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아이는 갑자기 배드민턴채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배드민턴이 있나요?”
“아마도 거실 베란다 바구니에 있을 거야”(엄마)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배드민턴이 자꾸 치고 싶네
엄마랑 아빠는 배드민턴 잘 쳐요?”
“글세.. 그럭저럭”(엄마)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엄마대신 딸바보 아빠는 달랐다.
주말 아침이 되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베란다에서 부스럭부스럭 배드민턴 가방을 찾아 놓았다.
어느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딸이 아침밥을 다 먹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둘은 서로의 옷차림에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며 투닥거리더니 문밖을 나섰다.
한바탕 남편과 딸의 소란스러운 여운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삑삑삑' 도어록 소리가 났다.
현관문을 열고 먼저 들어온 딸의 시무룩한 얼굴과 마주쳤다.
혹시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배드민턴이 곤란했느냐고 물으려던 참에 딸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엄마! 아빠가 넘어졌어요;;
배드민턴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서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어쩌다 왜?”
“뒷걸음치며 무리해서 공을 받으려다 넘어졌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그만하자는 거예요”
놀란 두 사람은 약상자에서 맨소래담을 꺼내고 찜질팩을 찾느라 또 한 번 소란을 피웠다.
딸 앞에서 환자 코스프레를 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집에서는 유치한 장난을 좋아하고 철없어 보이는 남편도 벌써 올해로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마음과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 달 전 시아버님 장례를 마치고도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남편이었다.
감기는 나았지만 여전히 잔기침이 지속되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이는 못 속이는 듯 보였다.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영양제 외에는 남편을 위해 별다른 보약을 해준 기억이 없었다.
며칠 후, 큰 시누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중탕기로 만든 홍삼액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급한 성격 때문에 실행력이 좋은 나는 곧바로 휴대폰의 당근앱을 켰다.
웬일로 남편도 나의 건강프로젝트 계획을 내심 반기며 동참하는 눈치였다.
중고거래로 ‘오쿠 중탕기’를 검색했고 만족스러운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6개 정도의 건삼을 넣고 무수분으로 7시간 숙성한 후에 물을 붓고 6시간 30분을 달이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총 14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집안 전체에 가득 퍼진 홍삼 공기는 폐가 먼저 들이마셨다.
때로는 숙성에서 달임으로 빠르게 메뉴 버튼을 조정하기 위해 새벽에도 잠을 설쳐야 했다.
처음에 진하게 달인액과 재탕한 액을 반씩 섞어주면 각 1리터씩 3~4병의 홍삼달임 물이 완성된다.
노란 건삼이 흑삼이 되었다가 물을 넣고 달이면 까만 홍삼액이 추출되는 저온숙성 원리가 신기했다.
요즘 TV엔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홈쇼핑 광고가 넘쳐난다.
지갑만 열면 쉽게 사 먹을 수 있겠지만 수제로 만든 결과물이 주는 가치가 분명 있었다.
천천히 조리해서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슬로푸드의 힘이랄까?
직접 질 좋은 삼을 선택해서 느리게 만든 건강음료를 가족들에게 건네는 특별함은 비교 불가다.
매일 아침 정성스레 달인 홍삼차를 마시면서 남편은 아들과 딸도 잘 마시는지 꼭 안부를 묻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보약을 먹었던 아들은 익숙해서 두말없이 잘도 마신다.
반면에 딸아이는 살짝 째려보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잔은 비운다.
옷차림이 얇아지는 환절기 봄이다.
슬로푸드는 순수하고 느리고 수고스럽지만 깊고 진한 여운을 품은 두툼한 면역력으로 입혀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