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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하 Jan 08. 2022

빛과 수렁 사이

7. 다툼

그날 이후로 나와 하영이는 자주 다투었다. 이유는 너무 사소한 것이었는데 보통은 내가 걱정을 시작하면 하영이는 자신을 믿지 않고 너무 아이 취급한다고 속상해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항상 하영이는 나에게 여리고 돌봐야 할 동생이었고 그 상태를 유지한 건 항상 그 아이였다. 나에게 짐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때도 많았지만 그게 또 내 할 일이려니 했었다. 내가 무얼 포기하고 무얼 희생했는지 모르는 하영이는 항상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루는 하영이의 출근 복장으로 휴일을 보냈기에 큰맘 먹고 옷을 사주기로 했다. 편안한 캐주얼 복장을 말이다. 항상 밝은 이미지였던 동생이 보험회사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매일을 사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살이 너무 빠져서 전에 입던 옷도 너무 헐렁하니 이참 저 참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하영아, 넌 토요일 아침부터 어딜 가길래 매번 그렇게 빼입고 나가니? 그렇게 입는 거 네가 제일 싫어하지 않았니?" 


그날도 밥도 안 먹고 무언가 서두르는 하영이는 내 동생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이 이상하게 삐져나왔다.


"이쁘게 차려입는 것도 뭔가 이유가 필요해? 전에는 내가 별로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데 점점 뭔가 잘 차려입고 싶어. 그게 그렇게 싫어? 언제는 이쁘게 입으라더니 이건 안 이뻐? "


정색을 하며 말하는 하영이는 안 하던 화장도 시작했다. 어색하던 화장은 점점 직장인 같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상태가 되었다. 오히려 나보다도 더 직장인 같은 모습의 하영이를 나는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대학 갈 때 신입생이 하는 일들을 하영이가 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 시작하고 옷도 어른스럽게 입고, 밥도 잘 안 먹는지 살도 많이 빠지고, 뭔가 엄청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도 그렇고 말이다. 무슨 직장인이 저렇게 다니지?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 잠자기 바쁜 하영이가 애처로웠다. 그렇기에 내 걱정도 간섭도 더 크게 표현했다. 


" 하영아, 언니가 옷 사줄게. 편한 옷도 필요하잖아. 시간이 언제 되니? 언니랑 쇼핑 간지 너무 오래되었잖아? 우리 자매끼리 한번 뭉쳐야지."


"언니, 나 바빠. 굳이 언니랑 같이 가야 해? 그냥 언니나 괜찮은 옷 사 입어. 언니 친구 없어? 친구랑 가!"


얄궂게 말하는 하영이의 말이 너무 서운했다. 


"하영아, 너 도대체 직장에서 뭘 하길래. 매일 바쁘고 옷을 산다고 해도 그렇게 심드렁하고 언니 하고는 말도 안 섞고 그러는 거야? 언니랑 같이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언니는 너랑 시간을 못 보내서 속상한데 너무하다."


하영이는 대답이 없다. 그리고 나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하영아, 너 요즘 누굴 만나고 돌아다니는 거야? 그동안은 집순이였는데 나가기 시작하니 집에 있지를 않잖아. 집안일은 원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니한테 다 맡겨놓고 넌 돈을 번다는데 언니한테 뭐라도 사준 적도 없고 진짜 직장을 다니는 거야? 뭐니? 혹시 남자 친구이라도 생긴 거야? 언니는 왜 네 소식을 하나도 모르는 거야? 언제부터 집이 하숙방이 된 거야? 잠만 자고 너만 쏙 빠져나가면 되는 거니?"


"언니, 그만 좀 해. 내가 바빠서 그래. 언니가 내 걱정하는 건 알겠어. 근데 나도 어른이잖아. 내가 뭔가 하는 게 그렇게 싫어? 언니도 바쁘게 살고 있잖아. 집안일 때문에 그래? 나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어? 내가 나갈까?"


"아니. 말이 왜 그렇게 되는 거야? 그런 게 아니잖아. 그냥 너랑 시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건데.. 그게 힘드니? 매번 은정이랑은 잘도 보내면서 언니랑은 시간 쓰는 게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이야? 언니가 너무 서운하다."


"언니, 난 언니가 날 어린아이 취급하는 게 너무 싫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좀 놔둬. 언니도 그냥 언니 인생 살아. 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만으로도 힘들어. 시험 보려면 얼마 안 남았는데 언니까지 왜 그래? 아유. 진짜 짜증 나. 나 힘들게 그러지 좀 마."


또 하루는 너무 말라가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저녁에 뭐라도 먹이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만 먹지 않고 동생도 먹을 것이니 오랜만에 한 요리. 평소에 좋아하던 김밥을 정성스레 준비한 나는 늦게 들어오는 동생을 불렀다. 


"하영아, 언니가 너 좋아하는 김밥 좀 쌌는데 먹어봐."


"언니, 귀찮게 그런 거 하지 마. 난 자고 싶으니까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하영아, 언니가 너 본지 오래되어서 그러는데 오늘은 우리 같이 잘까? 너 언니랑 자는 거 좋아했잖아. 혼자 자면 무섭다고 하면서 말이야. 근데 오늘은 언니가 너무 무섭다. 너랑 같이 잠도 못 잘까 봐 말이야."


"언니, 귀찮아. 다음에." 


방문이 차갑게 닫힌다. 쾅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그 소리가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하영이의 직장이 너무 빡빡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 직장을 다닐 이유가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우리 하영이가 이렇게 돈 버는 걸 좋아했었나? 전에 알바 하나 하는 것도 힘들다고 용돈 타던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완전히 바뀐 하영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보단 위험해 보였다. 무엇이 하영이를 저렇게 변하게 한 것일까? 나의 늘어진 걱정을 듣는 부모님은 그저 나의 기우라고 생각하시는지 나에게 그만 걱정하고 나의 삶을 누리라고 하셨다. 나의 삶을 누리는 것이 하영이에게 있는 나의 관심을 버리는 것일까? 내가 하는 걱정이 이상한 것일까? 뭔가 미묘하게 그리고 많이 바뀐 우리 자매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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