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명상

by 초록맘

이상했다.

여기가 이 시간에 이토록 차량이 많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남산공원 주차장 입구에는 빨간 브레이크등이 들어온 차량 수십대가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인근 도로에는 불법주차 차량들도 많이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아! 남산도 ‘서울세계불꽃축제’의 관람 명소중 하나였구나"

조용한 걷기를 원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뭔가 꼬이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해졌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별로였다.

가벼운 감기증세로 약을 먹었더니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깨어나 보니 저녁 6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남편은 마치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 걸으러 나가자”(남편)

“이 시간에 어디로?”(나)

“남산타워 올라갔다 내려오면 좋지”(남편)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감기 기운도 있던 터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운동화를 신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 탓인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고 막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차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차량 계기판은 운전석 뒷바퀴를 가리키며 ‘공기압이 낮습니다’라는 경고표시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잠시 차량을 세운 후 살펴보니 살짝 타이어 공기압이 낮아 보였다.

토요일 저녁시간이라서 아직까지 문을 연 카센터는 없을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서울역 롯데마트 안에 있는 정비소도 가 보았지만 역시 셔터문이 내려져 있었다.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심각한 건 아니라며 그대로 남산공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불안감을 안고 도착한 남산공원 주차장입구는 뜻밖에 주차대기 차량 행렬로 넘쳐났다.

기어코 불법주차까지 하면서까지 남산을 올라가자는 남편이 속으로 원망스러웠다.

냉랭해진 우린 말없이 차에서 내렸고 남산공원 경사로를 올라 백범광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서울세계불꽃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폭음과 섬광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백범광장 잔디밭에는 먹다 남은 도시락과 간식이 놓인 돗자리들만 주인 없는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돗자리의 주인들은 일제히 성곽 주변으로 올라서서 남서쪽방향의 여의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불꽃구경 명당자리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듬성듬성 시야를 가린 울창한 소나무들만 야속했다.




남편은 최고의 불꽃구경 명당자리는 '남산타워 전망대'라면서 더 위로 올라가자고 재촉했다.

계단의 중간즈음 평지에 다다르자 벌써부터 앉아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안전요원들이 있었지만 통행로 확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것은 포기하고 중턱 화단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불꽃축제는 작년 한강 여의도에서 직관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보석처럼 깔린 도심야경과 까만 하늘 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터지는 불꽃의 어울림이 몹시 화려해 보였다.

남산에서는 마포대교 서편과 한강철교 동편 두 곳에서 터지는 쌍둥이 불꽃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었다.


동그랗게 물결처럼 퍼지면서 천천히 폭포같이 쏟아지는 불꽃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려한 불꽃에 집중을 하다 보니 저절로 '명상'이 되었나 보다.

나를 괴롭혔던 감기도, 불안했던 타이어 공기압도, 불법주차의 찝찝한 마음도, 남편과 냉랭해진 감정도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명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명상이다.

불꽃을 바라보며 집중한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불안하고 불편했던 감정들이 사그라들었다.




불꽃축제가 끝나고 남산 계단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고즈넉한 가을저녁의 숲 속 공기와 습도, 가로등 불빛에 마음까지 훈훈해지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걷기보다 특별했던 '불꽃 명상'의 여운이 그림자처럼 길게 우리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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