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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13. 2024

아름다운 나의 소녀시절


아빠와의 새로운 삶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걸어갔다.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던 새벽, 아빠는 나를 업고 걷고 또 걸었다.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그 길은 멀었고 우리는 지쳐있었다. 아빠의 등에 업혀 얼굴을 기대고 발밑의 보도블록만 멍하니 내려다보며, 우리는  끝에서 끝까지 한참 걸었다. 아빠는 나를 책임지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셨지만, 그 결심은  현실 앞에서 언제나 깨지는 듯 싶었다.  할머니에게는 고집불통의 아들이었고, 엄마에게는 가정을 버린 남편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함께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새로운 삶이 정말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마음에도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다. 아빠의 등에서 느껴지는 체온과, 가로등의 별빛이 내 유일한 위로였다.


아빠를 따라 간 집에는 계모가 있었다. 난 그를 이모라고 불렀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어른들과는 전혀 달랐다. 화가 나면 주저 없이 폭발하고, 다음날이면 금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는 항상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느꼈다. 나를 돌보는 일이 그에게는 내키지 않는 부담임을. 난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늘 애썼다.

어쩌다 칭찬을 바라고 설거지를 해도, 계모는 인상을 찌푸리며 "깨끗하게 하지도 못하면서"혼잣말을 하며 내가 한 설거지를 전부 다시 했다. 10살인 내가 밥을 해도 잘하지 못하면 하지말라고 핀잔을 줬다. 나는 그의 마음에 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빠의 지인들과 집에서 고기 파티가 열렸다.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노래방에 가기로 자리를 일어났다. 시끌벅적하던 집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집에는 계모와 나만 남았다. 집 안은 금세 어색함이 흘렀다, 계모는 잠시 치우고 가겠다며 술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가방에 붙여진 엄마의 사진이 박힌 작은 마크를 발견했고,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다.

"이거 뭐야?" 목소리는 무거웠고, 눈빛은 금세 날카로워졌다. "난 아이도 없이 너를 키우는데..." 분노의 한숨과 함께, 그는 나를 밀어 넘어뜨리고 넘어진 나를 향해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의 손에 잡히는 건 뭐든지 무기가 되었다. 팩트병, 리모컨, 그리고 나를 향한 그의 분노는 끝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넘어진채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소리없이 울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사진이 전부였고 그에게는 내가 부담이었다.

그날 밤은 평소와 달랐다. 그의 폭력은 날카롭고 무자비했다. 그 공포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타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나는 허겁지겁 집을 뛰쳐나왔다. 주변을 헤매다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차갑게 불었지만, 내 호흡은 그보다 더 거칠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이 보였다.여기서 모든 걸 끝낼 수 있을까. 뛰어내리면 모든 게 사라질까. 아무 희망도, 사랑도, 나를 기다리는 미래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가장자리까지 다가서니, 뒷걸음질을 하게 되었다. 떨어져 괜히 살아남으면 더 비참해질까 두려웠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는 자신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세상이 끝나는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울다 지친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계모의 폭력은 점점 더 빈번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길질이 날아왔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눈물이 마르는 날이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포는 내 일상이 되어갔다. 나는 더 이상 단순히 눈치를 보며 지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매일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내 세계는 그 집에 갇혀 멈춰있었다.



난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직 강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나는 여전히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 집에서 겪었던 혼란과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고, 세상이 다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순간들도 여전히 찾아온다.

그 경험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있기만 하지 않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보려고 애쓰고 있다.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던 순간조차,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 자신 뿐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무너지고 일어서는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 안의 아이를 감싸 안으며, 더 단단해지려고 매일 애썼다.



현실은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걸까? 삶은 여전히 쉽지 않다. 과거의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매달려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은 분명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기로 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 그 반복 속에서 나는 계속 성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무기력하다고 느꼈던 시간들조차, 결국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성장하려고 애쓸 뿐이다. 넘어진다는 것은 끝이 아님을, 오히려 그 순간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기회일 것임을.



삶은 계속해서 나를 시험한다. 그리고 나는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그 끝에서 나는 이 고통도 성장도 멈추지 않기를 선택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강해지는 순간은 완벽하게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 있다는 것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네가 버텨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때의 상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상처를 아프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억을 통해 내 안의 상처받은 나와 소통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토닥이고 안아주고 보듬어줄 뿐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이 모든 아픔이,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했을까?

아니면, 나는 아직도 그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걸까?

진짜 강해졌다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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