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이 남긴 말씀들

by 초록맘

당신과의 단순한 대화는 슬퍼도 행복했습니다!


시야도 흐릿하고 씹는 것도 어렵고 요양원 생활이 답답도 하셨을 텐데 언제나 “난 괜찮다”라고 하셨다.

파주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도리어 내 마음이 안 괜찮았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당신을 걱정하면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 뭐”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곁에서 지켜본 당신은 특별히 누굴 미워하실 줄도 흉을 보실 줄도 모르는 분이셨다.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색칠하셨던 그런 시아버님이 떠나셨다.




시아버님이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폐렴이 심해져서 병원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버님은 한사코 입원을 마다하셨다.

어쩔 수 없이 의사의 처방약만 드시면서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결국 돌아가시기 3일 전에 급히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 첫날은 큰 시누에게 사위 안부도 묻고 짧은 대화도 하셨다고 한다.


둘째 날, 남편과 내가 요양병원을 찾았을 때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셨다.

항생제와 영양제 등의 수액을 맞으시며 금식 중이시던 아버님은 “물, 물 좀 줘” 하셨다.

안타깝게도 물수건으로 아버님의 마른입만 적셔드려야다.

“아버님! 주사액 맞고 나아지시면 다시 익숙한 요양원으로 우리 돌아가요”(며느리)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힘 없이 산소마스크와 함께 입을 움직이셨다.

“못 가”(시아버지)

“네?;;;”(며느리)

전혀 예상 못한 의외의 대답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님은 어렴풋이 마지막임을 직감하셨나 보다.


입원 셋째 날,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큰 시누 내외와 막내시누 내외가 병원을 찾았다.

검사수치는 안 좋았지만 시누들을 알아보시고 “내일 또 올게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했다.

그렇게 시누들이 문 밖을 나선 얼마 후, 아버님은 감은 눈을 다시는 뜨지 못하셨다.




시아버님은 7남매의 장남으로 연로하신 노부모님을 봉양하시며 성실하고 착하게 사신 분이다.

조강지처인 친시어머니와 일찍 사별하셨고 새시어머니와 재혼 후, 또 사별을 하셨다.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평생을 장애로 사셨지만 어떤 불평과 불만도 없으셨다.

재혼한 새시어머니의 불같은 성격과 성화에 시달리셨지만 결코 미움이란 없으셨던 분이다.

한 번은 시아버님께 조심스럽게 여쭤 본 적이 있었다.

“아버님.. 돌아가신 새시어머님 때문에 힘들지 않으셨어요?”(며느리)

“욕심이 조금 많은 사람이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시아버지)




잃어버린 한쪽 눈과 무너진 잇몸에도 누구 탓을 하거나 원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폐렴 기침 소리가 가냘픈 체구를 흔들어도 아픈데 없다고만 하시던 우리 아버님...

요양원을 찾는 자식들에게 요구사항 이라곤 소주 한 병과 빵 하나가 전부 셨던 분이었다.


뵐 때마다 한결같은 레퍼토리로 자식의 안부를 챙기곤 하셨다.

“회사는 잘 다니느냐, 월급은 얼마 받느냐, 사업은 잘 되느냐, 손님은 많으냐...”

당신만의 기준으로 표현하는 서툰 사랑이었다.


시아버님이 떠나시고 나서야 남긴 말씀의 흔적들과 조용히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린 조금만 힘들어도 “힘들어 죽겠네”라고 하고

누가 서운하고 섭섭하게 하면 “ 이래서 저래서 그 사람 별로야”라고 쉽게 미워했다.

어딘가 불편하고 아프기라도 하상대에게 더 많이 기대고 요구기 일쑤였다.

순간순간 화산처럼 분출되는 '마음의 소리'가 아버님 앞에서는 왜 작아지고 부끄러웠는지 알 것 같았다.




지극히 일상적 대화였던 시아버님의 말씀들이 잔잔한 울림과 깨달음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문득문득 떠 오르는 마음의 소리에 아버님의 말씀들'착한 거울'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니”

“다 괜찮다”

“안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삶과 죽음 뒤에 결국 기억되는 건 그 사람과 주고받은' 따뜻한 교감'과 '긍정 언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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