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17일 차 ]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저는 요리에 진심입니다. 그리고 108배도요.

by 초연

냉장고 온갖 야채 다 찹찹 썰어서 기름 안두르고 죄다 냄비에 쏟아부은 후 미리 만들어 놓은 간장 양념 휘리릭 두바퀴 돌린 후 뚜껑 닫고 오분 후에 열면 완성되는 초 간단 잡채. ( 사실 제일 힘든건 야채 써는거다. 힘들다기 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 나는 요리를 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이 부산스럽지 않게 주방을 정리하면서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 할 때는 요리에만 집중하고 싶고 가능한 불 앞에는 적게, 최대한 간단하고 오래 걸리지 않는 요리를 지향한다. 남편은 나를 뚝딱이라 부른다. 뚝딱 하면 밥이 나온다고. 내가 하는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면 밥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잘 보는 것이 남편의 임무이다.


십년 전에 큰 맘 먹고 지른 ( 백만원이 훌쩍 넘었는데 그 때는 간도 컸지. 돈도 잘 벌었고 잘도 질렀던 때다. ) 그러다 이런 물질적인게 다 무슨 소용있나 싶어 현타가 심하게 왔었는데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모든 소유물을 정리하고 배낭 두개에서 배낭 하나로 소유물을 줄여가며 그동안 소비 지향적인 삶에서 가치와 경험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다.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더 많이 느끼고 경함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거나 로컬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서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장기 배낭 여행을 시작했다.


그 때 명품백, 가방, 신발은 다 팔고 떠났는데 유일하게 비싸게 산거 주고 이 냄비만 안팔고 십년동안 엄마 집 창고에 쳐박아두고 이 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면서 그리워하다 냄비의 존재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한국에 6개월, 다른 나라에 6개월 그렇게 유목민처럼 십년 가까이 지냈는데 한 곳에 오래 정착하는 삶을 살지 않다보니 물건에 대한 집착이 점점 줄었고 짐이 되는 물건들은 자주 정리를 하거나 나보다 더 잘 쓰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내 손을 떠났는데 이 냄비가 떠나지 않은게 이제와서 새삼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 그리고 이 냄비세트들이 이렇게 내가 주부되서 빛을 발하고 있다. 물을 적게 넣고 기름을 적게 먹는 냄비라 혹 해서 샀는데 진짜 후회 안하는 나의 아이템이다 하하. 그 때도 죽을 때 까지 쓰겠다는 마음으로 샀는데 그러고 보면 내가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좋아했던 건 요리 하는거였던 거 같다. 어렸을 때 부터 엄마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같이 요리 하는 것을 엄청 좋아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제일 먼저 했던 알바가 패밀리 레스토랑 마르쉐 에서 다들 캉캉 치마 입고 빨간 립스틱 바르고 안내하는 호스트 하려고 경쟁할 때 나는 새벽에 출근하는 셰프 보조 하겠다고 했다. 다들 힘들다고 말렸는데 나는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셰프 옆에서 보고 배우면 뭐라도 배우겠지 싶어서 수능 끝나고 매일 다섯시에 일어나서 알바를 하러 갔다. 생각해 보면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거 같다. 그러고 뉴욕에 가서도 스시 집 알바를 하루 몇시간 정도 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오이와 당근을 수십개 깍은 일이였지만 옆에서 뭐라도 배울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열심히 일 한 덕에 우연히 다른 사람 눈에 들어와서 빅토리아 시크릿 회사에 인턴 자리도 얻게 되었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내가 요리에 열정이 있어서 얻은 기회가 아니였나 싶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면서 파티 플래너로 일한 것도 맛있는거 같이 먹고 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 되었고 전 세계에 있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 봉사를 다녔던 것도 각 나라 명상센터의 비건 메뉴가 궁금해서 배우고 싶었던 거였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여행 할 때마다 집에 초대 받는 것을 가장 좋아 했던 것도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을 배우고 싶어서 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은 요리 였다. 근데 너무 사랑해서 일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 미각과 후각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한번 먹어본 음식은 대충 비슷하게 만드는 정도면 재능 맞는거 같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해야 신난다. 그리고 내가 먹이고 ( feed) 하고 싶은 사람,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에게 해야 신난다. 결론은 내가 꼴리는 대로 해야 된다는 거- 하하하.



오늘은 유투브 채환의 귓전명상 108배 중급 영상을

틀어놓고 절을 했다.


‘ 음. 300배도 했으니 중급 정도 될려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 했는데 처음 십배 정도 까지는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해서 ‘ 오 체력이 좀 늘은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삼십배가 넘어가면서 자꾸 뒤쳐져 갔다. 중간에 속도를 못따라가서 잠깐 잠깐 쉬면서 숨을 다시 고르고 이어갔다. 결국 여덜개 정도 뒤쳐진 절은 영상이 끝난 후 혼자 마무리를 했다.


300배를 해도 여전히 108배는 힘들다. 처음과 중간 끝이 마음이 다 다르다. 처음에는 ‘ 언제 다하지,’ 하는 마음이 올라오다가 중간에 약간 온몸에 열기가 돌더니 마지막에는 ‘ 다 와간다. 다 와간다’ 하는 마음에서 힘이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다. 그리고 108배 끝나고 나면 더 이어나 갈 수 있어서 뒤쳐진 절을 채운다.


오늘은 그래도 이거라도 이렇게 평생 붙잡고 가자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공간과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나랑은 너무나도 잘 맞는 운동이자 수행법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108배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하면 찝찝하고 하고 싶고 생각나고 하고나면 너무 좋고. 그래 천천히 꾸준히 오래 하자. 즐겁게!


내가 하루 세끼까지는 아니고 하루에 한끼 밥을 정성껏 지어서 내 영혼과 몸을 보살피듯이 하루에 한번이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몸을 움직이는 명상과 수행이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밥을 챙겨 먹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마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니까!




다섯시부터 졸려하는 한별이를 온몸으로 놀아주고 여섯시에 저녁을 먹고 일곱시에 한별이를 재우고 남편은 쓸고 닦고 나는 큰맘 먹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나니 속이 다 개운. 각자일 척척척하고 108배 하고 목욕하고 주방 불 끄고 양초 피우고 나면 오늘 할일 끄읕. 이제 윤스테이 봐야지.



아직 아홉시 밖에 안됬다니.


아가야, 제발 통잠 자렴.

오늘은 가슴차크라를 활짝 여는 싱잉볼 명상으로 108배 마무리


오늘도 꿀잠 예약.


아침 백팔배도 좋지만

자기 전 백팔배도 좋다.


내일은 아침 백배, 저녁 백배!

해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108배 16일차 ] 행복의 탑을 정성껏 쌓아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