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러니까 그런 거겠지!"(엄마)
딸이 잠시 침묵하며 말했다.
"좀 예쁘게 말합시다!"(딸)
"아차!" 싶은 생각에 빠르게 "미안"을 외쳤다.
가끔 직설화법인 엄마의 말에 빨간펜을 들어주는 딸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다정한 대화법을 낯선 '제2외국어'처럼 배우며 살고 있다.
내 모국어에 결핍이 있다는 것을 어느 스타강사의 TV강연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원래의 말투를 모국어라고 한다.
모국어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집에서 좋은 모국어를 듣고 자란 사람이 좋은 모국어를 쓴다. -김창옥 강사-
한 사람의 소통능력은 그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엄마의 언어’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어릴 적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생계형 맞벌이 가정이었고 부모님은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쁘셨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성격과도 거리가 먼 분이셨다.
넷이나 되는 자식 뒷바라지로 엄마는 오랜 기간 식당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다.
식당일을 마치면 산더미 같은 밀린 집안일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막내딸과 눈을 맞추고 얘기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고 그런 기대는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희생'의 아이콘이었던 엄마를 보며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엄마와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내겐 없었다.
엄마 품이 그리워서 틈만 나면 엄마의 처진 젖가슴만 더듬었던 기억만 난다.
자라면서 나의 부러움의 대상은 다름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말을 잘하는 친구나 동료들이었다.
특히, 같은 말을 예쁘고 겸손하게 하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호감버튼이 눌러졌다.
권위적인 말투나 부정적인 말투를 쏟아내는 친구와는 의도적으로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대화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고구마를 삼킨 듯한 남편과의 대화, 매번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엇박자가 나곤 했다.
나의 직설화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외면하고 대화의 갈등원인을 상대방 탓으로만 여겼었다.
나의 모국어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은 말과 공감에 관련한 책과 강연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말그릇(김윤나), 언어의 온도(이기주),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김민성),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이해인), 당신이 옳다(정혜신)’ 등의 책들이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최근에는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 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NVC모델의 네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어떤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그대로 관찰한다.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관찰한 바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
가슴이 아프고 두렵다거나 기쁘고 즐겁다거나 짜증이 난다는 등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로, 그러한 느낌을 일으키는 내면의 어떤 욕구를 찾아 말한다.
넷째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책에 나온 예를 들자면 이렇다.
“아들아! 신었던 양말 두 켤레가 똘똘 말려서 탁자 밑에 있고, 또 TV 옆에도 있는 걸 보면(관찰)
엄마는 짜증이 난다(느낌).
왜냐하면 여럿이 함께 쓰는 공간은 좀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야(욕구).”
“그 양말들을 네 방으로 가져가거나, 세탁기에 넣어 둘 수 있겠니(부탁)?”
비난이나 충고 등을 뺀 엄마의 비폭력 대화의 흐름은 아들에게 자연스러운 연민을 만든다.
결심하기 좋은 1월에 나의 서툰 모국어를 알아차리고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쓰는 폭력적 언어와 대화 방식을 비폭력으로 바꾸면서 말이다.
'당신이 옳다'(정혜신)에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바른말이 의외로 폭력적이라고 했다.
관찰한 느낌을 말하고 바라는 욕구대로 부탁을 하는 ‘비폭력대화’를 느리고 더듬지만 따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