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두 아들을 키우는 씩씩한 한국 엄마의 육아일지 #4
낯선 곳에 가면 많이들 받는 질문이지요? 특히 외국에 있다 보면 한두 번이 아니죠.
여행길 기차 칸에 마주 앉은 사람과, 유학길 첫 학기 첫날 같은 교실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들과, 새 직장 첫 출근날 동료들과, 아니면 처음 만나는 아이들의 학교 친구들 엄마들과... 한국을 떠나 산지는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동안 수도 없이 받은 질문인지라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마냥 막힘없이 술술 대답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저는 자기소개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자, 그럼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
어학원에 간 첫날, 처음 보는 반 친구들은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대로 간단명료하게 술술 자기소개를 하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내 이름은 마리아야. 직업은 간호사고 3개월 전 우크라이나에서 왔어. 잘 부탁해"
"안녕, 내 이름은 아흐메드 야. 시리아에서 왔어. 직업은 의사고 너희들도 알다시피 전쟁 때문에 삼촌이 있는 독일로 왔어."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죠? 그런데 전, 남들 30초면 끝날 자기소개가 열띤 청문회로 이어지기가 일쑤입니다. 일단 이름에서부터 막힙니다.
"안녕, 내 이름은 초롱 브르티치카야....그리고..."
"잠깐 뭐라고? 그게 어느 나라 이름이야? "
"어? 어어... 초롱은 한국 이름이고, 브르티치카는 결혼해서 얻은 성인데, 체코 이름이야."
"그럼 한국 사람이야?"
"그렇지 한국사람이지."
한 사람이 물꼬를 틀면 여기저기서 손을 듭니다.
"그럼 남편이 체코 사람이야?"
"아니. 부모님이 체코 사람이셨어."
"엥? 그럼 남편도 체코 사람 아니야?"
"어? 그.. 그.. 그런가? 우리 남편은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고, 스위스 국적인데... 한 번도 체코에서 안 살아서... 자기는 항상 스위스 사람이라 하던데...."
"결혼하고 이름도 바꿨는데 그래도 넌 계속 한국 사람이야?"
" (여기서 한번 뜨끔) 한국 사람인데 국적은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스위스로 바꿨어."
"그럼 스위스에서 만났어? "
"어... 그것도 아니. 캐나다에서 만났어. 영어 공부할 때"
"캐나다 살다가 독일로 이사 온 거야?"
"아니 아니. 캐나다에서 만났는데 각자 가기 나라 갔다가 나중에 남편이 한국에 왔다가, 그다음엔 내가 스위스 가서 결혼했어. 그리고 스위스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사 가서 몇 년 살다 얼마 전에 독일로 이사 왔어..."
"그래? 이사 엄청 많이 다니네.. 남편이 뭐 외교관이야?"
"외,, 외,, 외교관? 아니 아니야"
"그럼 뭐하는데 이렇게 외국으로 이사를 다녀? 넌 그럼 뭐하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계속 그들이 예상하던 답변에서 벗어나는 답을 하고... 이러다 보면 저의 자기소개는 언제나 간단명료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간결한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까요? 한동안은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귀찮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내 이야기가 그저 가십거리가 되는 게 아닌가 근심스럽기도 했고, 굳이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은 어떻게 해야 잘 빠져나갈 수 있는 건지 괜히 골머리를 썩히기도 했지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소개해야 하는 불편함을 피하고자 거짓말도 하거나 모든 살을 발라낸 뼈다귀식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안녕, 난 이초롱이고 한국에서 왔어. 땡!"
그러다 괜히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이 모든 게 다 삐딱하게 보이더라고요.
뭐야 난? 집도 고향도 없는 떠돌이야?
난 한국 사람인데, 한국 사람인 듯 한국 사람이 아닌 거야?
한국에 가면 스위스 사람이라 하고, 그렇다고 스위스 가면 내가 뭐 진짜 오리지널 스위스 사람인가?
생긴 거부터가 정말 다른데?
그리고 지금은 독일에 사는데, 여기선 뭐야?
그럼 여기선 도대체 얼마나 살 거고 언제 뜨는 거야?
난 평생 이렇게 여기저기 떠도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평생?
진짜?
죽을 때까지?
이런 삐딱한 질문을 퍼붓다 보면 정말 괜스레 서러워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가요? 아니겠죠?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좁아진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며 살고 있는데 간단명료하게 한마디로 '나는 누구다' 하고 소개하기 어려운 사람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겠죠? 많은 분들이 용기 내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믿어요. 하지만 그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매일매일 쉽고 행복할 순 없잖아요. 때때로 힘들고, 외롭고, 서러워 '나는 누구, 여긴 어디?''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외국까지 나와서 이 고생이지?' 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땐 그런 마음을 숨기지 말고 나누라는데,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그냥 대충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힘든 속마음을 내비치자니 참 어색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는 괜히 걱정하실까 봐 입 닫게 되고, 외국에 나와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는 내 고민이 그저 배부른 투정이나 염장질로 여겨질까 조심스럽고...
아이러니하게도 10여 년 동안 떠돌이로 살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제가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 여러 가지 입장이 되어 봤다는 거예요. 본성이 이해심이 많아 너그러운 사람도 있지만 전 내 입장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게 제가 처해 본 입장이 많아지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게 되더라고요. 나만 잘난 줄 알았던 스위스 유학시절, 외국에서 결혼해서 앞만 보고 일 하던 시절, 아이 낳고 워킹맘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시절, 남편 공부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애 둘 키우는 전업주부시절, 그리고 다시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시절... 그래서인 바늘구멍 만했던 듣는 귀가 좀 트이고, 코딱지 만했던 마음 그릇이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커진 것 같아요.
올 겨울 마음 감기로 호되게 고생할 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집안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책장 뒤편 구석에 모아 놓았던 일기장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하던 청소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몇 장을 읽어 내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봄날 햇빛처럼 환하고 좋은 날도 있고, 며칠 동안 걷히지 않은 겨울 안개처럼 어둡고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 날에는 설렘과 두려움에 온 몸이 찌릿거렸고, 정든 곳을 떠나는 날에는 그간 나를 품어준 곳과 사람을 향한 눈물과 감사함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시끌벅적 흥에 겨운 날들도 있었고, 나는 누구인지 곱씹으며 고독에 몸부림치던 외로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날들을 뚜벅뚜벅 살아온 제가 가엾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더라고요. 늘 성에 차지 않아하면서 나를 다그치기만 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그동안 써왔던 일기장을 차분히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3 대륙 6개 국가를 오가며 열심히 살아온 저의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고 고맙더라고요. 한국에서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독일로... 혼자였다가 남편과 둘이, 그리고 이제 두 아들까지 함께 넷이서... 제가 보내온 하루하루가 제 인생을 더 아름답고, 더 탄탄하게 엮어내는 날줄과 씨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올 한 올 풀어보면 별 것 없지만, 그 줄들을 노력과 정성으로 엮으면 아름다운 비단이 되잖아요. 비단에 꽃도 새기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도 담기 위해 여러 색실을 모으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보낸 변화무쌍 했던 나날들이 내게 더없이 큰 축복이구나 싶었습니다. 또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두세 번 국가, 혹은 적어도 도시를 넘나드는 이사를 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간단한 자기소개는 쉬워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지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투덜대거나 우울해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날줄과 씨줄을 부지런히 모아 내 인생을 더 아름답고 탄탄하게 엮어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