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없는 펜션 가족모임 시즌3

by 초록맘

여름 장마를 거치고 긴~폭염의 시간을 버텼더니 어느덧 10월에 도착했다.

달력에 인쇄된 빨간 숫자들이 한 줄 기차처럼 연결된 모양이 무척 사랑스럽다.

개천절과 주말, 추석, 대체휴무의 절묘한 조합으로 탄생한 황금연휴가 묘하게 설렌다.




남편은 올 추석에도 아버님 요양원과 가까운 파주에 독채 펜션을 예약했다.

제사 없는 펜션 가족모임 시즌3은 명절증후군과 피로감을 가족의 행복으로 대체한 기획시리즈다.

이번에는 특별히 미국에서 영구귀국하신 작은 아버님네 가족들도 합류하게 되었다.


2박 3일 일정에서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은 아무래도 가족들의 먹거리와 음식 메뉴였다.

조식과 점심, 석식으로 구분해서 고기요리와 해산물 요리 등으로 장보기를 준비해야 했다.

국물요리인 육개장과 부식재료는 큰 시누이가, 작은어머님과 형님도 나름의 몫을 분담하셨다.




고기와 해산물 담당이 된 우리는 체크인 당일 오전에 노량진 수산시장을 부지런히 들렀다.

북적이는 인파와 수족관 속 물고기들로 수산시장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해산물 바비큐를 위해 생새우와 가리비, 소라, 가자미를 장바구니에 담은 후 예약된 숙소로 향했다.


체크인 한 에어비앤비 독채 펜션은 감각적인 인테리어넓고 쾌적한 공간이 돋보였다.

파라솔과 원목 테이블이 놓인 마당 아래로는 푸른 잔디와 임진강뷰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별도로 마련된 주방 한편에는 커피 머신과 제빙기까지 있어서 감탄이 나왔다.

접이식 폴딩도어를 열면 바로 야외 바비큐장과 테이블이 만나는 공간 구성도 멋스러웠다.

깔끔한 자갈이 덮인 앞마당은 주차와 바비큐와 캠프파이어가 가능할 정도로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고 있었다.




펜션 호스트 부부의 섬세한 친절도 남달랐다.

게스트를 살뜰히 챙기는 건 기본이었고 인간미 넘치는 음식 나눔이 그대로 감동이었다.

직접 담근 겉절이 한 접시와 송편 한 접시, 알밤 한 봉지에 주인장의 훈훈한 마음이 건너왔다.

임진강의 물결처럼 호스트 부부의 인심도 유유히 우리 가족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옅은 구름이 드리운 날씨 덕분에 야외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 저마다의 모습도 편안해 보였다.

시아버님은 비록 돌봄의 대상이지만 존재만으로도 가족모임을 이끈 주역이 되셨다.

미국 조카인 켈리와 리오는 마당 여기저기를 귀여운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주방 가스불에서는 작은어머님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새우찜과 가자미찜이 익어가고 있었다.

바비큐 그릴 속에는 통삼겹과 파인애플과 새송이버섯이 지글지글 연기로 훈연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미국 큰 도련님이 집게와 가위로 맛있게 성형한 통삼겹은 제대로 육즙을 담아냈다.

바비큐 고기와 해산물, 잘 익은 김치와 쌈채소, 장아찌들이 모두 한상 차림으로 어울렸다.




해도 저물고 가족의 분주했던 소음도 삼킨 까만 앞마당에는 작은 모닥불이 마련되었다.

아이들은 막대에 구운 마시멜로우를 호호 불며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숯불속에는 알밤과 선물로 받은 학센(독일식 족발)이 모두의 기대 속에 노릇하게 익고 있었다.

쇠꼬치에 꽂은 수제 소시지를 바삭하게 익혀 먹는 재미도 솔솔 했다.

호일에 싸서 숯불에 던져 구운 통양파의 달달함까지 기대 이상이었다.




생각해 보니 2박 3일 제사 없는 펜션 가족모임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해프닝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들과 육개장, 그리고 냉장고로 이어진 대참사였다.

큰 시누가 김치통에 한가득 만들어온 육개장을 아들이 냉장고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양문형 냉장고 위칸에 육개장 김치통을 무리하게 넣으려다 그만 뚜껑이 열렸고 붉은 폭포수처럼 사방에 쏟아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냉장고 안쪽은 물론이고 주방 바닥과 아들의 옷이 붉은 육개장 국물과 건더기로 뒤덮여버렸다.

건더기와 붉은 국물을 쓸고 닦느라 큰 시누와 둘이서 정말 생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처럼 바닥에 남겨진 육개장으로 큰 시누이는 심폐소생술을 성공시켰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처럼 육개장을 온 가족이 맛있게 먹고도 남은 뒷이야기가 신기할 정도다.




바비큐와 야외 테이블에서의 여유로운 낭만,

촉촉한 옛 노래의 정취가 흐르던 임진강 황포돛배,

아낌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재인폭포와 노란 코스모스 꽃밭,

모닥불 안에서 익어가던 소박한 먹거리와 불멍, 그리고 웃지 못할 육개장 해프닝까지

전두엽에 새겨진 가족들과의 추억이 깊고 진했다.


제사 없는 펜션 가족모임 시즌3에도 추억은 또렷했고 스트레스는 참을 수 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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