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안녕!
2021년.
원래는 이 해에 대해 한 문장도 쓰지 않으려 했다. 지난 일년을 떠올리니 너무 많은 문장이 떠올랐는데 그 중 어떤 문장도 지난해를 적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동묘 시장 옷무더기에서 내 서타일을 찾기 위해 애쓰는 빈티지 러버처럼 온갖 문장들 속에 꼭 맞는 문장을 찾으려 이것 저것 써 보고 있다. 이 글 또한 수정되거나, 지워지거나,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쓰고 싶기 때문이다. 대체로 비슷해보이는 하루와, 일주일, 그리고 한 달을 반복하면서 꾸려온 한해지만 지난 일년간 내 마음을 돌아보니 너무 많은 것이 가득해서 온갖 모순도 함께 있었다. 절망과 희망, 저주와 축복, 이별과 만남, 망각과 미련, 도태와 성장 같은 것들. 어찌됐든 나는 2021년에도 몇 번은 크게 불행했고, 그 와중에도 틈틈히 행복했으며, 긴 우울과 싸우면서도 잠시간 찾아오는 평안에 안도했다. 또, 사람을 믿지 않으려 하면서도 사람에게 위로받았으며, 매일 아침마다 밤꿈에 찾아온 트라우마의 그림자에 허덕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덕에 성장한 나를 보며 허탈해했다. 멀어져가는 꿈이 결국엔 조각밖에 남지 않았단 마음이 들 때는 그 조각이라도 움켜쥐기 위해 나를 보챘으며 꿈을 놓을까 말까 고민하며 쥐었다 폈다 하면서도 손바닥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가족이 내게 준 것들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내게 준것들을 미워했고, 과거를 사랑스러워하는 동시에 징그러워했다. 여기까지는 사실 다른 해를 살면서도 반복해온 것이다.
다만 2021년이 조금 특별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내가 긴 우울과 함께 살면서도 일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 자매와도 같은 친구를 얻었다는 점, 내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아도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 몇 가지 트라우마와 완벽한 이별까진 아니어도 작별인사를 할 정도로 마음에 근육이 생겼다는 점, 혼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글이 부끄러워서 내놓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쓰는 나를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여기게 됐다는 점,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 인간 윤영희로 사랑하게 됐다는 점, 가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오는 사람을 기뻐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인생의 시차를 존중해 내 시계가 남들보다 느리고 빠른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법을 조금 익혔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인생의 팔할 이상을 차지했던 꿈의 조각을 조금은 움켜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2022년도 여전했으면 좋겠다. 불행하면서도 틈틈히 행복했으면. 우울할 때도 삶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사람을 믿지 않겠다는 말을 사람에게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걸,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그리고 여전히 꿈을 소중히하며 어렵게 움켜쥔 만큼 귀하게 대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