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일기, 6일차]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

나는 정말 잘 늙고 싶어.

by 초연

< 6일 차> 화내고 성내는 마음을 있는 대로 바라보며 인내하는 마음으로 절합니다.



간밤에 눈이 엄청 내렸다.




어제는 자기 전에 라면을 끓여먹고 오늘 아침 정말 퉁퉁 부튼 빵떡 같은 얼굴로 일어나서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사실 라면 탓도 있지만 어제 부부 상담을 하고 정리되지 않는 마음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던 게 오늘 아침 몸도 마음도 무거운 상태로 일어났던 것 같다. ( 그런데 오늘 아침 밖은 정말 엘사가 올 것처럼 겨울 왕국이었다. 어렸을 때처럼 밖에 나가서 신나게 눈 밭을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집 밖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밖을 보니 어림잡아 30cm가 넘게 쌓인 듯하다. 다들 출근길 아침 분주하게 차 위로 쌓인 눈을 치우느라 바빠 보인다.)


결혼 한지 1년, 출산 한지 6개월이 조금 넘으면서 혼자서 너무 자유롭게 살다가 결혼 생활과 육아로 받는 스트레스가 나를 자꾸 덮치고 있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산후조리하면서부터 쌓여온 남편과 시댁 식구를 향한 서운함과 결혼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사안이나 문제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미숙함으로 인한 답답함은 계속 커져갔고 나는 서운함과 답답함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자주 회의를 느꼈다. 남편이 내 편 같지 않고 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정서적인 감정이 채워지지 않아서 자주 슬퍼서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들이 산후 우울증인가 싶어서 관련된 글을 찾아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다. ‘ 내가 우울증이라니! 내가. 그럴 리가 없어! 라며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릴 까 봐 안간힘을 써서 발버둥 치며 노력했는데 전문의들이 말하는 우울증 증상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너무 슬펐고 화가 났다. 자주 이 감정이 반복되었고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칠 때마다 남편을 향해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냈다.


서운하고 화나는 감정을 분출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 내 마음 좀 봐줘, 알아줘, 돌봐줘’라고 말하고 싶었던 진짜 속마음을 나는 그렇게 미 성숙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출산 후 나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았다. 집에서 남편의 도움과 열흘 정도 산후 도우미의 도움으로 산후조리를 했다. 사실 남편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런 남편의 존재가 오히려 더 힘들고 괴로웠다.



‘어떻게 이 정도밖에 안되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 수 있지.’ 내가 남편에 대한 기대치가 큰 사람도 아닌데 그나마 있는 기대도 채워지지 않으니 실망감은 두배로 커져갔고 결혼에 대한 후회, 결혼 생활의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나를 점점 더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도움을 요청했고 우리는 부부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잘 털어놓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힘들면 그 생각에 온종일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분출하지 않으면 쉽사리 정화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사실 듣는 사람은 힘든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지치고 피곤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각자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이해하고 판단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가정사를 쉽사리 오픈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는 친한 친구라도 처한 상황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는 친구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안에서 미묘한 질투와 시기의 감정들이 속에 담긴 말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고 굴절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가령 결혼하고 싶은 친구는 결혼해서 사는 것만 봐도 부럽게 느끼고 ‘ 그래도 넌 남편 있잖아’ , 아이 낳고 싶은 친구는 ‘ 그래도 넌 아이 있잖아’ 반면에 ‘ 나는 그래서 결혼 안 하고 살잖아’ 나는 그래서 결혼 안 하려고’ ‘ 나는 그래서 아이 안 낳을 거야’ 교묘한 공감 속에 자기 위안과 위로와 합리화하는 말들이 오고 가는 대화 속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도 통찰도 없어서 헛헛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오히려 괜한 말을 꺼낸 거 같아서 후회될 때가 더 많다.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있는 그대로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대로 걱정과 조언과 충고를,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디까지 내 이야기를 꺼내놓아야 되나, 어디까지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충돌하며 자연스럽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부부 상담을 하기로 했고 나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앞에서 내 안에 쌓인 감정들을 편하게 분출하며 나를 들여다본다. 그 과정을 남편과 같이 하면서 조금 나아지는 날도 있고 한보 후퇴하는 날도 있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날도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남편이랑 별다른 갈등과 문제없이 잘 지냈었고 내 몸도 마음도 많이 괜찮아져서 우리 상황이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상담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 감정이 올라왔고 그 감정들이 올라오면 나는 남편을 비난하며 공격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다른 환경과 경험을 하고 만나서 둘이 같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데 갈등이 없고 다툼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는 자라온 환경, 집안의 분위기나 문화,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함께 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이 부딪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데다가 임신과 출산을 차례로 겪으면서 삶이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기쁨도 컸지만 삶은 기쁨 뒤에 슬픔도 있고 설렘과 동시에 낯설고 두려운 감정도 찾아왔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게 잘 지내는 게 맞는 건가. 마음도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상황도 환경도 변했다.


