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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Nov 10. 2024

작고 느린 발걸음도 결국엔 나의 길로 향한다는 것을

오늘도 느리게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마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서서히 가슴속에 자리를 잡았다. 뭐라도 이뤄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았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속도를 내려놓고 내 발을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남들처럼 빠르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지금 내 속도로 걸어보자고. 


작은 걸음이지만, 한 걸음씩 조심스레 내디뎌보았다. 누군가의 속도와 맞추려 애쓰지 않고 나의 리듬대로 걸으니 그제야 주변이 차분히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나뭇잎들, 길가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풀꽃이 눈에 들어왔다. 분주히 지나쳤다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작은 세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치 나의 걸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다가와 그 소리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나만이 마주하는 순간들.. 이 느린 걸음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다. 내 걸음이 더디고 작지만, 그 덕에 지금 여기서만 보이는 작은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가슴속에 맴돌던 조급함이 조금 가라앉았다.


앞서가는 이들을 향한 부러움과 초조함이 가라앉으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속도도 나만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린 걸음일지라도,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언젠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남들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자꾸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 했던 걸까?


이제 발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마치 세상이 내 속도에 맞춰주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이렇게 작은 걸음 속에서도 나를 위한 의미들이 고요히 숨 쉬고 있다고 으쓱거려 보기도 한다. 남들은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고 있을지라도, 내가 머무는 이 길 위에도 내가 자라나는 시간이 깃들어 있다는 걸. 바삐 나아가기만 했던 발걸음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속에서 나의 길을 더 깊이 만나고 있다.


그래, 나는 오늘도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비록 조금 느리고 천천히 가는 걸음일지라도, 이젠 잊지 않는다. 작고 느린 발걸음도 결국엔 나의 길로 향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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