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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Aug 20. 2020

내 밥그릇 지키기

저는 영혼이 기쁜 일만 합니다.



지역에서 나는 내가 직접 만나서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자신이 보는 단편적인 한 부분만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이겠거니 판단하고 규정짓는 게 참 재미있다. 누구는 나를 집시, 누구는 전사, 누구는 요가랑 명상 뭐 거시기하는 사람, 누구는 힐러, 누구는 예술인, 누구는 영어강사 등등등으로 여러 포지션을 갖고 있는 덕에 각각의 사람들의 구미에 당길 때마다 자신들과 무언가를 같이 하자면서 연락이 온다. 최근 진안 행정과 싸우면서 같이 싸우는 일에 함께 하지 않겠냐며, 지역 발전에 함께 하지 않겠냐며,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있으니 싸우지 않았냐며 이것도 같이 하면 좋겠고 저것도 같이 하면 좋겠다면서 연락이 자주 왔다.

그런데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해석하는 나라는 사람을 듣는 건 유쾌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콧방귀가 나올 정도로 재미있고 사람이 없는 진안에서 결국 사람이 필요해서 뭔가를 같이 하자며 꼴리는 대로 사는 나한테 연락이 오는 것도 참 재미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것은 자기 들이랑 같이 안 하면 서운해하는 티를 팍팍 낸다는 것이다. 아이고- 다들 내가 싸울 때 팔짱 끼고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시고 계셨던 분들이 왜 이러실까 싶다.

그렇게 싸우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남 좋은 일 시키고 끝났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넘긴 아이디어와 제안들로 그들 밥그릇은 더욱더 단단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일을 하는 것처럼 (당연히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생색을 낸다. 어처구니도 없고 이제는 싸우는데 쏟는 에너지가 아깝다.

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 먹는 것도 사랑이 필요하다. 콩을 불리고 삶아서 가는데까지의 수고, 하지만 그 수고로 인해 나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과 나 자신에게도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대접을 하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건강한 한 끼를 잘 먹었다는 만족감이 주는 기쁨이 있다. 아주 작은 일인 듯 하지만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 나는 이 일을 잃지 않고 싶다. 지역을 살리는 일보다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살리고 내 영혼을 살리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 봐줄 사람이 없는데 지역이고 뭐고 행정이랑 싸워서 뭐하냐고.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 쉬쉬 하는 것도 자기 밥그릇 뺏길까 봐 그러면서. 나도 내 밥그릇은 지켜야지- 결국 여기온 이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왔는데!



이제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만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가사일을 하고, 예술작업을 하고, 행정적인 일들을 하는 등 각종 다양한 일들 사이를 저글링 하다보면 정작 사랑하는 나의 딸과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놓쳐버리고 만다. 자고 일어나서 눈 뜨면 한뼘 자라있고 매 손짓이나 발짓, 그리고 아기가 내는 모든 소리는 모든 것이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연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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