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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29. 2020

지랄도 풍년.

저기요 제 인생이에요!



남들이  예스   노를 말하고 그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문제아라고 그런다. 나는 그래서 , 고등학교 내내 문제아였다. 억울하게.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게 하나도 없는데.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나는 열심히 사는데 나보고   산다고 하는 사람은 없고
남이 정한 기준에 맞추다 보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예민하고 민감해서 감각이 발달되어 있는  , 그리고 효리. 그래서 어쩌면 나도 효리도 유행을 창조하고 이끌  있는 거다. 학교 다닐 때도 내가 입는 , 내가 하는 머리 스타일이 유행이 되고 친구들은 나랑 똑같은 옷과 머리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애들 선동한다고 항상 나만 혼나고  나만 미운 오리 새끼처럼 무시당하고  이야기는  한 번도  기울여서 들어주는 선생님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을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을 하기도 하고 강의도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외모가 날라리 같다면서 조심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듯했지만 나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몸에 있는 타투도 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몸에 있는 문신을 보고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간혹 문신 샘이라고 불러져서 다른 선생님 앞에서 당혹스러울 때도 몇 번 있었는데 그렇다고 눈치 보거나  모습을 가리고 싶지는 않았다.

 팔뚝에 있는 네팔어로  만트라 문신은 가장 쉽게 노출되는 문신 중에 하나다.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가  문신을 보며 ‘  이거 뭐라고 쓴 거예요’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도  문신을 보며 놀라워하자 나는 내가 실수로 겉옷을 벗은 게 아차 싶었다. 행여나 시골의 순박한 아이들에게  문신이 잘못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래서 잠시 숨을 가다듬고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몇 분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문신의 뜻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빌어주는 주문이야네가  문신을  때나 읽을  너에게도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거야’

선생님 진짜예요?’

그럼- 믿는 대로 우리의 삶은 그렇게 될 거니까. 

그랬던 친구는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저녁과 간식을 먹곤 했는데 그날 이후 우리는  가까워졌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은 요즘 나보고 조울증 환자 같다며 놀려댄다. 나는 그럴 때마다 조울증 환자 같은 게 아니라 조울증 환자라고 말한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향을 가지고 놀면서 한참 동안 앉아서 명상을 했는데 명상을  때마다 남편에게 화낸 게 미안하고 애쓰고 있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나를 나쁜 여자라고만 생각할  있지만 내가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 나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을 느끼고 남편과 결혼한 이유도 남편이 너무너무 멋있어서가 아니라 측은지심을 느껴서 사람 하나 살린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으니까-

매일 같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가는 남편에게 제발  오지 말라고 애원을 했었다. 나는  시간에 그림도 그려야 되고 책도 읽어야 되고 글도 써야 되고 유튜브 영상 편집도 해야 되고 김치도 담가야 되고 텃밭도 가야 된다고.  시간을 뺏기도 방해받는 게 너무 싫었고  시간,  공간이 사라져 가는 게 짜증 났고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하는 동안 지금의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먹듯이 했었다. 남편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프러포즈를 했지만 내가 예스를 한건 한참 지난 후에 어떤 깨달음이 있을 때였다. 나보다 기가 약하고 체력이 약한 남편은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면 어쩔 줄 몰라 깨갱한다. 아는 분이 사주를 봐주셨는데 나는 여장군 감에 호랑이 같은 성질을 지녔고 남편은 순한 토끼 같은 사주라고 했다. 성격도 기질도  반대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하는 기운이 있고 혼인을 맺으면 일이   풀린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꼴리는 대로 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았고 돈에 관심 하나 없이 영성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결혼을 하면서 영성과 지금까지 경험으로 얻은 지혜가  버무려져 돈이 굴러 들어온다고 했다. 남편은 보기와는 다르게 벼슬 자리가 있고 평생 들어오는 돈이 있어서 중년, 말년 운세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누구도 우리가  어울린다고   없었는데 둘이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보듬어주면 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맞춰 살아갈 거라고 했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에게  또한 배신을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삶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며 감 놔라 배 놔라  때마다  안의 심술꾸러기가 나타나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싶고 놀려주고 싶었다.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다들 말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말한다. 남편  만났다며. 나는 그런 남편 만나야 행복하다며.

 웃기지도 않는다. 지랄도 풍년.

저기요.  인생은 제가 알아서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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