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쎄하 Dec 22. 2021

갑자기 배낭여행

“아가씨가 왜 이리 생기가 없을까? 에휴, 아가씨도 무언가에 꽁꽁 묶여있네. 어디에 갇혔을까?” 

24살이 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상한 아주머니. 기도원에 가서 기도는 안 하고 잠만 자는 나와 기도는 안 하고 친구와 수다만 떨고 계신 아주머니와의 만남이었다. 기도원 곁방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쉬고 머리도 정리하고 싶던 나와 수다쟁이 아줌마의 만남.

 “아가씨, 분명 갇혀있어 좀 털고 나가봐. 혹시 배낭여행 가본 적 있어? 여유가 된다면, 아니 여유가 없어도 꼭 가봐. 그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나도 아가씨 같은 표정으로 살았었는데 여행 가서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정말 새로운 세계를 찾았거든 …….”

아주머니의 말이 나에게 계속 머물렀다. 오후 4시에 시작해서 밤 2시에 끝나는 수업을 진행하고 새벽 6시에 특별반 수업하고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전부였던 때였다. 거의 2, 3시간의 쪽잠을 자며 수업자료를 만들고 도움이 될 만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느라 분주하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바라 왔던 돈 많이 버는 삶. 더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돈이 없어서 머뭇거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삶을 나는 원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이루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고 있던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그 아줌마는 정말 이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근데 왜 그 말은 나를 떠나지 않는 걸까? 그 말을 들은 지 2달이 지났지만 계속 내 마음을 울렸다. 일하면서도 끝없이 생각했다. 점점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나에게 몰려왔다. 근데 왜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분명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럽다. 돈은 걱정하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또 나는 꽤 능력 있는 선생이어서 아이들과도 잘 지냈다. 항상 보람 있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 일이 아니면 나는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그런데도 나를 살아있는 시체 취급하던 그 아줌마의 한숨 소리가 매일 들렸다. 더 이상 궁금하고 힘들어서 못 참겠단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보았다.

 “아줌마, 혹시 저 기억하세요? 그 살아있는 시체 …….”

 “아 그때 그 아가씨? 우리 그 방에서 한 이야기 아직도 기억나요? 혹시 힘들어서 전화했어요?”

 “모르겠어요. 힘든지 어쩐지. 근데 내 삶을 살면서 내가 어떤지 생각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배낭여행 가려 구요. 저 어디로 가죠?"

 “아,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한 명 소개할게요. 보민이네로 가 봐요.”

 “보민이네요? 거기가 어디죠?”

 “영국 런던. 보민이네도 아가씨 같은 이유로 영국에 있어요. 연락해 놓을 테니 비행기 표 사고 연락 한 번 더 줘요. 그땐 메일로.”

 결국 나는 15일간의 휴가를 내고 일주일 만에 표를 끊어서 영국으로 날아갔다. 유럽 여행 가이드북 한 권과 보민이네 연락처 한 개만 가지고 간 여행. 그 여행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지 기대하는 바가 있기에 무섭거나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준비 없이 나의 첫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런던에 도착하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보민이네는 런던에 정착한 지 2개월밖에 안 된 가정집이었다. 가볍게 인사하고 그 집 주인장인 보민 엄마는 나에게 미션을 주었다. 아침 7시에 나가서 저녁 7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오라는 말을 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 근데 쉽지 않았다. 일주일간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른 이들의 문제를 푸느라 바쁘고 틈도 없던 나는 없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뭐든 서투른 동양 여자아이 한 명일 뿐이었다. 

 5일째 되는 날 보민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용기가 생겼다. 런던에서만 이렇게 15일을 있고 싶지는 않다. 파리도 가고 싶고 알프스산도 가고 싶고 로마도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자리에서 여행 노선을 변경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보이지 않던 것이 발견되었다. 그 집 아이들의 호칭이 인상 깊었다. 서로의 이름만 부르는 혜민이와 보민이를 보면서 보민 엄마에게 물었다. 

“누가 언니예요?”

“하, 내가 그래서 한국사람 많지 않은 곳에 사는 건데. 그게 왜 중요한 것 같아?”

“네? 글쎄요.”

“나는 누가 언니인지보다 보민이는 어떤 아이인지, 혜민이는 어떤 아이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세은 씨는 어때? 언니, 동생 굴레에서 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것 같아?”

 나이가 아니라 사람을 보라는 말은 뭔가 나에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첫걸음이 되었다. 보민 엄마는 보민이가 언니라는 굴레를 쓰지 않기를 바라서 이민을 왔다고 했다. 보민이는 보민이로 살고 혜민이는 혜민이로 살라고 여러 나라를 다니다가 이곳 런던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 말은 나에게 큰 힌트가 되어서 남은 여행하는 동안 나를 바꾸었다.

 무언가 나를 얽매고 있던 큰 줄 하나가 툭 끊겼다. 나는 나인데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묻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던 명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무섭지만 즐거운 탐험들을 계속해서 나를 따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10일간 무슨 골목대장이 된 듯 여러 무리를 이끌었다. 관광 가이드가 된 듯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억눌렸던 나, 잠자고 있던 나, 절대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 나, 사랑하는 세은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나는 계속해서 자라 가고 자라 가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아들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우림이는 우림이로, 온유는 온유로 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씌워주는 굴레에 들어가지 말라고 너는 그냥 너로 너무 멋지고 소중하다고 말해준다. 형이어서,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너로 빛난다고 이야기해준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덧 아빠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