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가 전하는 힘

내가 원하는 인생 창조하는 법

by 쉘위


내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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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학교를 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행동까지 일방적으로 강요받으면서 학교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감옥과도 같았다. 탈출구가 필요했지만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넘치는 에너지는 잘 다루지 못해서 거칠었고 남들과 똑같지 않다는 이유로 문제가 있는 학생으로 취급받는 게 싫어서 부단히 도 애를 쓰면서 살았지만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남의 멋이 아닌 내 멋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남들의 시선과 말들이 불편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엿보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 하기도 했지만 쉽사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게 두렵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고 친구들과 모여서 춤을 추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내면의 어린 자아는 그때부터 웅크리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낯설고 어렵고 어색해져 갔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지 못하고 누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인정받고 싶은 욕구,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은 나를 점점 가두고 영혼의 어둠은 짙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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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스스로 깨부수고 나오지 않으면 저 벽 뒤에 있는 새로운 세계의 참 맛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영혼의 생기를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신이 나를 창조하셨을 때 가장 기뻐하셨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을 스스로 창조할 때 가장 기쁘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이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 번쩍거리며 나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그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기로 했다.


지난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창자에서 솟구쳐 나오는 힘으로. 바람이 이끄는 곳으로 자유롭게 유랑하며. 한국에서 6개월, 다른 나라에서 6개월. 유목민의 삶. 개미와 베짱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와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를 깨부수며 내 몸이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 편안해져서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다시 배낭 하나를 메고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날 때마다 소유물을 정리하며 배낭 하나로 살아가는 삶은 나에게 온전히 내 몸뚱이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원초적 능력을 다시 회복시켰다. 울퉁 불퉁한 길을 걷기도 했고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길 위에서는 자유로웠고 행복했고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고 어제의 후회와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줄어들었다. 오롯하게 나만을 바라볼 수 있었고 내 영혼이 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나에게 길을 떠나는 것은 곧 기존의 규범과 상식으로부터 떠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의 근육이 강해지면서 몸과 영혼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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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부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니 신이 나듯 삶이 즐거워졌다. 내 영혼은 나에게 말했고 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이 세상에서 한바탕 신명 나게 놀다가 웃다 죽으리라고. 한 번뿐인 인생 마음껏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달라진 것은 마음 하나뿐인데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다. 세상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고 나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다시 세상에 나만의 언어로 전하기 시작했다. 글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그림으로, 몸짓으로. 바람에 나를 맡기니 나는 자유롭게 바람을 따라 날아다녔다. 내가 자유롭고 건강해지니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 비난에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은 나를 치유했고 나는 예술의 위대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했다. 아름다움은 나를 구원했고 나는 세상에 아름다움을 전하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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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길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대한민국을 떠났지만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하지만 내가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첫 번째 질문은 어디 나라에서 왔냐는 것이었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나는 그들을 통해 바깥세상에서 나라는 인간과 국가를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대상에는 참으로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고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예술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알게 될수록 내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사랑이 커져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을 만났다. 새롭고 신비로웠다. 감동과 감사함이 내 삶 속에 채워지면서 나는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일에 혼을 다하면서 살고자 했다. 내 영혼도 점점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영혼이 자유로워지고 생기를 찾아가면서 내 가슴은 더 뜨거워졌고 거침없이 앞을 향해 달려갔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는 힘은 실로 놀라웠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우리나라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국가들도 많았다. 관념과 사상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면서 이 분법적인 사고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갔지만 내가 배우고 정의했던 자유를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으로 얻게 된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도.


지금 이렇게 길 위에서 삶을 마무리해도 아쉬움과 후회는 없었지만 내가 대한민국에서 해야 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내 뱃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꿈틀 거리면서 요동쳤다. 몸은 다른 나라에 있었지만 마음은 쉽게 이곳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길 위에서 무수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했다. 나라는 인간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거나 정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삶을 마감할 때는 적어도 내 삶이 나를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고. 그리고 평화롭게 눈감고 싶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허비할 수가 없었다.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아는 것은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것이 나와 내 영혼과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기도 했다.


