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필이면 브런치 뷔페에서 말이다.
딸이 엄마 전화번호를 누를 때는 대개 두 가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용돈이 궁한 경우이거나 뭔가 재미난 경험이나 특별한 이슈가 생겼을 때다.
그날도 뭔가 대단한 일처럼 상기된 딸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간지럽혔다.
딸과 통화하기 1시간 전 즈음이다.
수요일 오전 문화센터 수업을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언니와 근처 가성비 좋은 뷔페 맛집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삼각지 고가옆에 위치한 MY BRUNCH라는 호텔 조식 겸 한식 브런치카페다.
호텔 이용객이 아닌 일반손님은 16,500원인데 샐러드, 한식, 양식, 디저트로 나름 구성이 알차다.
요즘 웬만한 브런치카페에 지불하는 빵과 커피 가격을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특히 비빔밥 코너 아래에는 소형컵라면이 취향과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에어비앤비숙소에서 운영하는 호텔조식 분위기의 맛집이었다.
건물 1층의 널찍한 공간과 바깥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통창의 깔끔한 인테리어도 좋았다.
우린 조용한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푸짐한 샐러드 한 접시로 슬슬 시동을 걸었다.
스시와 불고기, 야채튀김과 전, 비빔밥과 쌀국수 등 부담 없는 가성비를 차례로 즐겼다.
문득, 5성급 호텔에서 매일 조식루틴을 즐긴다는 배우 선우용녀분이 생각났다.
방송 도중 발견된 뇌경색은 자신을 돌볼 틈 없이 일만 했던 지난 시간의 결과라고 말했다.
“입에 들어가는 건 아끼지 마세요”라는 여배우의 말에도 울림이 있었다.
건강을 위해 스스로를 대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사치'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암튼 5성급 호텔은 아니지만 나를 대접하며 천천히 후식 커피로 마무리하려던 중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예쁜 딸’로 저장된 문구와 딸의 얼굴 드로잉이 화면상에 나타났다.
“엄마, 어디야?”로 시작되는 딸의 폭풍 같은 이야기보따리가 쏟아졌다.
“엄마! 글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수업 중에 기숙사 룸메 후배한테서 다짜고짜 카톡 문자가 온 거예요”
“언니! 벌레 잘 잡아요?”(후배)
“아니, 전혀!”(딸)
"기숙사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대요
그다지 순발력이 없는 벌레였는지 후배가 엉겁결에 종이컵으로 덮어 놓았대요
후배가 처리할 자신이 없다고 하니 어떡하겠어요ㅠ
일단 도망 못 가게 그대로 잘 잡아 두라고 말했죠”
수업 내내 그 바퀴벌레를 어떻게 처리할지 시뮬레이션을 200번이나 돌려봤어요!”
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나도 뷔페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귀를 기울였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보니 처리하기 애매한 구석에 종이컵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후배에게 적당한 위치까지 종이컵을 끌고 와 달라고 했죠.
후배가 컵을 끌어당겨 오는데 바퀴벌레 더듬이가 밖으로 살짝 보이는 거예요
아이~~~ 징그러워”(딸의 혼잣말)
도저히 종이컵을 열 자신은 없고 해서 고민고민 하다가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크록스 신발을 신고 종이컵을 그냥 발로 확 밟아 버렸어요!"
그 뒤로 애꿎은 휴지만 돌돌 말아 뒤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영웅담이었고 엄마로서 격려의 말을 보태주며 통화를 마칠 수밖에...
뷔페에서 생뚱맞게도 리얼 버라이어티한 벌레 에피소드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피식 웃음이 났고 한 강연에서 “알면 사랑한다”라고 강조하시던 최재천 생태학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혐오스러운 바퀴벌레조차 생태계의 가치를 알게 되면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조금은 갑작스러웠던 딸의 이야기에 나도 엉뚱한 상상을 하며 후식 커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