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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Oct 05. 2020

출산 후 아이와 함께 떠난 첫 여행

항상 처음이 어렵지 뭐-





출산 후 4개월 아이와 함께 떠난 첫 여행-

출산 전부터 보고 싶었던 바다를
출산 후 4개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봤다.

산골마을에 살다 보니 바다가 참 많이 그립다.
그런데 산도 있고 논도 있고 밭도 있고 바다도 있는
남해는 가는 곳마다 어쩜 이렇게 이쁜지 그냥 드라이브를
하면서 보이는 바다만 봐도 숨통이 트였다.


답답한 마음이 바다 한번 본다고 뻥 뚫리는 건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에 느끼는 그 기분이 참 좋았다. 일어나자 마자 창문을 열었는데 햇빛이 쏟아지고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아침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얼마만인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아침.


 

난 정말 우울증이라도 걸린걸까. 요즘 내 마음이 자꾸 아프다.




무엇보다 지난 백일 동안 마음이 설레지가 않아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고통스럽고 괴로웠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 수유할 때마다 이 아이를 언제 다 키우지 하는 생각이 휩쓸면 불안감이, 출산 후 집에서 산후조리하면서 이리저리 날뛰는 내 감정이 너무나도 낯설지만 섬세하게 내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알아서 척척 해주면 좋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도통 모르는 이 남자와의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점점 답답해지는 현실이 점점 숨이 막혔다. ‘ 아, 이 남자랑 어떻게 평생 같이 살지’ 결혼 전에도 두려웠던 그 부분. 누구와 함께 사는 것도 나에게 힘든일 인데 한사람과 평생 같이 산다는게 나는 너무나도 숨이 막혔다. 그런데 결혼 하면서 동시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난 내 꿈을 잃어버릴까봐 두렵고 앞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했다.


예민하여도 섬세한 나와는 달리 무딘 남편은 감정의 기복이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도 서툴지만 본인의 감정이나 마음도 잘 모른다. 지난 백일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남편을 향한 서운함과 섭섭함이 분노로 변하면서 외치고 또 외쳐봐도 못 알아듣는 남편으로 인해 좌절감과 공허함은 점점 더 커져가면서 나의 우울감도 깊어져 갔다. 그런데 내 몸과 마음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고 혼자 어디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리니 답답함과 외로움과 억울함이 내 밝은 영혼을 어둠으로 뒤덮어버렸다. 그런 내가 싫었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정신 차리고 거울을 보니 늘어진 뱃살, 쳐진 젖가슴, 휑한 머리, 푸석 푸석한 피부, 피곤에 지친 눈빛, 정말이지 예전의 건강하고 당당한 내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화가 나고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멘탈 강하던 나는 어디로 간 건지. 유리 멘탈처럼 나약해져 버린 내가 몸서리칠 정도로 싫었다. 내 마음에 드는 나로 살고 싶었는데 내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니. 누구하나 잘 하고 있다고 말 해주는 사람도 없고. 남편의 눈빛과 행동은 예전같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으니 계속 서글퍼졌다. ‘ 나라도 내 자신을 사랑해줘야지’ 하면서도 그냥 나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 시킨 집안일 만 열심히 하고 내 마음을 보살필줄 모르는 남편을 향한 화가 좀 처럼 가라앉지가 않았다.


정말, 이대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아로마 오일 공부를 하면서 내 감정을 돌보고

매일 한 장씩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햇살이 좋은 오후에는 운동화를 신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면서

걸어 다녔다. 백일이 지난 후 몸도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고 아이도 자주 웃어주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의미와 기쁨도 발견할 때는

엄마가 된 고마움의 감정도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 지겨운 일상을 나만의 리츄얼로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테라스에 나가 화분에 물을 주고 햇빛 샤워를 하고 향을 피우고 차를 만들고 스트레칭을 하는 반복적인 일상의 의식이 마음의 힘을 회복시켜주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데도 엄마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 같지 않았다.


일상에서 변화가 간절히 필요했다.


공간의 변화, 마음의 변화, 내 눈에 담는 환경의 변화가

답답한 일상에 조금이나가 생기를 주지 않을까 싶어

태어난 지 4개월이 조금 넘긴 아이와 여행을 떠났다.

