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엔 엄마의 그리움이 먼발치에서 성큼 다가온다.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겨울에 엄마와 사무치는 이별을 했다.
그 해 6월에는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TV로 생중계를 보느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이던 엄마의 안색을 미처 살피지 못했었다.
만삭이었던 나는 7월에 병원에서 딸을 낳았고 엄마는 병원에서 말기암 선고를 받으셨다.
같은 해 겪게 된 출생과 사망신고는 치열하고 잔인한 나의 인생 수업이었다.
엄마는 62살에 삶을 잃었고 나는 33살에 엄마를 잃었다.
돌아오는 수요일은 엄마의 스물세 번째 기일이다.
엄마의 기일을 며칠 앞두고 일요일 오전에 남편과 가평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에 ‘경춘공원묘원’를 검색하고 목적지 설정까지 완료했다.
바깥 기온은 섭씨 0도를 가리키다가 천천히 영상으로 숫자가 올라갔다.
엄마와 작별하던 그날의 포근했던 공기와 습도는 지금도 기억하는 따뜻했지만 슬픈 위로였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경춘로를 접어들자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맥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마도 전 날 많은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마치 수묵화를 닮은 하얀 풍경이 병풍처럼 이어졌다.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둘째 오빠와 휴게소에서 전화통화를 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 오빠! 지금 엄마 뵈러 가평 가는 길이야”
“ 그랬구나.. 미끄러울 텐데 조심히 다녀와라!”
전날 오빠는 가평에 내린 폭설로 경춘공원 관리사무소 측에서 보낸 안전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결빙된 도로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해서 방문 시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였다고 한다.
어느덧 우리 차는 경춘공원 표지석이 있는 입구로 진입했고 관리사무소가 있는 안쪽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현장근무 작업자들이 제설장비를 들고 왔다 갔다 분주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묘원으로 연결된 도로 입구에는 차량통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어떤 상황인지 문의를 해야 했다.
고인의 이름으로 묘의 위치 등 전산확인을 마친 직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부모님 묘는 제일 꼭대기에 계시네요..
걷기에 많이 미끄러울 텐데 다음에 오시는 게..”
걱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직원에게 일단 올라가 보겠다며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서둘러 차에서 술과 간단한 과일 등을 배낭에 챙겨 담았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눈길에도 안전한 아웃도어 신발을 착용한 상태였다.
기울어진 빙판길을 배낭을 멘 남편이 앞장섰고 뒤에서 조심조심 따라 걸었다.
정오의 따스한 햇빛 덕분에 결빙된 곳이 대부분 녹고 있어서 예상보다 위험하지는 않았다.
묘원으로 난 중앙도로를 걷다가 다시 완전히 눈이 녹은 지름길을 찾아 오르기도 했다.
부득이 다른 묘 앞을 통과할 때는 “잠시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로 고인께 예를 갖추기도 했다.
하얀 눈이 덮인 묘원에서 '미로 찾기'를 하듯이 여기저기 우리들의 눈 발자국을 남겼다.
제일 꼭대기의 널찍한 바위언덕 아래에 도착하자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하얀 눈에 가려졌다고 해도 못 찾을 리 없는 마음의 안식처 '부모님 묘소'가 보였다.
조금은 느리고 특별한 여정으로 엄마를 만났다.
하얗고 따뜻한 솜이불을 덮은 모습을 마주하며 절을 올렸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과 따스한 햇빛, 그리고 푸른 하늘이 함께 엎드렸다.
늘 그렇듯이 엄마 앞에서 가슴에 묻어 둔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먹먹한 떨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