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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Aug 19. 2023

행복 지수를 바라보며

2022년 유엔 산하의 기관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가 59위에 랭크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진국 대부분은 30위 이내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지만, 일본(54위)과 한국만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사실 146개국에서 대충 1/3안에 들어가는 거지만, OECD 37개 국가들 안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35위로 끝에서 3위이고 일본이 끝에서 5위로 두 나라 모두 최하위에 해당된다. 두 나라가 경제력 이외의 항목이 낮아서 보여주는 결과다. 


행복의 지표로 삼는 것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구매력평가 기준), 사회적 지지(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사람 여부), 기대수명, 삶에서의 선택 자유, 관용(지난 한 달 동안 기부 여부), 부패 인식(부패가 만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 6가지다.

서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속한 것은 경제력, 복지와 더불어 서양 특유의 자유를 중시하고 기부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토대 위에 있다.   

나는 이 결과에 대해 분석을 할 생각은 없다. 

행복을 이렇게 수치로 객관화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인데, 다른 사람이 지표를 나름대로 정하고 나를 멀찌감치 관찰하고 조사하고 계산하여 “당신의 행복은 이것이요.”라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제대로 나타내고 있을까?

이 기관의 조사 방법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족한 항목에 대해서는 각성과 개선도 필요하다. 다만, 이 6개 항목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집합체인 한 국가를 서열화하는 것에 대해 일부는 동의하면서도 일부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빙산의 밑 부분은 진짜 감정에 관계되어 있고 행복은 여기서 결정이 된다. 

아무리 돈이 많고 다른 조건이 좋아도 기쁘지 않고 외롭게 사는 사람도 많다.      


행복은 또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면화된다.

본능적으로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나의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유엔 기관에서와 같이 다른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측정한다는 것이다.

병에 걸려 3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77세가 80이면 살만큼 살았다고 평가했다가 90세를 넘긴 친구를  보고는 자신의 평가를 재고한다.

월세를 전전하던 사람이 얼마간의 목돈을 모아서 전세를 살면,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해 하다가도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이 부러워 지고 내 집만 있으면 진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기 집을 어렵게 장만하면 하늘을 날 것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더 이상 집에 대해서는 원이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서서히 나보다 큰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더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다가진 것 같았던 행복의 외침이 보잘 것없는 아우성이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늘 비교를 하고 자신의 행복을 평가한다. 

파랑새는 멀리 무지개를 따라 행복을 찾으러 떠났다가 다시 재자리로 돌아온다. 자신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을 재해석하고 행복을 되찾은 것이다. 

우리는 무지개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한다. 


예전에 부탄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만든 행복 지표를 통해 국민의 97%가 행복한 나라라고 자평하고 영국의 한 기관에서 이것을 토대로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한 것을 보았다. 지극히 국가적인 면이 있지만, 외부 기관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탈피해서 스스로 행복을 평가하는 자세는 높이 사줄 만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향 욕구가 있다. 그 단계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 지표에 바탕을 두고 있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현재 위치에 민감하다. 

내 위치에서 절대적으로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다가도 다른 사람을 보면 불행해지는 것이다. 더 많은 것, 더 좋아 보이는 것을 가진 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것이고 나는 왜 이러냐며 자신의 형편을 탓하는 것이다.

상향 욕구는 인간의 발전과 개선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전차가 될 소지가 있다. 욕구가 욕망이 되고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최선의 노력을 했다면, 그에 따르는 결과와 현재 위치 자체에 기뻐하자.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서 불행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


자족하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행복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족은 결과에 대해 일시적으로 인정을 하고 반성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자책하지 않는다. 

자족은 미래에 행복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누리는 것이다.

자족은 현재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자족은 미래도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자족은 부족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먼저 보고 감사하는 것이다.

자족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풍요로운 비결을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교보다는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진정한 행복은 조건과 상황을 초월한다. 조건에 따르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면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 그러면 상황도 나를 웃는 얼굴로 맞이할 것이다.


유엔의 조사 결과가 어떻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어떻든, 부탄과 같이 자신이 스스로 행복을 정의하자.

행복은 다른 사람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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