이 갔던 책이었다.
오늘 하루, 청소의 힘과 에너지가 충만했던 계기와 과정을 천천히 되감아 보았다.
2025년 새해에 저마다 마음에 담은 신선한 메시지를 기억할 것이다.
다짐과 도전의 전투력이 최고조였던 지난 1월에 우연히 무료강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디지털 세상인 요즘은 중장년을 위한 무료교육 플랫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랜 맞벌이를 하고 전업주부의 자리로 돌아온 나로서는 서툴고 낯선 가사의 틈새를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정리수납전문가과정’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자격증 시험에도 통과되었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주변에 공유하는 덕분에 가까운 친구 2명도 함께 합격을 했다.
작은 성공이 주는 성취감도 좋았지만 교육과정에서 배운 살림 노하우가 그저 그런 가사의 품위를 높여주는 만족감이 더 컸다.
한 친구는 강의에서 배운 대로 남편의 옷장을 정리해 주었더니 남편이 매일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했다.
신발상자와 바나나 상자를 수납도구로 재활용하거나 치약상자와 페트병으로 작은 소품을 보관하는 팁도 유용했다.
생활 속 정리수납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던 중 갑작스러운 실습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들의 학위수여식을 며칠 앞두고 기숙사에 묵혀있던 짐들이 전부 집으로 배송된 것이었다.
대학원 연구실을 오가며 기숙사 생활을 했던 아들의 짐 상자들이 탑처럼 거실바닥에 쌓였다.
털털한 주인을 닮았을 커다란 택배상자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개봉이 부담스러웠다.
필요한 건 상자를 개봉하는 단순도구가 아니라 엄마의 재능을 기부할 마음의 준비였다.
드디어 주말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작심하고 하나씩 열어본 상자 속은 탄식과 혼돈의 무질서 그 자체였다.
뒤엉킨 의류와 침구류들이 끝도 없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세탁기와 건조기는 주거니 받거니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아들은 양심껏 책이 담긴 상자를 도맡아 정리했다.
자기 방의 오래된 책들을 덜어내고 필요한 책들로만 줄을 세웠다.
정리의 첫 번째 단계인 '비움'이 선행되어야 채움도 가능했다.
남편도 재활용장에 버려야 할 책들을 모아서 노끈으로 묶어주며 일손을 거들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회전을 모두 마친 수북한 옷들은 나를 부르는 듯 보였다.
일부는 계절과 색깔과 길이를 고려해서 행거에 걸었고 바지와 티셔츠는 기본적인 접기 실습에 들어갔다.
하의인 청바지를 접을 때 주의할 점은 단추와 지퍼를 연채로 앞 쪽으로 반을 접는 것이다.
허리 끝과 밑단 끝을 직선으로 그어 나머지 부분(엉덩이 뾰족이 나온 부분)은 접거나 안쪽으로 넣어서 정리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랍 높이에 맞춘 바지 앞부분에 무릎 부분을 넣으면 사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상의인 티셔츠도 상표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 서랍의 폭에 맞게 세로로 길게 접는 게 우선이다.
팔도 일자로 펴주고 서랍 높이를 기준으로 옷의 앞면 문양이 보이도록 접어준다.
정리된 옷은 눕히지 않고 세워서 보관하면 공간 효율도 높아지고 찾기도 꺼내기도 편리해진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정리하는 손놀림도 익숙해지고 속도가 붙었다.
깔끔해진 수납장을 보고 있으니 정작 아들보다 내가 더 흐뭇해졌다.
옷정리에 탄력과 속도가 생기면서 다른 서랍장으로 내 의지력이 활활 번져갔다.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리수납에 온 열정을 쏟았던 하루였다.
묵은 먼지를 없앤 가지런한 책장과 정리된 서랍에서는 깨끗한 에너지가 벅차올랐다.
드디어 분주했던 하루를 이렇게 한 줄 요약하기로 했다.
아들이 가져온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엄마의 재능기부를 통해 기분 좋은 희망의 에너지만 아들방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