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이다.
폭우와 폭염을 토해내던 여름도 정점을 지났다.
조만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속절없이 쪼그라 들 얄미웠던 여름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 집 오래된 베란다 창틀로 스며들던 빗방울은 벽에 문신 같은 얼룩을 새겼다.
얼룩을 지우며 여름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코스프레를 이어가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의 진심을 읽었다.
재개발이 추진 중인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20년이 되어간다.
돌봄이 필요해진 오래된 아파트와의 시간을 문득 돌이켜 보았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5살이던 어느 봄날에 이삿짐 트럭과 함께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
그때와 달라진 아이들의 키높이를 가장 놀라워하는 이웃은 아래층 어르신들이다.
계단에서 마주쳐 인사를 올리면 매번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요만했던 애들이 이렇게나 컸어요?
정말 몰라 보겠네”
“네네(웃음)”
내색은 안 했지만 어르신들의 모습도 우리 아이들만큼이나 많이 변했음을 나는 기억한다.
중절모 사이로 보이는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과 패인 주름이 지나간 세월을 말해 준다.
오래된 이웃들과의 반가운 인사를 뒤로 하고 1층 출입문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파트의 지난 시간은 주변의 묵직한 나무들의 성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나무터널이 되어 버린 벚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초록 지붕으로 넉넉한 그늘을 만들었다.
1층 아주머니가 재미 삼아 키운다는 놀이터 울타리를 빙 둘러싼 화분들도 보인다.
주렁주렁 빨간 열매를 생산한 방울토마토 화분은 철재 울타리의 부축을 반기는 눈치였다.
사람키를 훌쩍 넘긴 빨간 풋고추와 푸른 쌈채소 화분에도 잠시 시선이 머문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자 재활용 분리수거장과 제1경비초소가 시야에 등장한다.
세 갈래 길목이 만나는 이곳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우뚝 서 있다.
아마도 우리 아파트의 역사를 가장 처음, 가장 오래 지켜본 나무가 분명해 보인다.
한 나무에 여러 개의 새 둥지가 보일 정도로 풍성한 나뭇가지에 우람한 크기와 높이를 자랑한다.
그만큼 가을 낙엽도 만만치 않아서 경비아저씨들의 수고를 부르기도 한다.
정문 쪽으로 향하는 경사로 초입에서 만나는 오렌지색 덩굴인 능소화도 빼놓을 수 없다.
6월부터 9월 초까지 트로피칼 주홍으로 여름을 뽐내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을 가리고 피하기에 급급했는데 거침없이 피고 지는 능소화의 당당함이 참 매력적이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 단지에는 눈높이에 닿는 친근한 과실나무들도 많다.
윤기 나는 작은 이파리 사이사이에서 여름 초록 대추가 알알이 존재감을 뽐냈다.
큰 지붕처럼 드리워진 감나무에도 제법 튼실한 모양을 갖춘 초록색 감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도로보다 높은 위치의 아파트 정문옆 계단은 키 큰 은행나무가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맞닿아 있다.
사계절 내내 은행나무의 성장과정을 1인칭 눈높이 시점으로 관찰이 가능할 정도다.
손톱만 한 새싹이 돋다가 은행이 영글고 노란 단풍이 물들며 떨어지는 모습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현재 8월의 은행나무는 초록구슬을 주렁주렁 매달며 자연의 시간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두가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 천둥과 번개라는 여름의 성장통을 견딘 결과물이었다.
아이들을 키워 온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느리게 걷고 자세히 보니 정말 사랑스러웠다.
오래된 공간에서 여름이 여름답게 여름만큼 자연을 키우고 있었다.
비호감이라고 생각했던 여름이 여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