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남편과 근처 공원을 걷고 나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경비실을 지나 큰 느티나무 아래쪽으로 걸어가는데 까마귀 녀석들이 시끄럽게 운다.
요즘은 도심 아파트에서도 까마귀들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주말도 없이 꽤 시끄러운 녀석들이군ᆢ”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해 버렸다.
잠시 후 다시 집 밖을 나설 때는 남편이 아닌 노트북 가방을 데리고 나왔다.
집 앞 교회부설 카페에서 브런치 글을 쓸 생각이었다.
아파트 2동 앞을 지날 때에는 친한 S언니가 생각나서 습관처럼 출입문쪽을 힐끗 쳐다보게 된다.
작년에 손해사정사 시험에 합격한 S언니는 주말에는 실무교육을 받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나름의 추측을 하며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데 맞은편에서 S언니가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언니! 교육기간 아닌가요?”
“아.. 저 수원 가야 해서요..”
“무슨 일 있어요?”
“삼우제가 있어서요.. 며칠 전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왜 연락을 안 했느냐”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부담주기 싫어했을 언니 성격이 느껴졌다.
머뭇거리는 언니에게 짧은 위로만 건네고 걸음을 재촉하는 언니를 놓아주었다.
오랜 기간 투병 중이셨던 친정엄마의 병시중을 오빠와 번갈아 돕던 언니였다.
바쁜 언니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휴대폰 모바일 송금을 하고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우연찮게 작년 12월 초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웃의 부고 소식을 들었었다.
그 날은 저녁 무렵 남편과 경의선숲길 산책을 나가던 중이었다.
S언니를 만난 똑같은 위치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었다.
“(반갑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어디 가요?”(옆집)
“저녁 먹고 걸으러 가는 길이에요^^”
“네.. 잘 다녀와요”(옆집)
“네^^(돌아서려다 말고) 근데 할머니는 좀 어떠세요?”
“아..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옆집)
“네??!! 그런데 왜..”ㅠㅠ
빈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의 눈물이 핑 돌아서 발을 동동 굴렀었다.
돌아가신 할머님은 옆집 아주머니의 친정엄마다.
할머님께는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도움을 주셨던 따뜻한 성품의 어르신 이셨다.
아이들이 어려서 친정아버지로부터 육아의 도움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친정아버지마저 암선고를 받게 되면서 워킹맘의 일상이 흔들리게 되었다.
퇴근이 늦는 날에는 더욱 친정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었다.
그때마다 옆집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시곤 하셨다.
당시엔 팔순이셨던 할머니는 말씀도 잘하시고 정정하셨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무척 예뻐라 하셨고 바로 옆집이라서 최적의 동선이었다.
내가 퇴근 전까지 아이들의 저녁상을 봐주셨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얘기도 나눠 주셨었다.
오래도록 할머니를 기억하는 이유가 될것이다.
우연히 길에서 이웃의 부고소식을 듣고 장례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주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경조사를 알리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처럼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서운하거나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먼저 보듬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비싼 빈소 대관료, 음식 비용 등으로 무빈소 장례와 조용한 추모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건강할 때 지인들을 초대해 축제 형태로 작별인사를 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높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장례식에 틀어줬으면 하는 음악,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 묘비에 적고 싶은 문구 등이 미리 준비하는 ‘웰다잉’이 될 것이다.
어쩌면 장례의 형식과 절차보다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