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인색하다.
쇼핑몰에서 자신의 옷을 고르거나 선택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다.
나이도 들었고 지위도 달라졌지만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은지 모르겠다.
“자기야! 여기 세일 많이 하는데 당신 옷 한 벌만 사자”
“괜찮아(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답정너'인 남편의 무조건적인 거절 멘트는 아내를 무시하는 스트레스로 느껴진지도 오래다.
고집 센 남편과의 뻔한 실랑이가 싫어서 두 말하지 않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드디어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이틀 후면 남편의 생일이다.
내가 정할 선물 품목은 당연히 ‘옷’이다.
남편도 두 말 없이 반길 옷은 예상컨대 아웃도어가 분명했다.
등산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남편은 아웃도어 관련 유튜브를 즐겨보곤 했었다.
그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크테릭스(Arc’teryx)’브랜드를 맘에 두고 있는 눈치였다.
캐나다 브랜드인 ‘아크테릭스(Arc’teryx)’는 아웃도어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정도로 가격이 후덜덜하기로 유명하다.
몇 년째 벼르기만 하고 선뜻 지르지 못하는 남편이다.
소심한 남편의 결정장애를 생일선물로 포장해서 종지부를 찍어줄 때가 온 것 같았다.
광장시장과 인접한 종로 5가 아웃도어 거리를 찾았다.
벌써 남편과 여러 번 방문했던 장소지만 오늘은 친한 동생과 함께였다.
먼저 배부터 채우고 쇼핑을 해야 충동구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우리만의 합리화를 실천했다.
근처 광장시장의 ‘순이네 빈대떡’에서 녹두빈대떡과 고기완자와 마약김밥을 주문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먹거리들과 즐거움을 나누고서 아크테릭스 매장으로 향했다.
이미 결정한 용기와 배부른 포만감이 선물 선택의 속전속결을 도와주었다.
저녁 무렵 집으로 퇴근한 생일 주인공을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무심히 앉아있는 남편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우선, 오랜만에 쓴 남편을 위한 손 편지를 건넸다.
빙그레 웃는 남편에게 허리 뒤춤에 숨겼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명풍 쇼핑백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남편이 귀여웠다.
내가 고른 바람막이 재킷을 입어보던 남편은 사이즈가 조금 크다며 함께 교환하러 가자고 했다.
배 둘레를 감안하면 M사이즈가 적당 한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다른 뜻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일날에 남편은 오후 반가를 냈고 우리는 아웃도어 매장을 다시 찾았다.
사이즈 교환은 핑계였고 남편이 평소 마음에 두었던 아크테릭스 ‘아톰’ 재킷으로 교환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귀를 의심하는 말을 했다.
“당신도 같은 걸로 골라봐, 내가 생일 선물로 사줄게!
같이 산에 가자!"
알고 보니 윤달이 있는 올해는 남편의 음력생일과 나의 양력 생일날이 신기하게도 같았다.
전혀 예상 못한 생일 스토리 전개였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내가 건넨 선물이 결국 둘을 위한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내가 알던 내 남편이 맞나 싶었다.
정작 본인에겐 인색하던 남편의 명품 같은 배려심에 그만 심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