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울 푸드
어제 문득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저녁 7시만 넘으면 김밥 한 줄 사 먹을 곳 없는 이 곳 진안에서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해 먹어야 된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살아오면서 혼자서, 아니 둘이서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먹었던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만들어 먹었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무미건조한 리액션만 하는 게 재미가 없어서 가끔 밥 하는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줘도 잘 먹는 게 남편의 반응이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요즘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밥 하는 게 얼마나 일 인지 모른다. 밥 하는 게 일로 느껴졌다는 것은 도통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아이의 밥을 챙기는 것도 벅차다. 그 세 시간이 얼마나 빨리 돌아오는지. 잠깐 집안일 좀 하고 책 좀 읽거나 밀린 일들을 겨우 시간을 쪼개서 해야 되는 그 황금 같은 세 시간. 엄마는 어찌 그리도 시간을 잘 쓰면서 우리 둘을 키웠을까. 엄마가 해준 밥이 너무 그리웠던 날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도 밖에서 파는 음식을 사서 먹인 적이 별로 없었다. ‘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하면 뚝 딱. 호떡도 케이크도 치킨도 떡볶이도 김밥도 밖에서 먹는 게 더 보기 좋고 맛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금세 뚝딱뚝딱 집에서 다 만들어주셨다. 나는 엄마가 앞치마를 메고 부엌에서 노래를 흥얼흥얼거리며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그래서 고사리 손으로 엄마 옆에서 나도 하고 싶다며 알짱 알짱거리다 엄마가 바로 만들어준 음식을 손으로 집어 입으로 재 빠르게 넣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맛있다며 우리 엄마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엄마는 항상 그 표정이 보기 좋아서 집에서 만드는 게 귀찮아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오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 뭐 먹고 싶어? 뭐 해 줄까?’ 물었다. 가진 돈이 떨어지거나 엄마의 음식이 먹고 싶으면 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었다.
호주에서 밴으로 여행하다가 신우신염에 걸려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의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여행을 종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음식은 알 수 없는 그런 힘이 있다.
하지만 가끔 엄마가 만든 건 안 예쁘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다. 소풍 갈 때 엄마가 싸주는 김밥은 항상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 엄마, 나도 다른 애들 김밥처럼 하얀 밥에 이쁘게 싸줘. 당근은 빼고. 엄마 김밥은 맨날 터져 있어, 못 생겼어”
그래서 소풍 가서도 애들이랑 김밥 교환할 때마다 당당하게 도시락 통을 열기 힘들었는데 한 친구가 우리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칭찬해준 덕에 나는 엄마의 옆구리 터진 김밥도 마음껏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 우리 엄마 김밥은 못생겼는데 맛있다!”
“ 그런데 사 먹는 김밥은 이쁜데 왜 맛이 없는지 모르겠어”
동생과 나는 엄마 김밥이 못생겼다고 엄청 놀렸지만
우리는 엄마가 김밥 싸는 날에는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엄마가 김밥 꼬다리를 썰 때마다 서로 먹겠다며 경쟁했다.
그리고 엄마가 접시 위에 김밥을 올려놓을 때쯤은 이미 둘 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었지-
어제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생각나서 장을 봐서 부랴 부랴 김밥을 말았다. 김밥을 싸면서 혼자 꼬다리를 열심히 주어먹었다. 그런데 내 김밥도 옆구리가 다 터져 있었다.
하얀 밥 해달라고 조르던 그 어린아이는 커서 검은 현미밥만 먹는 어른이 되었고 당근을 쏙쏙 빼서 먹던 그 어린아이는 당근을 듬뿍 넣은 김밥이 좋아졌다. 좋은 쌀로 밥을 해서 갓 짠 참기름과 질 좋은 소금으로 밥 간을 했던 엄마. 옆구리는 터졌지만 엄마의 사랑은 꽉꽉 채워졌던 김밥. 이제는 내가 그 엄마 나이가 되어서 그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을 한별이에게 곧 만들어주는 날이 오겠구나. 한별이는 언제쯤 알까? 내가 꽉꽉 눌러 담은 사랑이 넘쳐서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