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올 7월은 더위가 아니라 그 적도의 한복판 같다.
조기 출근에 야근까지 도맡는 우리 집 에어컨이 혹시라도 몸살 날까 노심초사다.
방마다 파견근무 중인 선풍기는 정해진 휴식 시간도 없이 고객만족을 위해 하루 종일 바쁘다.
수당은커녕 칭찬 한 마디도 못 받는 여름 필수템들의 수고가 짠할 정도다.
가전제품에도 근로기준법이 있다면 나는 이기적인 고용주가 분명할 것이다.
오전으로 건너온 폭염 경고 문자에 휴대폰이 먼저 몸서리를 친다.
거실 창문을 허락 없이 통과하는 햇빛은 커튼 줄을 당기자 천천히 블라인드 뒤로 숨었다.
한낮에 아무런 준비 없이 집 밖을 나가는 것도 위험한 일상이 되었다.
양산, 선글라스, 쿨스카프, 텀블러, 팔토시 등 여름 쿨링템들은 외출 시 우선순위로 챙기는 생존 물품이다.
백팩을 메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더운 공기가 숨 막히게 달려든다.
가까운 목적지도 도보로는 엄두가 안 나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아파트 후문 쪽으로 몸이 향했다.
빛바랜 상가 현수막을 지나고 모퉁이를 돌자 친근한 주택가 골목이 나타났다.
담장옆 자투리 공간에 놓인 빨간 고무통 화분들이 사람 냄새나는 친근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성장을 뽐내는 큼직큼직한 토란잎이며 호박잎들은 무더위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양산 때문에 줄곧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걷다가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출 일이 생겼다.
유심히 보지 않았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곳에 빨간 고개를 든 채송화 때문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의 갈라진 돌틈사이에서 보란 듯이 꽃을 피우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좁은 길바닥 틈새라는 악조건에도 전혀 불만이 없어 보이는 채송화가 사랑스러웠다.
양산을 든 손과 함께 자연스레 두 무릎을 구부려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길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처럼 채송화가 소리 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있었니?
나 기억하니?"
채송화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조금은 특별했던 꽃이었다.
불현듯 소환된 추억의 파편들을 퍼즐처럼 맞춰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수줍고 내성적인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일터로 향하는 부모님, 도시락을 챙기며 등교하는 오빠들의 분주한 아침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와 고사리 손으로 방문 자물쇠를 여는 모습...
아이는 매일 텅 빈 집에서 오빠든 엄마든 늘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린다.
그게 나였다.
어느 날, 여자아이의 시선이 주인집 아주머니가 돌보는 화단 쪽으로 향한다.
색색의 귀여운 꽃을 피우며 나지막이 영역을 넓혀가던 채송화에 머문다.
그 무리 중에 있던 채송화 하나가 여자아이에게 첫 반려식물이 되어주었다.
빈 플라스틱 주방세제통을 가위로 자르고 물 빠짐 구멍을 뚫은 화분에 작은 줄기를 옮겨 심었다.
하나 둘 꽃봉오리가 생겼고 분홍색 꽃이 오래도록 피고 지고를 반복했었다.
보잘것없는 화분에 담겼지만 채송화를 돌보는 재미에 외로움도 잊었다.
손수 만든 화분에서 키웠던 순수함과 특별함은 지금 생각하니 '작은 위로'가 분명했다.
몇 년 전엔 TV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배우 전미도)라는 인물 역시도 관심이 갔다.
다정다감한 품성을 지닌 의사 채송화는 먹깨비 별명으로 평소 식탐도 엄청난 반전매력의 인물이다.
나처럼 오빠가 3명이라는 공통점과 그래서 음식에 손을 빨리 댄다는 대사에 웃으며 공감을 했었다.
음식 먹는 속도가 비교적 빠른 나도 오빠만 3명이었으니까...
현역시절에는 이름 때문에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었다.
조직의 행정서비스 순위는 친절도 평가 점수와 무관하지 않았다.
전화 친절응대 매뉴얼은 직원들에게 주요 공람문서였고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사무실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리던 중에 팀장님 한 분이 비장하게 전화를 당겨 받으셨다.
늦게 받은 미안함을 언급하며 매뉴얼 멘트로 이렇게 응대하셨다.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센터 최송하입니다.
.......?
하필, 인사말과 이름의 라임이 딱 맞을 게 뭐람
그것도 아주 점잖은 목소리로 말이다.
매뉴얼은 잘못이 없었는데 옆에서 듣는 나는 아주 웃겨서 혼났다^^
그 여름을 통과 중에 우연히 채송화를 만났다.
지난 시절의 위로와 공감과 웃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무더위를 식혀준 길 위의 그 꽃이 슬기롭게 생존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