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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29. 2020

공동체의 시작, 부부 공동체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아빠 눈에서 꿀이 뚝뚝뚝-

회음부 절개도 열상도 하나 없이 약물투여나 수술 없이 진행한 자연주의 출산은 출산 후 산모의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서 병원 출산이 아닌 조산원 출산을 선택했다. 참고로 자연분만과 자연주의 출산은 밑으로 분만을 한다는 것은 같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자연분만은 의사가 주도적이지만 자연주의 출산은 산모가 주체적이고 아가의 시간에 맞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방식이다. 나는 무엇보다 병원에서 하는 분만 방식 중에서 아가가 잘 나올 수 있게 회음부 절개를 하는 게 가장 싫었다.

그리고 고통을 없애기 위해 무통주사를 맞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무통 주사로 고통이 사라지기는 해도 내 의지대로 힘을 줄 수 없고 일생에서 자주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출산 전에 회음부 손상이 덜 생기도록 막달에는 회음부 마사지를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조산원 원장님의 가르침대로 남편이 매일 밤 마사지사가 되어줬다.

정말 신기하게도 조산원 원장님의 구호에 맞춰 호흡하며 아가가 평화롭게 천천히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덕에 나의 소중한 회음부도 다치지 않았다. 그 덕에 출산 후 바로 걷는 게 가능했고 회음부 통증도 미비했고 ( 그래도 아가 몸이 작은 질 구멍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증은 있다. 내 경우에는 출산 후 원장님 부축을 받아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바로 소변 누는 것도 가능했다) 붓기도 심하지 않았다. 다들 아이 낳은 사람 같지 않다고.

하지만 확실히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3킬로가량 되는 아이를 안을 때도 무겁다고 느껴져서 손목이 아플까 봐 주저하게 되고, 집 창문 열 때도 무거워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다른 사람을 시키는 일이다.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는 센스가 탁월하면 얼마나 좋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가 되지도 않을 테지만 아가를 출산하고 엄마의 몸도 아가처럼 변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는 게 때로는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서러움의 감정이 확 몰려올 때가 있다.

새벽에 아가가 울면 몇 번씩 일어나서 눈도 잘 떠지지 않는데  젖을 물리면서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면 동이 튼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을 때는 젖이 줄줄 흘러서 옷이 흠뻑 젖어 있거나 바위 덩어리처럼 딱딱해져 버리고 불덩이처럼 열이 난다. 하루 종일 젖과의 싸움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경험들을 하면서 나의 엄마와 내 주위의 엄마들과 경험들을 공유할 때마다 뜨거운 동지애가 들면서 나 또한 친구의 임신 소식에 내 일처럼 기쁘고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내 몸도 힘들지만 뭐라도 도움 주고 싶은 마음들이 자꾸 든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감정이다-

출산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출산할 때 환희의 기쁨과 진통의 고통, 젖몸살의 아픔, 수면 부족의 고통 등등 그동안 살면서 느껴 보지 못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고 있다. 고통도 환희도 기쁨도 슬픔도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은 없고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며 가능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가를 볼 때의 그 눈으로 최선을 다해 옆에서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남편도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아가가 내 밑으로 나와 내 심장으로 옮겨질 때.. 그 순간 내 옆에서 진통의 고통을 함께하며 애쓰고 응원해준 남편에게 뜨거운 키스를 해주지 못한 게 정신 차리고 보니 미안함으로 남는다. 그 뜨겁고 벅찬 감정을 함께 느낀 사람에게 대한 진한 고마움이 오늘을 파도처럼 밀려온다.

몸이 조금 편해지면 마음도 조금 더 편해지겠지. 시간이 지난 후 남는 것은 사랑만이 남았으면 좋겠다. 매 순간 사랑 가득 채울 수 있기를. 조금 더 온유해지고 너그러워 지기를. 그리고 지금은 나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줘야지- 엄마가 되는 순간 태어난 생명체에게 온 사랑을 쏟기 시작하며 잊어버리게 되는 셀프 러브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또다시 나눠줄 사랑이 채워지니까.

오늘 새벽에 갑자기 젖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면서 두 다리가 저려서 잠이 깼다. 남편을 깨워 마사지를 부탁했는데 잠이 덜 깬 남편의 손이 영 시원하지가 않아서 짜증이 계속 났다.
그러다 지치고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더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기대하는 대신 진안까지 멀어서 오기 힘들다는 출장마사지사를 웃돈 주고 불렀다. 돈 아까워서 나 자신한테는 잘 쓰지 못했던 게 습관이 돼서 난 나한테 돈 쓸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러다 앞으로 더 힘든 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올 텐데 나 자신을 보살피는 일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나중에 덜 억울하고 후회할 거 같아서. 사람이 억울하고 서운하면 한이 맺히고 병이 된다. 그때그때 잘 풀어주고 배출하는 것. 그것이 정화니까. 정화가 돼야 울혈이 풀리고 순환이 되고 기가 돌면 마음도 몸도 건강해지고 맑아진다. 눈물이 나면 흘려보내고 화가 나면 화도 내고 서운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그 연습이 잘 된 사람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흐른다.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에너지를 아가에게 전해주는 것. 엄마가 되어도 변하지 않고 잊지 않아야 되는 그 마음. 어떻게 놀이처럼 신나고 설레고 즐겁게 육아를 할까 고민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부 공동체가 먼저 행복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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