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김밥

by 초록맘

“친구야!

오늘 스케줄이 어떠니?

동물원 둘레길 걷고 싶다~~”

오전에 즉흥적으로 던진 나의 카톡에 친구의 반응은 빨랐고 긍정적인 답이 왔다.

그렇게 초등동창인 친구와 낮 12시에 대공원 입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정해졌다.

가을가을한 10월의 햇살과 바람이 자꾸만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요즘이다.




갑작스러운 피크닉을 위해 포장김밥을 사가겠다고 친구에게 말했지만 혼자서 내적 갈등을 했다.

마침, 김밥용 김도 집에 있고.. 허물없는 친구랑 먹는 건데 직접 쌀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주재료인 단무지가 없어서 고민했지만 김밥의 속재료에 대한 편견을 지우니 맘이 편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든든한 식재료 하나가 결정적 동기부여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추석에 선물로 받은 ‘포천이동갈비’가 그것이다.


바로, 주방 식탁에는 김밥 시스템 작동을 위해 도구와 식재료가 세팅되기 시작했다.

양념 이동갈비를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익힌 후 뼈를 바르고 세로로 길쭉하게 잘랐다.

계란지단과 파프리카(빨강, 노랑)도 길게 자르고 깻잎도 냉장고 야채칸에서 찾았다.

단무지를 대신해서 고추장아찌를 곱게 다져 넣기로 했다.

대나무 김발 위에 김을 한 장 올려 참기름과 깨(소금)로 간을 맞춘 밥을 고르게 폈다.

깻잎 두장을 깔고 양념갈비와 계란지단, 파프리카, 다진 고추장아찌를 올렸다.


10장의 김 중에서 급한 대로 4장만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에 담았다.

설거지는 외면한 채 남은 김 6장은 지퍼팩에 밀봉해 두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어느새 대공원 입구에 도착해 데크로 만든 쉼터 테이블에 앉았다.

몰래 서프라이즈로 뚜껑을 연 김밥도시락이 가을하늘 아래에서 친구를 웃게 만들었다.




낮에 친구와 보낸 힐링 탓인지 집에 돌아와 마주한 설거지조차 반가웠다.

주방을 정리하고 전기밥솥에 저녁밥이 완성될 즈음 현관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구두를 벗으며 마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처럼 말했다.

“ 나, 배고파”(남편)

“김밥 만들어 줄까?”

“좋지”(남편)


낮에 김밥도시락을 만들고 남은 김으로 저녁에 두 번째 김밥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오는 길에 부족했던 단무지와 게맛살 재료를 동네슈퍼에서 사 온 덕분에 망설임은 없었다.

남편 앞에 뚝딱 김밥 한 접시를 내놓으니 군더더기 반찬도 필요 없었다.

아내의 즉석 김밥에 감동하며 맛있게 먹는 남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딸과 아들을 위해서만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말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처럼 남편만을 생각하며 김밥에 정성을 쏟은 적은 처음이었다.

남편에 대한 묘한 애틋함까지 김밥접시 옆에 나란히 놓였다.

오직 나한테만 보이는 마음이었다.




세 번째 김밥시스템이 가동된 것은 다음날, 점심 무렵이었다.

렌털로 사용 중인 공기청정기의 정기 서비스를 위해 여성 전문가 한 분이 방문하셨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밝고 기분 좋은 인사를 먼저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어요?” (여사님)

“네네”(나)

형식적인 답변을 하고 점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 한편에서 꼼꼼하게 점검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다시 안부를 묻게 되었다.

“올여름은 워낙 더워서 여사님도 일하시기 힘드셨겠어요...”

“말도 마세요... 남편이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여사님)

“어디가 아프셨어요?”

“남편이 방광암 때문에 수술을 받았거든요”(여사님)

“아이고.....”

밝은 성격과 반대로 예상 못한 여사님의 답변에 잠시 마음이 먹먹해졌다.

서비스가 끝나갈 무렵, 어제 남은 김과 속재료에 볶음김치를 추가로 넣어 김밥 두 접시를 완성했다.


“여사님! 여기 앉으셔서 같이 김밥 좀 드셔요!”

“어머나... 정말이요?

고소한 냄새가 나더니만, 너무 예쁘고 맛있어 보여요! (놀라시며 휴대폰 사진까지 찍으신다)


어쩌다 보니, 나의 김밥은 친구를 위해,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낯선 인연을 위한 스토리를 품었다.

속재료가 있든 없든, 몇 번을 만들든 김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마음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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