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을 받은 느낌이다.
'필사'를 하다가 번진 마음의 파장은 마치 깨달음의 행복이었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주방 뒷정리를 마치고 습관처럼 식탁에 앉아 '필사'책을 열었을 뿐이다.
무심히 써 내려간 '필사' 한 페이지의 여운이 그토록 진할 줄 미처 몰랐다.
퇴직 후 소규모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필사 챌린지는 벌써 2년이 넘었다.
거창한 의미를 두기보다는 꾸준히 함께 써 보자는 결심으로 시작된 루틴이었다.
짧은 에세이부터 시집, 명상집 등에 수록된 다양한 문장들을 베껴 적던 시간이었고 마음에 닿는 결정적 인생 문장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중에는 선택이 살짝 아쉬웠던 필사책도 있었다.
365일 쓰기 구성으로 된 번역 필사본 한 권이 그랬었다.
좋은 내용이었으나 직역과 의역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어딘가 문장이 좀 어색했다.
필사를 하고자 한다면 되도록 원문을 직접 필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게 긴 여운을 던진 그 필사책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몇 장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필사를 하고 마침표를 찍었지만 곧바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문장에서 느낀 인사이트는 나만의 묵상으로 이어졌다.
2년 넘게 필사를 해 오면서 처음 느껴본 성찰의 시간이었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정혜신) -
나를 비롯해서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 남편, 내 아이들에게 했던 잔소리는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가까운 가족들에게 내가 뱉은 말의 거의 대부분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충조평판)이었다.
본질은 나의 충조평판에 한 번도 남편과 아이들이 감동하는 표정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욕설보다 바른말이 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거에 완전히 설득당해 버렸다.
짧은 필사 문장에게 조용하고 강력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바른말 대신 욕을 하는 게 낫다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 충조평판으로 귀결되는 바른말의 관점을 살짝 내 기준으로 돌려 말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눈이 침침하다는 남편이 어두운 침대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했던 말이다.
“어두운 데서 장시간 휴대폰을 보니까 자꾸만 눈이 충혈되잖아!”
라고 했던 말을 이렇게 바꿔 말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신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지는 걸 원치 않아”
정리정돈이 안 되는 아들과 딸의 방을 보고 했던 폭력적인 바른말도 생각났다.
“도대체 이게 뭐냐! 좀 치우면서 살아라!
깨끗한 곳에 좋은 에너지와 기운이 생긴다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하니!”
앞으로는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말해야겠다.
“엄마는 네가 깨끗한 공간에서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상대를 찌르는 충조평판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속마음만 군더더기 없이 말해야겠다.
더 이상 감동은 없고 상처만 남는 바른말? 은 멈춰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동안 무덤덤했던 필사의 시간들이 이 한 페이지 문장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느꼈다.
작은 인사이트가 주는 짜릿한 감동이었다.
며칠 후 차 안에서 남편에게 필사에서 받은 감동을 얘기했더니 이런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깨달았군!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