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롬 Oct 29. 2021

'스우파'에 2030 여성은 왜 열광하는가

페미니즘과 <스트릿 우먼 파이터>

Mnet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열광하는 주체는 뚜렷하다. 2030 여성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4일에 방영된 4회의 경우, 30대 여성 시청자층에서 평균 시청률이 6%까지 솟았다. 1539 남녀, 2049 남녀 타깃시청률에서는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방영 직후 여초 커뮤니티의 게시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SNS에 '시청 인증'을 남기는 이 역시 여성이 많다.


왜 여성일까. 여성 댄서들이 춤추는 방송에 남성 시청자가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정체성이 겹치지 않아서일까. '스우파'의 성공 요인과 지금 2030 여성이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출처 Mnet


엠넷의 시선 전환, 젊은층 여성에게 먹힌 이유


2030 여성 사이에 부는 스우파 열풍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요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여성 댄서들의 높은 실력과 매력이다. 최종 우승 크루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홀리뱅의 수장 허니제이는 우승 소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댄서씬은 이미 풍부한 콘텐츠 소스가 있었다.


엠넷이 한 건 '시선을 돌린 것'뿐이다. 무대의 앞이 아닌 뒤로 말이다. 이 시선의 전환은 쉬워 보이지만 여러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 인플루언서를 콘텐츠 시장의 매인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데 익숙한 엠넷이었기에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믿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제작할 수 있었을 테다.


대중은 엠넷의 전환된 시선에 매력을 느꼈다.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시선이다. 물론 한국 여성 댄스씬이 그만큼 완성도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이 시선의 전환도 성공적이진 못했을 것이다.


엠넷의 '시선 전환' 전략이 먹힌 이유는 페미니즘이 불러온 2030 여성들의 인식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동조하든, 거부감을 느끼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든, 아니면 그저 인식하고만 있을 뿐이든 간에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을 정립했거나 정립해가는 중이다.


페미니즘이 던진 대표적 화두가 바로 주체성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곧 나'라는 이 간단한 문장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여성들은 깨달았다. 물론 주체성은 여성뿐만 아니라 2030 세대 전반에 나타나는 특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MZ 세대는 가족과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문화에 익숙한 기성 세대보다 주체적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불러온 주체성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바로 그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뒤로 밀려난 자신들에 대한 깨달음이다.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아내', '엄마', '내조자', '조력자' 등의 사회적 지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이 2030 여성 인식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스우파' 속 여성 댄서들은 이 인식 변화에 부합하는 캐릭터다. 우선 이들이 댄서(백업 댄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부장제가 부여한 사회적 위치로 인해 누군가(남성)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왔던 여성들이 주체적 인생을 추구하는 것과 연예인을 빛나게 했던 댄서들이 스스로 빛난다는 스우파의 설정이 일치한다.


주체성은 실제로 댄서들이 춤을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서도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힙합과 걸스힙합의 구분을 부정하는 홀리뱅의 맨 오브 우먼 미션, '난 단순한 엉덩이가 아냐'라고 외치는 프라우드먼의 같은 미션 무대가 대표적이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해당 미션들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인 이유는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고 추측된다.




연대하는 여성


두 번째 요인은 첫 번째 요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이다. 바로, 주체적 여성 간의 경쟁과 화합을 동시에 보여줬단 점이다.


다른 글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니즈가 변하고 있다.필자는 이 흐름이 공정에 대한 일부 청년의 인식 변화를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엠넷은 이 변화하는 니즈를 기민하 포착하고 선도하고 있다. 물론 악마의 편집은 여전하지만 <퀸덤>, <굿걸>에서 보여줬듯이 경쟁에 연대라는 요소를 버무리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방송 초반 허니제이-리헤이의 감정의 골을 부각하고, 춤을 통해 결국 화합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피터질듯이 경쟁하던 크루들이 서로 얼싸안고 응원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식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 여성은 피 터지게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화합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2016년 이후 일종의 동지애와 같은 연대의식이 커진 여성들은 스우파 속 경쟁과 화합에 열광한다.


기싸움?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출처 Mnet


방송 중 제시 신곡 안무 창작 미션을 전달하기 위해 등장한 싸이가 '여성 댄서들의 기싸움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때 프라우드먼 소속 댄서인 립제이는 "기싸움? 어떻게 하는건데?"라고 장난끼 섞인 의문을 제기했다.


해당 장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이 의문이 조금 격화된 수준이었다. "여자가 왜 기싸움을 해야 해?"란 의문에는 남성이 여성의 기싸움을 흥미롭게 관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즉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경쟁하는 여성'보다는 '연대하는 여성'에 관심이 높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마침내 얼싸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소속감과 고양감을 느낀다.  


ㅠ^ㅠ 출처 Mnet.


결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환영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향한 여성들의 반응 속엔 어쩔 수 없이 MZ세대의 특징도 있다. 바로,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태도를 긍정한다는 점이다.


우승을 한 크루이자 미션마다 높은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한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의 인기가 이를 보여준다. 물론 허니제이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가 강한 실력자임에도 승패를 깔끔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허니제이는 자신의 제자였던 리헤이와의 배틀에서 졌을 때, 신곡 안무 창작 미션에서 라치카에게 패했을 때, 이후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와의 배틀에서 다시 한 번 졌을 때 모두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운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였다.


패배를 깔끔히 인정하면서도 높은 실력을 가진 허니제이에게 MZ 세대 여성들은 환호한다. 룰이 공정하다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공정'에 예민한 젊은층의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주체적 섹시를 판별하는 이분법, 가능할까


페미니즘이 몰고 온 인식 중에선 '주체적 섹시는 진정한 주체성이 아니다'는 인식도 있었다.


실력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랑받는 마마무도, 지나치게 과한 의상을 입고 나오면 여성들 사이에서도 '주체적 섹시 아니냐', '조금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달린다. 주체적이라고 해서 남성의 시선에서 형성된 '섹시함'이란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마저 긍정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화사의 연말 무대 의상. 출처 매일경제.


오래도록, 이 주체적 섹시에 대한 의견을 정립하지 못했다. 주체적 섹시를 부정하고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의견엔 설득력이 있다. 결국엔 모든 여성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 댄서들에게는 주체적 섹시 논란이 없다. 댄서들은 팔다리를 모두 드러낸 의상을 입고 등장하지만, '지나치게 야하다'는 반응은 거의 없거나 표출돼도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물론 여기엔 춤출 때 몸선이 드러나야 하는 댄서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춤추는 것이 직업인 여성 아이돌에게는 조금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여초 커뮤니티 내에서도 일부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의상을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


그 이유는 아마서 위에서 언급한대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댄서들이 보여주는 '주체성'이 '선정성'보다 더 돋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현상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여성의 주체적 도전에서 '섹시'만 추출한 다음, 이를 놓고 "코르셋이다" 혹은 "여전히 가부장제에 귀속돼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가부장제가 뿌리깊은 이 사회에서 순도 100% 주체성으로만 이뤄진 몸짓은 가능할까. 탈코르셋을 제외한 모든 여성의 주체적 움직임은 반페미니즘적인 걸까. 그렇다면 스우파의 댄서들의 움직임은 진정한 의미에선 주체적이지 않았던 걸까. 어디서부터가 주체적 섹시고 어디까지가 주체성일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스우파..못 잃고 쓰는 글...

+) 허니제이 언니 사랑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구질구질한 행복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