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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하 Dec 22. 2021

어느덧 아빠처럼

강원도 산골 작은 면. 나는 우거진 나무들 옆으론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앞으론 넓은 공간에 교회 종탑이 보이는 작은 단칸방에 살았다. 나의 어린 시절 아침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춘 아빠의 콧노래 소리가 들리고 아빠의 까칠한 수염이 비벼져 까끌거렸던 그 느낌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좋아하던 도밍고 아저씨의 목소리, 카라얀 아저씨가 지휘하는 빈 필의 소리가 가득하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너무 시골에 사는지라 한 주에 한 번씩 읍내에 나가서 목욕을 해야 했다. 수도 시설도 좋지 않고 목욕탕도 없는 시골에서 깨끗하려면 말이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나와 남동생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하는데 시골이라 빌릴 곳이 없구나. 평소에 좋아하는 책과 카세트테이프를 생각해두었다가 한 달에 한 번 읍내에 나갈 때 사주면 어떨까? 대신 같이 밖에서 사 먹던 점심은 생략하고 집에서 먹으면 어떠니?” 

 그때 나는 짜장면과 돈가스가 멀리 떠나는 아쉬움보단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말에 그것도 내가 소유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뻐서 얼른 수락했었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고를 수 있기에 엄청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레코드 가게 앞에 붙어서 어떤 신보가 나왔는지 살펴보고 서점에선 또 무슨 책이 재미있을지 고르는 시간들은 시골 마을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숨바꼭질하는 것 하고는 다른 어떤 새로운 시간이었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날마다 시골에서 수영하고 숨바꼭질하고 가끔은 교회 종탑을 치고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던 말괄량이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궁전에 가서 멋진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파티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게다가 가끔 교육방송에서 나오던 공연들은 또 얼마나 설레게 했던지……. 그런 공연들이 있으면 밤에도 아빠가 깨워서 나를 그 공연에 초대했다. ‘백조의 호수’와 ‘지젤’ 공연 같은 공연이 일 년에 서너 번 방영했는데 그 작품들은 정말 소녀 감성에 딱 맞는 작품에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보다 보면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흑조나 악녀가 출연하면 한숨이 나와서 어쩔 줄 모르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예술을 경험하고 즐기면서 직접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나를 알아본 아빠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 당시 공연은 턱없이 비쌌고 횟수도 적었다. 이 시골에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너무 멀고 힘들었지만 이런 걸 알 수 없던  나의 철없음에 아빠는 많이 속상하셨을 것이다. 중학교 졸업식 날 아빠는 나에게 ‘백조의 호수’ 티켓을 졸업식 선물로 주셨다. 무려 5년간 아빠의 용돈을 모아 사주신 공연 티켓이었다. 맨 뒷자리 구석에서 본 ‘백조의 호수’ 공연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고개가 아파서 어쩔 줄 몰랐지만 내 머릿속에 가득한 공연 장면과 음악들이 있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발레리나 문훈숙 님의 공연이어서 더욱 가련하고 빛났다. 처음으로 직접 봤던 발레 공연은 정말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갔고 평소 소심하고 약했던 나는 엄청 당차고 할 말 다 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했다. 아마도 아빠가 준 큰 사랑 때문이었던 것 같다.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비하는 공연 하나가 게다가 먹고 살 일 빡빡하고 교복 살 일도 힘들어서 물려받았던 나에게는, 또 대학이나 갈 수 있을지 암담했던 나에게는 엄청난 격려가 되고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거쳐 어느덧 아들 둘과 함께 사는 엄마가 된 나. 그 시절 그 ‘백조의 호수’가 생각나서 아들 둘을 끌고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주었다. 아들이라 그런지 발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엄마의 소망이라며 아들 둘을 데리고 갔다 왔다. 별로 흥미 없던 아이들이 공연을 보더니 재미난 장면을 따라서 춰보고 같이 시시덕거리면서 공연 팸플릿을 보며 극 이야기했다. 가기 전에는 ‘왜 가냐’ 더니 크리스마스 행사로 ‘호두까기 인형’을 매해 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게 이해가 된다면 또 가잔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쏟아주었던 아빠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사랑해준 사람에게 사랑이 가는 게 아니라 사랑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일까? 아빠가 나에게 공연을 보여준 것처럼 한 번도 아빠에게 공연을 보여 드려야지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빠가 좋아하던 멋진 테너 성악가의 공연이나 교향악 공연 등을 아들들하고 보러 다니면서 한 번도 아빠에게 보여드리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니 신기한 일이다. 아빠가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하니 말이다. 

 오늘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 좋아하는 옥수수 부쳤는데 혹시 더워서 찌기 힘들 것 같냐’는 물음에 잠시 멍해진다. 난 그 아빠의 말씀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빠, 괜찮아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더워도 쪄야 해요. 잘 먹을게요.’

 사람들이 나이가 많이 들면 아가가 된다던데 요즘 들어 아빠가 점점 아가가 되어 가시는 것 같다. 다시 아가로 돌아가는 아빠에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예전에 아빠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쏟아부은 그 사랑을 잘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아빠의 평소 모습도 찍어놓고 싶다. 그렇게 기록하고 기록해서 지칠 때마다 한 자락씩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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