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도를 켜고 길을 더듬고 있어도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벼웠다.
누구와 어디를 가든지 앞장서는 길안내 어플은 여전히 빠르고 정확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조금 걷다 보니 모퉁이 골목에 세워진 네일샾 간판을 발견했다.
토끼 이모티콘 밑에 적힌 기본가격과 ‘3층으로 깡충 오세요’라고 적힌 A자형 안내판이 사랑스럽다.
오늘은 '네일샾'이라고 적어둔 글씨가 내 다이어리를 뚫고 나온 날이었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동생의 추천 덕분으로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후기가 좋은 네일샾인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살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과 기분 좋게 마주할 때가 있었다.
주로 ‘첫’이라는 관형사가 어떤 명사를 꾸밀 때 그랬던 것 같다.
첫 아이, 첫 직장, 첫 도전 등 경험의 시작이 주는 묘한 설렘들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인생 ‘첫 네일아트’를 위해 3층 계단을 올랐고 네일샾 문을 당겼다.
문을 열자 "안녕하세요" 인사말과 함께 온통 새 하얀 벽과 커튼, 테이블들이 먼저 눈을 밝혔다.
앉아있는 네일아티스트 뒤편으로 작고 예쁜 매니큐어병들이 든든한 병사들처럼 줄 맞춰 서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각종 네일 장비와 도구들은 노련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파스텔톤의 수많은 샘플 색상들은 하나같이 예뻐서 처음 찾은 손님에게 결정장애를 불렀다.
잠시 후, 젊은 네일아티스트 앞에 숙제검사받듯이 양손을 내미는 순간이 왔다.
손등에 불룩 튀어나온 핏줄과 관절 마디마디 또렷해진 주름들이 괜히 눈에 거슬렸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바지런히 움직였으니 굵어진 건 당연한데 말이다.
내 몸의 일부에게 오늘따라 애잔함이 느껴졌다.
이런 내 속마음엔 관심도 없다는 듯 아티스트는 빠른 손놀림으로 오직 나의 손톱에만 집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파일 도구는 사포 비슷한 느낌으로 손톱을 매끈하게 다듬어 주었다.
손톱 아래쪽 피부로 덮인 부분을 푸셔로 밀어 올리고 니퍼로 짧게 자르는 큐티클 과정도 있었다.
기본 정리만 했을 뿐인데 짧고 뭉툭했던 손톱이 갸름하고 길게 변해서 이미 예뻤다.
나도 모르게 감탄 섞인 말이 나왔다.
“참 잘하시네요!
내 손톱이 이토록 예뻐 보였던 적이 있었나 싶네요”
“손톱은 정리만 잘해줘도 훨씬 예뻐요^^”(네일아티스트)
잔잔한 음악과 작은 전동드릴 소리가 유일한 공간에서 나온 마음의 소리였다.
고개를 숙인 채 정교한 집중력으로 몰입하는 네일아트 과정을 보며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처음엔 그저 낯선 일자리였을 네일아트가 대중화되고 정착되기까지의 스토리는 어땠을까?
네일아트라는 직업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같은 자세로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 목이 아프진 않을까? 수입은 얼마나 될까?
졸업과 취업을 앞둔 딸을 가진 엄마로서 청년 일자리에 대한 현실적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소 보수적인 가치관이 있는 나와 네일아트의 거리감을 생각하면 이 순간이 놀랍다는 생각도 했다.
가사와 설거지를 피할 수 없는 주부생활에서 불편하고 쓸모없는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네일샾 앞을 지나칠 때마다 애써 호기심과 도전 의지를 억눌렀던 기억도 났다.
낯설고 멀게 느껴지던 네일아트가 생애 작은 이벤트처럼 내 안에서 즐겁게 춤을 췄다.
손톱 강화제를 바르고 난 뒤 몇 차례의 컬러링이 반복되면서 나의 손톱은 확연히 달라졌다.
입체감 있는 살색 그러데이션에 반짝반짝 블링블링한 손톱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꾸만 습관처럼 손등을 폈다 접었다 하며 보고 또 보았다.
반들반들한 손톱 덕분에 손에 대한 자신감까지 뿜뿜 올라왔다.
반짝이는 색을 입은 손톱을 바라보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지탱해 주는 몸의 일부에게 "수고했어" 한 마디 건네지 못했었다.
늦게나마 다정함을 더해서 그냥 "고맙다"라고 전하고 싶다.
작은 이벤트 덕분에 주름진 손의 애씀과 고단함을 생각했고 짧은 마음의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