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센터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렸다.
복도를 따라 쭈욱 걸어가면 막다른 곳에 꿈나무극장(강당)이 있다.
우측 창가의 벽 쪽으로 몸을 돌리면 방석들이 가득 쌓인 데크가 보인다.
아침 햇살과 적막한 복도의 훈훈한 공기를 가르며 데크 모퉁이에 앉는다.
정면의 벽시계를 보며 어디쯤 오고 있을 띠동갑 언니를 기다린다.
이곳은 영어 스터디를 위한 우리만의 아지트 공간이 되었다.
매주 수요일 영어공부 루틴이 1시간 빨라지게 된 것은 언니를 만나고부터였다.
초급영어를 등록 한지 꽤 시간이 흘렀어도 강의실만 나오면 금방 머리가 하얘졌고 책과 멀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으로는 영어에 대한 자극이나 그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다.
별다른 목표의식과 긴장감이 없는 자기 계발은 조금씩 근력이 빠지고 있었다.
어느덧 9월이 시작되자 강의실은 전 보다 활기가 느껴졌다.
젊은 일본인 여성 두 분을 비롯해서 5명 정도 수강생이 더 늘어난 이유였다.
그날은 지금의 띠동갑 언니가 내 옆자리에 처음 앉은 날이기도 했다.
강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걸로 봐서는 언니에게 한동안 영어의 공백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수업중에 나의 파트너가 되었던 언니는 중간에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 반에 스터디그룹은 따로 없나요?”(언니)
“네.. 수업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더라고요"
“그럼 저랑 둘이 스터디할래요?”(언니)
“네? 둘이서요?”
갑작스러운 언니의 제안은 마치 청혼처럼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늘 제자리였던 영어실력이 내심 아쉽던 참이라 더 반갑게 들렸다.
그렇게 언니와의 인연은 스터디로 이어지면서 촘촘해지기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본 강의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우리는 아지트에서 만났다.
덕분에 서로 영어회화를 암기하고 확인하며 실력을 조금씩 키우고 있는 중이다.
민폐가 안되려는 마음이 학습 동기부여가 되었고 적당한 긴장감이 자극제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메뉴를 고심하던 나에게 언니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쉐이크쉑 버거가 궁금해서 먹고 싶은데 어때요?”(언니는 평소 존댓말을 사용)
“이 근처에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용산아이파크몰에 있어요”(언니)
“버스 타고 갈까요?”
“가까운 우리 집에 들러서 내차로 가요”(언니)
연세도 있는데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다는 언니가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SK사용자인 경우 T멤버십 앱에서 매주 수요일에 할인받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쉐이크쉑 버거 30% 할인 쿠폰과 홀리스 커피 쿠폰의 행복이 쇼핑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킨쉑과 프라이, 탄산음료를 11,690원에 그리고 할리스 커피를 단돈 500원으로 점심 한 끼를 즐겼다.
일흔 살 언니의 가이드로 앱을 켜고 쿠폰을 다운로드하면서 할인의 기쁨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특별한 수요일이었다.
영어공부 루틴과 멤버십 앱 할인으로 그야말로 마음과 지갑이 활짝 웃는 날이었다.
12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 언니지만 세대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이 들수록 배우려는 태도가 언니의 남다른 장점으로 보였다.
며칠 전 ‘영원한 현역’으로 불리신 故 이순재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도 존경스럽지만 더 대단한 건 91세까지 건강한 정신세계를 유지한 자기 관리 같았다.
생활습관과 더불어 배우로서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태도가 뇌기능 유지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띠동갑 언니를 보면서 건강한 멘탈관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