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살이 1년 조금 더, 조금 더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리고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을 ‘아주 심기’라고 부른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었는데 이름 그대로 ‘아주 심기’는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다. 보통 겨울에 파나 양파를 그렇게 키우면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는 달고 단단해진다. 시골에 내려와 작년 겨울에 처음 파씨를 뿌리고 추운 겨울에 싹이 올라오는 것도 신기했는데 아주 심기를 위해 뿌리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호미로 살살 흙을 파면서 새끼손가락 만한 파에 얼마나 많은 실 뿌리들이 촘촘하고 길게 붙어 있는지.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뿌리들이 다치지 않게 미리 거름을 준 땅에 옮겨 심고 난 후 쑥쑥 자라나는 파를 보며 대견스럽고 기특했다. 혹시나 옮겨 심으면서 다치지 않을까 뿌리가 제대로 뻗지를 못해 강한 겨울바람에 쓰러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그 잔잔하고 자기 몸뚱이 만한 뿌리를 땅 깊은 곳으로 뻗쳐가며 스스로 살기 위해 땅 속에서 열일 하고 있는 파를 보며 뿌리를 잘 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을 시골에서 보내고 있다. 나는 그 파처럼 이 곳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있을까. 내 몸 동아리 만큼이나 튼튼하고 굵은 뿌리가 땅 속에서 자리 잡고 있지를 못하고 있는지 자꾸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비틀거린다. 도시에서의 바쁜 삶이 싫어서 시골에 내려왔는데 또래 친구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없고 편하게 연락해서 만나고 싶어도 다들 바쁜 시골의 삶은 오히려 혼자 지내는 삶이 익숙해졌다. 같이 밥상을 차려먹고 싶지만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더 많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로 삼시 세 끼를 건강하게 잘 차려먹는 게 행복하고 만족했던 삶도 일상이 되어버리니 시큰둥 해져간다. 그 마음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니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날도 점점 늘어간다. 그토록 원했던 시골에서 의 삶도 현실 속에서는 고독과 외로움을 잘 마주하고 견뎌가는 법을 터득해 나갈 뿐이니까. 하지만 세상 어느 곳이든 익숙해지면 편안해지고 편안해지면 지루해진다. 지루한 날이 계속되면 지긋지긋해지고 무언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진다. 이곳에서 새로운자극과 영감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이고 내가 창조하는 예술이다. 지긋지긋한 삶이 계속되더라도 매일매일 나를 지키고 살리는 마법의 주문을 걸어야 한다. 농사를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밥을 할 때도. 내가 하는 일이 어마어마한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할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은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갈 테니까.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해서 지루함이 해결되거나 지금보다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어쩌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아주 심기 하는 법을 잘 배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칼바람도 이겨낼 ‘아주심기’를 잘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면 어느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자생력이 생길 테니까. 한 해가 지났을 때 많은 것을 이루고, 많은 것을 얻기보다는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고 깊은 뿌리가 자라고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나처럼 시골에 내려와서 살고 싶은 청년들이 있거나, 시골 살이가 힘든 청년들이 있다면 뿌리를 내리기 위한 성장통이 시간이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