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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29. 2020

백일의 기적

진짜 아빠, 진짜 남편이 되기까지-

100일 후에 남편이 살림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생일날 잡곡밥에 미역국 정도는 거뜬히 끓이고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고 차분하게 육아와 살림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나는 아주 진지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훗날 아들에게 나에게 배운 살림 노하우를 갈고닦은 후 잘 전수해서 아들이 스무 살이 되면  생존 능력을 장착해서 무조건 독립시켜야 된다고- 남자가 혼자 밥해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없으면 결혼해서 마누라가 개고생한다고- 다른 거 물려주지 말고 좋은 거 물려줘야 아들이 행복하게 연애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거라고.

아빠가 부엌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들의 미래가 결정된다. 아들 낳고 싶으면 지금 100일 잘 보내 된다고. 그거 못할 거면 그냥 즐기고 싸지르지 말라고. 서로 사랑해서 사랑을 나눴는데 남자는 기쁨만 남고, 여자는 왜 고통과 우울감과 걱정과 불안을 얻어야 되냐고. 남자들은 여자랑 섹스하고 즐기고 사정하고 싸지르면 그만이지만 콘돔 하기 싫어하는 남자 때문에 여자가 제대로 된 피임을 하지 않으면 다음 생리 때까지 불안과 걱정으로 초초해하며 보내야 되고 임신이 되면 기쁨보다는 원망과 후회로 보내기도 한다. 나 또한 임신 초기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편과 이 문제로 엄청 싸웠었고 우울했었다. 그리고 여자는 열 달 동안 아이를 잉태하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고 아이를 낳을 때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진통과 고통으로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뼈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고 온몸을 고문당한 것처럼 아프고 엄청난 고통이 출산 후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몸으로 아이를 위해 모유수유를 하면 내 몸의 영양분은 다 아이에게로 가고 서툰 자세와 세 시간마다의 수유 텀으로 잠은 항상 부족하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거 같이 아파서 엄청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서 바닥을 찍는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100일까지만 내 짜증, 내 투정, 내 불만 내 부탁 무조건 다 들어주고 품어주라고. 내가 백일의 기적만 오면 짜증도 안 내고 화도 안 내도록 노력해볼 테니까. 하지만 백일까지는 그냥 입 닫고 귀 열고 열심히 배우고 습득해서 내 마음 편하게 해 달라고. 아이도 중요하지만 와이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출산의 고통도 잊히지만 남편이 서운하게 한 거는 평생 안 잊힌다고. 나한테 평생 구박당하고 원망 듣고 싶지 않으면 제발 백일만 참아달라고-

그리고 우리 백일 날에는 진짜 우리 자신을 위해 축배를 들자고. 풍악도 울리고 신나게 춤도 추고 100일의 기적을 다 함께 축하하자고. 아가가 무탈하게 백일을 보낸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 아빠 신고식 잘 치르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삼신 할머니께도 인사드리고 땅의 신과 한울님과 우주의 모든 정령들에게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보내주시고 보살펴주시고 돌봐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진짜 백일잔치하자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백일잔치 말고 진짜 찐 백일잔치!
그날 하루는 백 명에게 떡도 돌리고 백 명에게 축하받자고.

백일의 기적이 꼭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나기를
그날은 엄마도 이쁘게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하고 이쁜 옷 입고 하늘 아래서 땅의 기운을 듬뿍 느끼며 힐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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