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공유받은 전시회 링크의 썸네일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예박물관도 오픈런?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한 화제의 전시
게다가 눈처럼 하얀 드레스와 작가의 모습도 커버사진에 담겨있었다.
평소 관심사가 비슷한 동생과 나는 슬슬 날이 풀리자 가벼운 나들이를 계획하던 참이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공예박물관’이라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가 분명해 보였다.
안국역에서 가까운 곳인데 근처 맛집을 지인들과 자주 가곤 했었다.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열린 송현광장을 기준으로 봤을 때 ‘서울공예박물관’은 담장 너머 바로다.
예전 풍문여고 부지를 리모델링한 건물로 널찍하고 깔끔해 보였지만 가끔 눈길만 주었을 뿐이다.
박물관이라는 그저 그런 선입견과 ‘공예’ 취향에 내 마음이 썩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SNS 입소문과 관람기록에 이끌려 그 동생과 평일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렸다.
소금빵으로 핫플레이스가 된 ‘아티스트베이커리 안국’이 있는 골목 조금 안쪽에 '서울공예박물관'이 있다.
학교 부지였던 기억을 재미있게 상상해 가면서 박물관입구의 너른 잔디를 통과했다.
전시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벌써 많은 관람객들 손에 들린 휴대폰들이 작품들을 향하고 있었다.
물방울 모양의 예쁜 오브제들이 질서 있게 매달려 공간의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
철사로 그물처럼 엮은 오브제들은 빛과 관람자의 시선을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말이다.
다양한 구슬의 반짝임과 그림자의 실루엣도 아름다운 작품의 덤이 되었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시실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맞이한 작품은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백매(白梅)’라는 메인 드레스였다.
어두운 조명을 배경으로 거울에 비치는 화려하고 고결한 흰색 드레스의 신비로운 자태는 감탄을 불렀다.
공중부양된 작품들은 가림막도 없어서 자세한 관찰과 생생한 입체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고 천천히 360도를 회전하면 멋진 동영상 촬영도 가능했다.
단일 전시 최다 관람객 신기록을 세운 이유가 서서히 납득이 갔다.
‘백매(白梅)’와 대비되는 ‘홍매(紅梅)’ 와이어 드레스는 봄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색감이 예뻤다.
거미줄 패턴에 물방울 구슬장식을 한 흰색 화이어 드레스도 자연스럽고 인상적이었다.
입는 옷을 공간 조형예술로 만들고 자연(매화, 거미줄 등)에서 받은 영감을 패션으로 확장시킨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전시실 안쪽으로 갈수록 ‘패션아트’의 거장인 금기숙 작가님의 가치관이 느껴졌다.
금속, 섬유, 종이, 합성수지 등의 전시재료는 알고 보니 와이어, 구슬, 노방, 폐소재가 업사이클링된 것이었다.
폐단추, 빨대, 스펀지, 한복 자투리 천(노방), 스티로폼, 포장 은박지를 잘라서 만든 환경을 생각한 재해석이 놀라웠다.
지구 온난화와 쓰레기처리 문제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입고 쓰고 버리는 의류에 대한 소비 시스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였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남은 가장 긴 여운은 아래 내용이었다.
작가님의 창작 모티브와 관련된 어린 시절 이야기가 순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서너 살 초여름에 담황색 감나무꽃이 마당에 가득 떨어지면,
어머니는 내게 굵은 무명실을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그 실을 끌며 마당으로 나가 감꽃을 하나씩 꿰며 놀았다.
감꽃은 꽃받침 부분이 없어 통통한 꽃 부분만 떨어져 실에 꿰기가 쉬웠다.
감꽃을 실에 가득 꿰어 자랑하면,
어머니가 양 끝을 묶어서 목에 걸어 주셨다.
감꽃 목걸이를 걸고 꽃을 하나씩 뜯어먹으며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무명실은 철사가 되었고 감꽃은 구슬과 리본으로 바뀌었다.
- 금기숙 작가의 글 -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놀았을 어린 작가님을 상상하니 지그시 엄마 미소가 생겼다.
어쩌면 우리 삶에 도드라진 원형은 어릴 적 그린 밑그림 속에 숨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