내 영혼은 자유롭게 바람처럼 새처럼 날아가기를 원하면서도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자유를 다른 사람들의 겪고 있는 고통과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하기도 했다. 영혼이 아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외면하고 나 혼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것이 내 영혼이 나에게 강력하게 소리치는 메시지이기도 했고 삶의 의미도 했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길 위에서 배웠던 삶의 본질 와 의미를 나누는 인생 예술 학교를 만들었다.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창조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이 되기로 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내 삶이 모범이 되고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 자주 검열하고 성찰하면서 외적 성장보다는 영적. 내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도 길 위에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때 마지막에 조금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세상 안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달랐고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볼수록 세상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보고 싶고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국제기구와 시민단체에서 인권 활동가와 환경 운동가로 살면서 매일 같이 싸우고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또 싸우고 싸웠다.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면서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내 모습은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았고 싸움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쳐갔고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항상 검열되어야만 했고 나만의 언어와 목소리는 없었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가슴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싸우는 것만이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팔짱 끼고 방관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아름다운 방법으로 싸우고 싶어 졌다. 엉망진창 시궁창 구린내 나는 역겨운 세상에서 적어도 나하나라도 양심적이고 정의롭게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며 신명 나게 웃으면서 세상과 맞짱 뜨고 싶었다. 세상은 나를 광장으로 나오게 했고 나는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대한민국에 있을 때는 난 항상 서울 한복판 광장에 있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떠났는데 또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서울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이상했고 이해되지 않은 일 투성이었지만 사람들은 나보고 이상하다고 했다.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되냐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냐고. 하지만 ‘무엇이 편하게 사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은 내 가슴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행동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그것이 나를 살게 했기 때문에 나는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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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는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었고 나는 그 동지들과 함께 있을 때 위안을 얻기도 했고 희망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점점 거세질수록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거칠어졌다. 광장에서 들리는 언어는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오염되었고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본질을 훼손시켰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갈등을 일으켰다. 그곳 또한 이분법적인 체계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나누었고 나와 색이 다르면 서로를 혐오하고 폄하했다. 분노는 분노로 맞섰고 화의 불길이 커져가면서 광장에서 보는 수많은 장면은 폭력 영화보다도 끔찍하고 잔인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아팠다. 대한민국도 너무나도 아팠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서로를 더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다시 고민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어둠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아프고 상처들이 곪아 시궁창 냄새가 심하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있는 힘껏 힘을 내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물질문명에 물들지 않은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욕심내지 않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싶지도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행복한 사람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과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는 밝은 빛을 따라 걸어갔다.





구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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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나오지 않고 물을 길어 몇백 미터를 걸어가서 자주 씻지도 못하고 화장지 살 돈도 아까워서 볼일을 보고 손으로 해결해야 되는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나는 자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과 비교했다. 나는 이 사람들보다 가진 것도 많은데 왜 이 사람보다 환하게 웃지 못하는 걸까. 어느 것 하나 편한 게 없는 히말라야 오지생활은 나를 투정 많은 나약한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그런데 내 옆에서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는 나보다 더 씩씩하고 행복하게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반짝반짝 거리는 눈빛으로 나에게 두 손 모아 나마스테를 하고 인사를 하면 갑자기 무언가가 뜨겁게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그들이 나에게 전하는 그 순수한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 나를 치유했고 무의식의 나를 만나게 했다. 그래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어디론가 떠나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저 아이들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부터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보기 위해 떠돌아다니지도 않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아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내 안에 가장 소중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가장 신나고 즐거운 일도 내 안의 보물과 다른 사람의 보물이 세상에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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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가진 것만 부러워하면서 내가 가진 것을 깊숙이 바라 본적 이 없었다. 바라본 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고 인내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부족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니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니 내 영혼이 조금이라도 꺼림칙하거나 원하지 않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진실된 삶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을 더 평화롭고 자유롭게 했고 진실된 사랑과 감사함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했다. 무엇을 해도 충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일상에서 영혼이 꽉 채워진 삶은 나를 영혼 부자로 만들었다. 나눌 것이 많아졌다. 가진 게 하나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때 그들은 사랑과 평화를 얻으니까. 그리고 나의 내면의 힘도 점점 깊고 넓어져갔다. 그 에너지는 나와 너 우리가 아름다움으로 함께 공명하고 더 큰 울림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 길은 내면의 우주를 탐험하는 명상의 세계로 우주의 법칙과 본질을 찾아가는 만다라의 길로 걸어가게 했다. 내면의 빛이 환하게 빛나서 꽃이 활짝 피어나 나비와 벌들을 끌어당기는 만다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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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수행