출산 후 체력이 약해지면서 정신도 점점 불안정해지는 곳 같았다. 엄마가 돼서 엄청나게 강해진 것 같으면서도 엄마가 돼서 쭈구리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결혼을 해서 평생 내편을 얻은 것 같으면서도 어떤 날은 내편이 아닌 남편과 평생 어떻게 같이 살아야 될지 눈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오면 조금 괜찮아 질까 싶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왔다 갔다, 오락가락 이리저리 널 뛰기를 했다. 날씨 좋은 날은 유모차 끌고 밖에 나가서 한두 시간 걷고 오면 마음이 괜찮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의 물리적, 정신적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하루 종일 독박 육아를 하다 보면 정말이지, 몸과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출산 후 4개월이 지났을 때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건강가정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운이 좋게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내 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답답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지금의 108배도 한배 한배 올릴 때마다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정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오늘은 108배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명상을

한 후 우주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라클 카드를 뽑았다.


한장은 나를 위해, 한장은 남편을 위한 카드를 정성껏 두장을 차례 대고 뽑았는데 카드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얼마 전에 한별이가 카드를 갖고 놀다가 침을 흘린 게 카드끼리 들러붙은 거 같다)


나에게 전하는

첫 번째 카드는 New dawn

두 번째 카드는 Divine magic


남편에게 전하는

첫 번째 카드는 Blessed change

두 번째 카드는 morning affirmation

세 번째 카드는 Accept Heaven’s help


나는 지금 인생 수업을 경험하기 위해 내려놓을

필요가 있고 내가 배우고 발견한 인생의 가르침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한다

나의 기도와 긍정적인 생각이 나의 현재와 미래가 밝게

빛나는 길러 인도할 거라는 카드인데


해가 뜨기 전 새벽은 어둡고 캄캄하다. 하지만 이 시간에 우리는 깨어있을 때 무언가 생각이 복잡해서 늦게 까지 잠을 못 자거나 일어나서 간절히 바라는 것을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카드가 나오면 고요한 새벽에 기도나 명상을 하면서 좋은 마음,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Divine magic 카드는 내가 바라는 것을 명상이나

리추얼을 하면서 염원하고 기도하는 것. 그리고 manifest!


두 카드가 나에게는 열심히 108배 기도를 하라는

메시지인 거 같다.


남편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축복의 변화의 시간이란다. 주변으로 허리케인이 몰아쳐도 태풍의 눈에서 중심을 잡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이 변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메시지.

그리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확언을 하고 천국으로부터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메시지.


종합적으로 보면 아침에 일어나 좋은 마음으로 108배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좋은 하루를 시작하고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좋은 말을 하고 주변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알아차리며 열린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그런 메시지. 그래 이 또한 다 지나가겠지. 지나가리라.


기억해라.

계속 그렇게 화내면 화낼수록 못생겨진다.
화내서 못생긴 얼굴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라면 먹고 퉁퉁 부은 내 얼굴

왼쪽은 108배하기 전, 오른쪽은 108배 후-


여전히 퉁퉁 부었지만 얼굴빛이 조금 밝아진 느낌 같은 느낌?


눈이 밟고 싶어서 남편 찬스를 써서 아이를 대신 돌보는 동안 나는 걸어서 마트에 다녀왔다. 장화를 신고 한 시간 넘게 뽀득뽀득 눈 길을 걸었다.

확실히 생각이 많아지면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은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지면

심플해진다. 복잡하지 않으면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있으면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진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면 내 마음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된다. 화나고 성나는 그 마음들도.

저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들.

죽을 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들.

사소한 거에 성내지 말고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는 연습을 해보자. 미소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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