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작가 보라토크
익숙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북토크 장소인 교보문고 23층에 도착해 준비된 마음과 발을 내딛는다.
평일저녁 보라토크 무료강연 신청을 최근 문화센터에서 가까워진 동생과 함께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참석인증을 하고 막 강연장에 들어섰는데 뭔가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본 강연이 시작되려면 20여분 이상 남았는데 벌써 작가님이 무대아래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셨다.
멈칫했으나 잠시 후 작가님의 안내맨트로 이해가 되었다.
강연시작 전에 작가님은 청중들과 간단히 속마음을 나누고 계신 듯 보였다.
정신과의사로서 허물없이 다가가는 모습에 나를 비롯한 청중들은 이미 무장해제된 느낌이었다.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작가님의 보라토크 강연이 시작되었다.
치유자 정혜신과 함께 공감과 경계로 짓는 회복의 시간이라는 주제로 만났다.
편안한 복장으로 올라오셔서 조용조용 진심을 전하는 목소리에 강연장은 점점 치유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작가님은 트라우마를 ‘극단의 무력감’이라고 정의하셨다.
진료실이 아닌 현장에서 ‘환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면서 스스로 더 단단해지셨다고 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겐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라고 하셨다.
국가폭력이든 가정사든 불행한 사고든 트라우마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감한다’라는 건 ‘네가 누군가’에 대한 궁금함과 집중이라고 하셨다.
“너는 누구니?”
“너 괜찮아?”
라는 두 가지 시선으로 존재에 가 닿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결국, 사람은 “오늘 받은 공감으로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셨다.
과거의 공감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매일 밥 먹듯이, 아이도 노인도 관심과 공감이 중요하다.
스타의 삶 일부를 심리적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를 예로 들어주셨다.
스타란? 너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스타는 ‘화려하게 시든 꽃’ 같다고 표현하셨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작가님은 미리 제출된 질문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치유적 공감을 달아주셨고 때로는 아픈 마음에 목이 메어하셨다.
강연이 끝나고 Q&A시간에 나온 질문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고통스럽고 힘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방전되는 작가님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질문에 본인을 충전해 주는 사람을 소개하셨다.
바로, 스승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반려자인 남편분이 청중석에 앉아 계셨던 것이다.
기꺼이 서로의 멀티탭이 되어주는 이상적인 부부사이가 놀랍고 부럽기까지 했다.
후배와 강연장을 나오며 무언가 든든한 집밥을 먹은 듯 마음 한구석이 따뜻함을 느꼈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라는 작가님의 말씀은 내 마음속 구구단이 되었다.
며칠 후 집 근처 도서관에서 정혜신 작가님의 ‘당신이 옳다’ 큰 글씨 책을 대출받았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허기짐을 다독여도 보고
너에게 했던 '충조평판'을 반성도 해 보고
큰 글씨와 눈을 맞추며 스쳐간 말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단숨에 마지막장을 덮었다.
괜히 내는 ‘화’는 없다
언제든 우선적으로 그 마음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옳다고.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다.
사람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하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당신이 옳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