백일 전에는 엄두도 안 났지만 이제는 좀 할만하겠다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다 즉흥적으로 바다가 보고 싶어 남해로 가자고 급 결정을 하고 가방에 짐을 후다닥 챙겼다. 전라도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 시간이 길지 않은 곳으로! 일단 떠나자!



여행을 참 많이 다니면서 살았지만 그동안 대부분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전국 팔도를 배낭 하나 메고 걸어 다니고 전기도 물도 없는 오지 여행을 다녔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여행 중에서 심리적 부담감이 가장 컸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이라 더더욱. 최소한의 사람 간의 접촉과 이동거리를 줄이기 위해 떠난 남해여행은 그동안의 답답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사람을 피해 다니느라 많은 곳을 가려고 하기보다 한 곳에서 여유 있게 머무르며 많이 느끼고 싶었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 쉬고 싶었다.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어도 어린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가볍기란 쉽지 않다. 기저귀 가방에 유모차, 젖병에 
분유만 챙겨도 짐이 한가득이다. 짐을 챙기면서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달력의 빨간 날이면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던 어린 시절. 매주마다 떠나는 우리 집 식구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엄청 부자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빠가 전국에 호텔을 짓는 일을 하셔서 값비싼 호텔에서 싸게 자는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생각보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이야기할게 많이 없었으니까.

산속에서 캠핑을 하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외딴 산기슭에 있는 허름한 집에 문을 두들겼는데 어린아이 두 명을 보고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내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은 어린 시절 여행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피소드이고, 아빠가 뚝딱뚝딱 만들어준 카레, 물놀이하고 나서 끓여준 라면 맛, 낚시하러 갔다가 트렁크에 쏟아진 구더기들 보면서 기절할 뻔하다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던 시간, 시골길 걷다가 발견한 돌나물로 고추장 쓱쓱 비벼서 먹었던 비빔밥의 기억. 시골에서 사귄 친구가 보고 싶어서 한참 동안 펜팔을 하며 편지를 주고받던 그 기억들이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며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준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는데 부모가 되고 나니 가슴이 시큰거린다. ‘ 우리 부모님 참 노력 많이 하셨구나 ‘

해도 뜨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싫어서 툴툴대면 차에서 자라고 나를 업어서 차 속에 태우고 눈 뜨면 아빠는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와 동생을 데려다줬다. 항상 캠핑 장비와 여행가방은 언제든지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고 여행해서 돌아오자마자 아빠는 그날 바로 다시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셨다.

짐 싸는 거 힘들어서 여행 가는 게 귀찮다는 또래 친구 엄마들은 엄마한테 어떻게 여행을 그렇게 쉽게 떠나냐며 물으면 엄마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돼요.” 어쩌면 엄마의 기억 속에 육아가 즐겁게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살면서 엄마의 그 말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고 힘이 된다. “ 그래. 해보고 싶으면 일단 그냥 해보는 거야” 뭐든 저지를 수 있는 용기도 엄마의 그 한마디에서 나왔고 어린 시절 수많은 여행을 하며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힘든 시절을 버티게 했다.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내 가슴으로 직접 느끼면서
경험하며 축적된 시간들은 몸이 기억을 한다.


바닷바람의 냄새를 맡으면 외 할머니 집에서 동생이랑 수영하며 고동 잡았던 기억이 떠오르고, 가을날의 벼가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 난 벼가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면 행복해” 특히나 촉각과 후각은 행복했던 기억과 즉각적으로 연결이 된다.

어쩌면 내가 서울 한복판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시골의 정서를 갖고 자연에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갖고 시골에 내려온 것도 모든 오감이 열려있던 경험을 하게 해 준 부모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싶다.

경험을 재산으로 물려준 부모님 덕에 내가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듯이 한별이도 다양한 경험과 감정의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느끼고 연결돼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여행은 힘들어졌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잠들고 일어나서 맞이하는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언제나 참 설렌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특별해진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은 더더욱. 한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 모래를 밟았다. 나는 바닷가가 보이는 숙소에서 햇살 듬뿍 마시며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아무튼, 셋이 떠나는 첫 여행.

무사히 성공. 휴.



내년에는 바닷가에서 같이 모래성을 쌓자꾸나.


일상의 설렘. 설렘이 사라지면

삶은 무기력해진다.


여행은 그런 설렘이

삶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힘들어졌지만

일상에서 여행하는 마음으로 다음 여행때 까지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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