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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21. 2021

인간은 늘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그에겐 친구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니까 보고 비웃지 말아야 해요~~~~

#1.


마감 D-10

 열흘이면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일 당장 일주일치 계획을 짠다고 해도 다음 날 하루가 빈다. 이 때 나는 "앞으로 열흘은 무조건 하루 중 일부를 자소서 쓰느라 고통받는 데 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다가올 고통을 미리 상기시키는 셈이다.


마감 D-7

 오. 열흘 남았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서류 접수 마감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계획도 짜지 않았지만 괜찮다. 일주일이나 남았으니까. 그동안 마감 하루 전에 촉박하게 써서 내던 것에 비하면 일주일은 퇴고를 두 번이나 할 수 있는 매우 여유로운 시간. 하하. 이제 계획을 좀 짜볼까..


마감 D-4

 계획은 거창했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거창했던 나머지 지키질 못했다. 3일 동안 기업 분석만 했다. 지원할 기업에 대해 아는 건 많은데, 자소서 개요는 커녕 소재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고삐를 조여야할 때다. 적을 알았으니, 이제 나를 알 시간. 자, 이제 시작이야! 피까츄~~


마감 D-2

 망했다. 하나도 안 썼는데 낼 모레가 제출이다. 열흘 전엔 '하루 중 일부'를 고통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꼼짝 없이 이틀 내내 자소서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상황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다급하게 손을 놀린다. 그리고 똥글을 완성한다. 내가 봐도 많이 이상한 것 같다.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왔을 때 찾는 이가 있다. 먼저 기자가 된 학과 선배(지금은 선배 취급 거의 안하고 반말하지만) H다. 그는 모 일간지 사회부에서 이름 꽤나 날리고 있다. [단독]을 줄기차게 내보내고 있고 그만큼 업무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그건 그에게도 매한가지다. 바로, 자소서 하나도 제대로 못 쓰는 후배인 내가 격무에 시달리다 이제 막 틈이 생겨났을 때 장화신은 고양이같은 불쌍함을 장착하고 나타날 테니까,, 밤 10시가 넘은 시각,,, 그의 염치없는 후배인 나는 카카오톡으로 노크를 한다. 이럴 때만 선배라고 부른다. "똑똑. 선배님. 계신가요. 이번에 A매체가 떴는데요.. 마감이 내일 모렌데요..한 번 봐줄 수 있나요.."


 선배 H는 거의 매번 툴툴거린다. 그리고 거의 매번 거절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는 툴툴거리면서 (이택조 흉내낸답시고 욕도 좀 섞어가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H: 글의 모가지를 콱! 잡고 끌고가야돼~~!~!~!~! 씨이펄~~~~~!! (이택조 흉내내는 거임.) 


이택조 탈을 쓴 H는 거의 함께 밤을 새면서 카카오톡으로 실시간 첨삭을 해줬더랬다. 그의 잔소리가 늘어갈수록 내 자소서가 괜찮아졌다. 물론 합/불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자기소개서 쓰기를 늘 벼락이 몰아치듯 해치우는 잘못을 저지르고 그런 내 곁엔 친구가 있다. 이제 다시는 안그럴거야,,,흑흑,,이건 안 그러리라고 다짐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2. 


 사실 누군가 내게 "너 M과 친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M에게서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전화를 받는다. M의 터무니 없어서 살짝 화 나기까지 하는 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나 마나 하지만 듣는 순간 '픽'하고 웃음 나오는 그 말을 그 날도 들었다. 그 날 새벽, 나는 탈락의 늪에서 비관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 턱 없는 M은 아주 오랜만에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카카오톡 메세지로 전해왔다. 터무니없음에 터무니없음으로 대응했다. 사실 어떤 맥락에도 어울리기 쉽지 않은 말이지만, 그때 M이 한 터무니없는 말보다 한 술 더 뜬 말을 했다. 


나: 좀 죽고 싶어.


M이 말했다. 죽지마. ㅇㅇ아.


나: 사람들 한 일주일 정도 슬퍼하고 일년에 한 번씩 내 추모글 한 5년 쓰다가 6년째부턴 그마저도 뜸해지겠지,,그게 인생 아니겠어,,하하,,

M: 난 그래도 6년은 갈게

나: 고마워ㅠ 7년은 안될까?


M은 "그건 좀..."이라며 말을 줄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6년도 안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M이 갑자기 생고기를 선물로 보내왔다. 기프티콘으로. 며칠 전 M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기에 나 역시 선물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M은 선물을 보내면 차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너무나 극단적인 선물 전달 방식이었다. 심지어 M은 실제로 나를 차단한 뒤 "차단하니까 이렇게 되네!" 하면서 인증 캡처를 보냈다. 차단당할까봐 무서워서 선물하기를 포기했다. 그때 생각했다. 6년도 안가면 뭐 어때..고기 먹고 안 죽으면 되지, 하하!


 내 취미는 일희일비다. 뭐 하나가 안 되면 쉽게 무너진다. 그때마다 내 친구들은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기운내!"라고 한다. 




<인간은 늘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그에겐 친구가 있다 >

이 시리즈는 이어서 연재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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