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를 돌아본다.
무더운 여름을 건너오는 동안 무언가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주먹 쥔 손 안에서 미끄러지는 모래알처럼 긴장감과 활력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의 실종된 긴장회로의 텅 빈자리를 유체이탈처럼 낯선 무기력이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폭염 속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몸과 마음은 지극히 단순해져 버린다.
본능적으로 냉방기 리모컨을 찾고 ‘시원한’ 상태 형용사만 중얼거리며 '동작 그만'이 되곤 한다.
야외 폭염주의보도 무섭지만 무차별한 실내 냉방기의 폭격도 달갑지 않은지 오래다.
자주 방문하는 집 근처 도서관이나 카페는 장시간 머물게 되면 서늘해서 머리가 띵할 정도다.
냉방온도에 갇혀있다가 다시 폭염에 담금질당하는 몸은 온도조절의 피로감으로 누적되어 갔다.
또 매년 같은자리에 붉은 땀띠가 목덜미와 팔목 부위에 나타나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집안 공기의 흐름을 좌우하면서 수면의 질도 리모컨에 조종당했다.
잠은 잤는데 피곤은 그대로인 덜 개운함이 반복되는 아침의 연속이었다.
7월의 전투적인 폭염을 맛본 탓인지 8월의 한 낮이 견딜만할 정도로 느껴졌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도심의 오후를 덮어주었고 가끔은 소나기가 성난 아스팔트를 식혀 주었다.
8월의 달력이 품은 입추와 말복은 더위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
말복이 삼계탕 국물처럼 더위를 완전히 삼켜버렸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선풍기의 풍속을 낮추며 방황했던 나의 루틴들과 정면으로 마주해 보았다.
여름동안 흔적이 닿지 않은 다이어리와 각종 커뮤니티 챌린지 활동 등에 잠복중인 게으름을 지워버렸다.
더위에 기대어 흐물거리고 느슨해진 마음근력이 스스로도 씁쓸했다.
마음청소를 시작으로 나의 시야는 집안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그동안 조금 무심했던 거실의 반려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사람키를 훌쩍 넘긴 파키라, 새순이 무성해진 금전수는 누렇게 지친 가지들도 보였다.
곁가지와 누런 잎을 자르는 과정은 지친 여름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과 같았다.
게으른 식물집사 때문에 마르고 잘려나간 이파리와 줄기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올봄에 진딧물이 생겨서 천연 살충제를 뿌렸던 녹보수는 다행히 고비를 넘긴 듯 보였다.
광택을 잃어버린 늙은 잎사귀 사이에서 윤기 있는 새잎들이 여기저기 돋아나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빛바랜 마른 가지를 다듬고 나서 잠시 거실바닥에 털썩 앉았다.
녹보수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작은 초록지붕처럼 아늑함이 느껴졌다.
흐뭇하게 정돈된 화분을 살펴보다가 문득 떨어진 하얀 꽃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이리저리 살펴보니 녹보수 아래쪽 줄기에 남겨진 기다란 수술이 보였다.
두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송이의 꽃을 피웠던 모양이다.
7월 중에 피었던 꽃을 지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다니...
여름 내내 식물집사의 무심함으로 건조한 날을 견디며 생존본능으로 꽃을 피웠나 보다.
진딧물의 공격으로 맥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예쁜 꽃까지 피우다니 놀라웠다.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가며 아무도 몰래 꽃을 피운 녹보수가 고마우면서 기특했다.
“어라?”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금전수에도 꽃이 피었다.
악조건 속에 꽃 피운 결과물들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여름이 남긴 건 무기력에 대한 얕은 후회와 반성만은 아니었다.
근력과 성장이란 무엇인지 식물의 작은 가르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