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숙영 작가 보라 북토크
사람보다 챗봇이 먼저 답하는 세상이 되었다.
며칠 전 시댁 일을 처리하면서 케이블방송사에 해약 관련 문의전화를 했었다.
원하는 서비스를 눌러달라는 챗봇 음성 상담은 정답만 말하는 서툰 지침서에 불과했다.
나의 현실적 맥락을 들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상담원 연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지금은 문의전화가 많아 상담원 연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무작정 수화기를 들고 있다 보니 감정이 없는 챗봇과 달리 답답함은 내 몫이었다.
한 번은 친구들과 단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딸아이가 이런 하소연을 했었다.
공모전 관련해서 친구들과 온라인 줌미팅을 하고 나서였다.
아이디어 회의에 소극적이면서 겉도는 친구들에게 조금 실망을 했던 모양이었다.
“엄마! 신경 쓰이는 친구들과 하느니 그냥 챗GPT랑 혼자 준비하는 게 더 낫겠어요”
인공지능 세상에 익숙해진 딸의 말이 낯설어서 엄마로서 조금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AI기술 발전의 로드맵은 에이전트(인공지능비서) 초기단계에 진입했다고 한다.
더 이상 일상에서 외면할 수 없는 물음들로 가득한 게 현실이다.
때마침 7월 교보문고 보라 북토크 라인업 문자 메시지가 올라왔다.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라는 우숙영 작가님의 AI관련 무료강연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의미심장한 제목과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은 호기심에 신청을 했었다.
문자 티켓을 받고 북토크에 관심 있는 동생과 함께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늦은 강연을 앞두고 새로 오픈한 이국적인 맛집에서 잠봉뵈르 파스타와 뇨끼로 저녁을 해결했다.
가끔은 실패 없는 아는 맛의 메뉴를 일부러 외면할 필요도 있었다.
생소한 음식에 도전하는 설렘과 맛에 대한 경험치를 올려준 나쁘지 않은 메뉴선택이었다.
오늘 북토크 강연의 이끌림과 선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낯선 AI주제가 나의 인공지능 감수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뿜뿜 올라왔다.
보라 북토크 강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로 빼곡했다.
평일 저녁 강연의 특성상 직장인들과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남자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시작된 강연 무대에는 우숙영 작가님과 함께 이다혜 기자님(씨네 21)이 함께 올라오셨다.
인공지능 AI의 생소하고 낯선 주제를 대화 형식으로 편안하게 풀어가는 콘셉트로 보였다.
청중들의 궁금증을 대신한 기자님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작가님의 답변을 끌어내며 우리의 이해를 도왔다.
AI기술은 우리의 애도기술에도 영향을 가져왔다는 내용으로 첫 말 문을 열었다.
죽음의 4단계는 충격(죽음부정), 그리움(깊은 슬픔), 고통(우울, 무기력), 회복(일상회복)으로 정의되곤 한다.
거기에 인공지능 AI와 VR기술을 결합해서 ‘재현’되는 단계가 추가된 것이다.
위로와 치유 목적도 있겠지만 부작용과 윤리적 쟁점도 동반된다.
죽은 자와 소통함으로써 도리어 일상회복이 어려워지거나 현실감각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영화는 2014년에 개봉된 'HER'가 대표적이라고 예를 들었다.
그런데 'HER'의 배경이 바로 2025년이었다는 것이 현재로선 묘하게 충격이었다.
요즘 개인적 심리상담과 관련해서 챗GPT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공지능은 시간적 공간적 제한 없이 아무 때나 가능하면서 흘려듣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혹시 챗GPT가 기분 나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대화에 익숙하다 보면...
상처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있는 실제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다고 느껴질 것이다.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더 깊은 외로움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딥페이크와 관련된 허위정보와 여론조작 등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러브버그가 떼로 기승을 부려서 걱정하고 불편했던 시기가 있었다.
참새가 러브버그를 먹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천적이 나타났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AI로 생성된 영상을 모 방송사에서 여과 없이 기사로 쓰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와 근거를 확인하거나 팩트체크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인간이 가진 미세한 의심의 감각을 외면하지 말고 천천히 판단하는 ‘결정유보’가 때로는 필요하다.
질문하는 자세와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무엇보다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인공지능 신기술에 압도당하는 우리가 되었다.
작가님은 AI도 '운전'과 비슷하다고 하셨다.
차만 타면 멀미하는 사람도 직접 운전하면 멀미가 준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어떤 충격이 있을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운전대를 잡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