내가 명상을 시작하고 숲 속에서 지구를 지키는 생명 지킴이 전사들과 함께 지내면서 체험한 의식의 변화들이 언어로 설명되지 않아서 한동안 우울한 감정 속에서 허덕거렸었다. 신비롭고 소중한 경험을 글로 기록을 해서 남겨놓고 싶은 마음은 강렬한데 내 안의 언어들로 내 경험을 표현하기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보이는 강렬한 이미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말 미친 듯이. 밤낮 가리지 않고. 강렬한 색채들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고 내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무언가가 분출돼서 나오는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가끔씩 나를 압도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나를 힘들게 하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분노와 원망, 후회와 죄책감으로 내 영혼을 어둠으로 잠식하고 있던 고통들이 터져 나오며 세포들이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소리치며 '잘했어! 정말 잘했어!' 라도 나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증상들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그라들면서 뱃속이 편안해졌고 딱딱해서 누르기만 해도 통증이 심했던 아랫배는 신기하게 말랑 말랑해졌다. 그리고 내 몸의 기민한 감각에도 귀를 기울이고 들어줄 만큼 내 몸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궁금해서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내 안의 우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싶었는데 눈을 감고 더 깊게 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더 넓은 세상에서 드넓게 내 꿈을 펼치면서 살고 싶었는데 작은 방석 위에서 눈을 감고 내 몸을 구석구석 탐색하면서 내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면 할수록 내 꿈이 더 명확해지고 그토록 찾고 싶었던 진리도 자명해졌다. 삶이 명료해지면서 불안과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기보다는 고요한 마음 상태에서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내면의 소리와 상위자아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어느샌가 리듬을 타고 아름다운 운율로 연주를 하며 그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삶이 창조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순수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는 것, 그것이었다.




수행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명상하는 마음과 명상의 대상이 한데 녹아들어야 한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과 명상의 대상이 서로 대립될 때가 많다. 완전한 몰입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때 변환이 일어난다. 의식이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되고, 그 순간 마음이 열리고 '나'는 사라지게 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자발적이고 신나게 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신( 神 ) 이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두려움은 사라지고 평소와 달리 스스로의 간섭과 한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거대한 에너지가 분출하게 된다. 변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의 혁명이자 개벽이기도 하다. 삶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나라고 생각하던 것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동안 쌓아온 게 많을수록 고통이 동반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리기 위해 내 영혼을 두껍게 치장해온 껍데기들로 무거워진 삶의 무게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비통함 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의미 없고 공허하고 황폐한 것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니까.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명상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명상이 생각을 비우고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을 비우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명상은 단순히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명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가야 하는 방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본질을 꿰뚫어 보고 절대적인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첫째로 해야 할 일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1분 동안만 관찰해봐도 우리의 생각은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이 환상에서 저 환상으로 날아다니며 춤을 추고, 끊임없이 혼잣말을 지껄여대고, 끝없이 밀려드는 사소한 생각의 흐름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은 야생마 같아서 고삐를 매어 훈련시켜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음을 닦고 우리의 행동을 닦는 것, 그것이 수행인 것이다. 습관적인 마음과 행동이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상을 통해 고요해진 마음으로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파 내려가 그곳에 묻혀 있는 소중한 보물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내적 외적으로 모든 사물을 변형시킬 수 있는 창조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정신능력을 이용할 수 있 다. 만약 그 상상력을 올바른 방식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언어를 수단으로 하거나 단순한 분석을 통해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매우 심오한 정신의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림을 통해 생각이 이루어지는 매우 깊은 정신 차원이기도 하다, 깨달은 상태에서 생겨나는 그림들을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매우 깊은 차원들을 풀어낼 수 있게 된다. 그때 다루게 되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가장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자질들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이다. 그 이미지들은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신성하고 고귀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므로, 당신이 진정한 존재로 되돌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수행을 할 때 사건들이 발생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색(色)을 만났고 그림을 만났고 만다라를 만났다. 그것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이기도 했다. 나를 표현할수록 나는 나의 본연의 색을 찾아갔고 근원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 후에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었으니까. 그리고 기도했다. 당신이 보시기에 기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신은 나에게 더 이상 종교적인 신이 아니었다. 오로지 내 안의 창자가 전하는 그 메시지일 뿐이다. 몸의 감각은 언제나 진실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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