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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05. 2021

구질구질한 행복의 맛

시험 삼일 앞두고 잠 안와서 쓰는 영화 열줄 평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먹어본 맛, 구질구질한 행복


  시험 준비에 메말라가는 딸의 목소리를 듣자 아빠는 수화기 너머로 물었다. "딸! 민어회 먹을래?" 나는 대답했다. "뭐야 쌩뚱맞게. 난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집에 있는 민어회를 먹어." 아빠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아빠가 배달가면 되지!" 자가용으로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딸을 위해 회 배달을 온다는 아빠가 웃겨서 그 날 처음 피식, 웃었다. 오해말라. 아빠가 늘 이렇게 다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는 다정해질 줄 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저마다 삶이 '힘 없어진' 가족들이 그 집 막내 딸인 올리브의 소원인 미인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얘기다. 


 이 집 구성원은 전부 결핍 덩어리다. 대학 시간 강사인 가장 '리차드'는 성공을 외치지만 성공과는 먼 삶을 산다. 이런 남편과 함께 살면서 엄마 쉐릴은 가난에 지고 산다. 하지만 이 둘은 물론 헤로인을 복용해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도, 게이 애인에게 차인 후 자실 시도를 했던 외삼촌도, 가족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사는 오빠도 모두다 올리브를 위해 움직인다. 그들이 노란 승합차를 끌고 어떻게든 올리브가 그 기상천외한 대회에 참가하게 해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떠올리니, 1시간 넘게 차 속에서 방치돼 흐물흐물해진 민어회 맛이 상상됐다. 내가 먹어봐서 잘 아는 구질구질한 행복의 맛이었다.  


  나는 올리브였다. 내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각종 무리를 해서라도 갖게 해주려던 가족이 있었다. 그들이 무리해서 내 손에 쥐어 준 것들은 대부분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그치만 그래서 더 값졌고 나는 그래서 더 행복했어. 그때 생각이 나 행복했다. 


  내 삶을 들여다 보면 행복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너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을 주고 받을 사람이 있다면 인생은 그런대로 굴러간다. 저 가족들이 탄 노란 승합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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