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제 미스터선샤인을 보면서 맥주와 새우깡을 반봉다리 먹고 울어서 눈도 얼굴도 퉁퉁 부어서 일어났다. 평일에는 가능하면 술을 안마시려고 했는데. 어제 남편이랑 다투고 속이 상해서 핑계삼아 맥주를 땄다. 어찌나 맛있던지-
작은 맥주 한캔을 땄는데 눈 앞에 먹다남은 새우깡이 보여서 한두개 집어 먹었더니 맥주가 모자란다. 꿀꺽 꿀꺽 마시고 시원하게 트름을 하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내 몸과 마음도 예전같지 않지만 예전처럼 활발히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나는 내가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남편이 벌어주는 돈을 받아서 쓰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내 입으로 생활비를 달라고 말하는게 자존심이 상해서 결혼 하고도 한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적이 없었고 문제가 터진 것은 출산을 하고 나서 였다. 출산을 하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남편은 생활비에 대해서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 딱 드는 조리원도 없기도 했지만 형편상 산후 조리원을 가는 것도 마음의 부담이 컸다. 물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다면 내 돈을 내고 갈 수도 있었을테고 조리원에 꼭 가고자 했던 마음이 컸다면 돈이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 한켠에는 항상 이런 마음들이 있었다.
‘ 예전에는 그런거 안하고도 다들 잘 살았잖아’
그래서 나는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약물을 전혀 투여하지 않고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이가 나오려고 하는 그 ‘때’를 기다리며 아이를 세상에 맞이하고 싶었고 비싼 조리원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산후조리를 잘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집안일이 서툴고 센스가 없는 남편은 산후조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나는 안그래도 예민한 사람이 출산 후에 예민함이 극도로 커져서 쉽게 짜증을 내고 쉽게 화를 냈고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감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 차라리 조리원을 갈걸’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 했는지 모른다. 그 돈 아껴서 나중에 여행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언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무조건 푹 쉬면서 회복에만 집중해야 되는 그 시기에 집안일부터 산후 도우미 구하고 이것 저것 온 갖일들에 신경을 쓰면서 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남편은 그 상황에서도 생활비에 대해 아무말을 안하고 있었고 나는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을 결국 꺼내고 참았던 분노들이 폭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결혼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그 생활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답답해서 부부 상담도 받아봤고 이런 저런 방법도 써봤지만 남편은 통장을 공개하지 않고 자꾸 회피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더이상 아이 때문에 내 일을 포기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이 나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내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내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에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정말 시시한 대화만 하고 싸우는 일 때문에 에너지가 바닥나고 버려지는 시간도 너무나 아까워서 화가 난다.
그래도 오늘 아침은 햇살이 좋아서 창문을 활짝열고 환기를 시킨 후 108배를 시작했다. 우연히 티비에서 문소리가 108배를 하는데 한사람씩 생각하며 10번씩 기도를 한다고 해서 오늘은 유튜브 영상을 틀지않고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고 열배씩, 열번을 절을 했다. 그냥 숫자를 세면 항상 중간에 까먹었는데 생각보다 이렇게 하니까 더 집중해서 하게 되는 것 같다. 속도가 빨라지니 제법 땀이 난다.
내가 화를 많이 낸 사람들 먼저 떠오르다가 고마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마지막 절을 하고 고개를 드니 아이가 탁자를 잡고 벌떡 일어났다. 아직은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해서 비틀 비틀 거리면서 불안정해 보였지만 제법 오래 두 다리를 혼자 지탱하고 서 있었다. 잡아주지는 않았지만 행여나 넘어질까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을 하는 듯 했다.
‘ 엄마! 나 잘하지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 아이에게 다시 눈 웃음으로 화답해본다. 하루 하루 놀랍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나도 매일 매일 지혜와 현명함이 자라나기를 두손모아 기도한다.
이제는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면 아이의 건강과 남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는 세상이 지금 보다는 나아졌으면. 무엇보다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꼭.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살자.
내 몸과 마음을 보살피고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자.
결국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내면의 평화와 기쁨이
우리 가정에도 깃들테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좋은 기운들이 나와 너와 우리를 살리기를 바란다.
살리는 일.
살리는 사람.
살림을 하는 사람.
살림이스트.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바라는게 다 이루어졌다고 해서
항상 행복하고 항상 기쁘고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삶은 언제나 양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