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소에서 욕심을 샀다

by 초록맘

벌써 한 달 만이다.

남편과 함께 파주 요양원에 시아버님을 뵈러 왔다.

그 사이, 두 시누네가 번갈아 아버님을 뵙고 왔던 사진이 톡방에 올라왔었다.

빠른 지우개를 품고 있는 아버님의 하얀 기억은 여전히 ‘순간’만 유효하다.

“아버님~

지난주에 시누네 가족이 와서 손자손녀도 보시고 좋으셨지요?”

(웃으시며)

“왔다 갔나? 난 몰~라” 하신다.

당황하지 않고 우리도 그냥 한바탕 웃으면 그만이다.




느리게 차에 올라타신 아버님과 요양원을 빠져나오며 장난스럽게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물었다.

아버님 마음을 아는 듯 남편은 벌써 임진각을 목적지로 내비게이션 안내시작을 눌렀다.

도보 이동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할 것 같은데 남편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임진각으로 향하던 중간에 판문점과 제3땅굴 도로 이정표가 보이자 서둘러 목적지를 바꾸기도 했다.

“거기가 자가용으로 갈 수 있는 곳인가? 아버님이 도저히 못 걸으실 텐데...”

“우선 가보자, 아버님도 궁금하실 테니”

무계획을 싫어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일단 먼저 움직여 보는 성격이다.




변경된 목적지에 도착하자 도로 통제구간이 보이고 군 초소와 보초병들이 서 있었다.

출입구 양쪽에 군인트럭 한 대와 대형버스가 출입절차를 밟고 있는 듯 보였다.

도무지 다른 승용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군인 트럭이 앞서 들어가고 우리 차례가 되어 운전석 창문을 열었다.

아들 같은 앳된 얼굴의 군인은 잠시 차 안을 둘러보는 눈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저희가 판문점과 제3땅굴을 관람하고 싶어서 무작정 오긴 했는데요....”

흐려진 남편의 말에 군인은 임진각 매표소에서 예매를 하고 견학버스로 환승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며 유턴방향을 가리켰다.

"그럼 그렇지.. (머쓱)"




당초 목적지였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주차장은 빼곡했고 8월 하순의 햇볕은 강렬했다.

아버님과 남편을 먼저 건물 앞에 내려준 뒤 주차를 마치고 다시 만났다.

임진각스테이션을 둘러보던 남편은 ‘임진각평화곤돌라’를 타보자고 제안했다.

세계 최초의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 구간을 운행하는 곤돌라였다.


이미 남편은 보안서약서와 탑승객 인적사항을 적는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휠체어라도 있으면 모를까 역시나 아버님 보행 컨디션이 걱정이었다.

안내직원에게 확인하러 간 남편은 단순히 휠체어 탑승이 안 된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휠체어에 탄 채로 탑승이 안 되는 거였고 곤돌라에 탈 때는 접으면 가능한 것이었다.

질문이든 답변이든 중요한 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850m 곤돌라 탑승구간은 마치 아버님을 위한 맞춤형 관람 좌석 같았다.

곤돌라 위에서 바라본 DMZ 하늘길은 탁 트인 녹색 평야와 임진강이 어우러진 멋진 뷰였다.




상부의 DMZ스테이션에 도착해서 휠체어 여부를 재확인했지만 아쉬운 답변만 들었다.

예약한 캘러리그리브스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지만 경사가 제법 있는 오르막길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남편은 아버님을 등에 업고서 경사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안쓰러운 아들의 어깨를 꼭 껴안은 아버님이 “안 되겠다, 돌아가자”라며 내리기 전까지 말이다.




걸음을 포기하고 시원한 카페에서 곤돌라가 오가는 멋진 DMZ 풍경을 실컷 감상했다.

어쩌면 남편은 아버님의 보폭과 컨디션의 기준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나 보다.

매표소에서 우리는 욕심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아버님을 위해서 생각한 진심만은 결코 의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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